글쎄요.
언젠가 남편이 묻는다.
"나중에 부면장 또 할 수 있겠어?"
나는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5년 뒤쯤이면 지금 보다 조금은 달라진 내가 되어 있을까? 그럼 나는 5년 전의 나와는 다른 사람인가? 대답은 아니다. 5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무심코 던진 남편의 물음에 나는 더 많은 물음표를 나에게 던져본다. 그래도 부면장 할 때 주민들하고 지냈던 소중한 기억이 있는데, 그건 다시 느껴보고 싶다.
시골에서 '밥을 같이 먹는 일'은 정을 나누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소 아침밥은 거의 먹지 않아서 새벽 작업이 끝난 주민들의 식사 장소에는 가지 않는데,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뭐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화를 내셔서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분들이 '정'을 표현하는 방식인 것을 알았다.
한 번은 새벽작업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필요한 물건들을 배달해 드리고 있는데, 근처 사시는 이장님이 나를 발견하고는 밥은 먹었냐며 안 먹었으면 밥을 먹고 가라고 하셨다. 평소 목소리고 크고, 기분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시는 분이라 친해지지 못한 이장님 중 한 명이었다. 그 이장님은 알커피 한 스푼에 설탕 세 스푼으로 커피를 드시는데 면사무소를 오시면 그분의 취향으로 나는 정성껏 커피를 타면서 그분과의 거리를 좁히려고 애썼다.
마침 아침을 드시려고 했던 참인지 식탁에는 반찬이 푸짐하게 차려 있었다. 제주도산 갈치조림과 황태콩나물국, 그리고 신선한 야채 반찬으로 가득한 저녁 만찬 같은 차림이었다. 이장님 사모님은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고봉밥'을 나에게 주시면서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먹으라는 말과 부족하면 밥은 더 주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차마 밥을 덜어달라는 말은 못 하고 나는 그 많은 밥과 국을 전부 다 먹었다. 그리고 그날 점심을 먹지 않았다.
제일 잊지 못하는 밥이 그날의 밥이다. 11월 말의 새벽, 차가운 공기를 맞으며 돌아다니던 나를 따뜻한 집으로 불러주셨던 이장님과 그 집의 온기. 그리고 밥공기 한가득의 밥.
아무래도 다음에 한번 더 부면장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