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 장례식장
내가 기억하고 있는 장례식은 네 번이다. 첫번째는 친할머니의 장례식장이었는데, 그 때 나는 막 대학교를 입학한 새내기였다. 아빠는 5형제 중 막내 아들이라서 내가 할머니를 만나는 건 어렸을 적 명절이나 방학이 다였다. 그래서 할머니에 대한 추억이나 잔정은 없다.
할머니의 장례식장은 내 기억 속에서는 처음 가본 곳이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조용한 분위기. 옆에서 철 모르는 사촌 동생들이 게임을 하며 웃고 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보기 힘든 상여 행렬. 자식들이 왜 울지 않느냐는 상여꾼의 호통소리에 막내 아들이었던 아빠의 울음소리. 덩달아 슬퍼져서 나도 눈물이 나왔다.
두번째는 결혼을 하고 시할머니의 장례식장이었다. 나에게는 늘 다정하셨던 시할머니. 한번은 내가 뒷짐을 지고 서 있었더니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며 살갑게 알려주셨다. 시할머니는 혼자 사시다가 거동이 불편하시면서 요양원에 들어가셨다. 요양원, 시댁, 우리집 모두 같은 동네이다. 한번은 내가 할머니 문병을 가자고 남편에게 말을 한 적이 있다. 남편은 다음에 가자고 미뤘는데 일주일 뒤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 때 문병을 갔으면 좋았을걸 하는 후회가 든다. 나이드신 분과 관련된 일은 미루면 안된다는 것을 그 때 깨달았다.
세번째는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장이었다. 나는 이제 결혼식보다는 장례식장 가는 일이 더 많아지는 삼십대 중반이 넘은 나이였다. 외가집은 2남 6녀의 8남매였고 방학 때 외갓집에 가면 호탕한 성격의 이모들 덕분에 늘신났던 기억이 난다. 장례식장 역시 시끌벅적했다. 외할아버지도 90이 다 되어 돌아가셨고, 큰 지병이 있으셨던 것은 아니어서 그 당시 호상이라고 부르는 걸 들었다. 큰 외삼촌은 집안의 장남이면서 공무원 출신답게 각자에게 임무를 맡기면서 장례식을 진두지휘 하셨던 기억이 난다. 매장하는 곳도 갔었는데 특히 포크레인이 정교하게 무덤을 만드는 장면을 나는 오래 기억했다.
그리고 믿을수 없지만 문득 문득 기억나는 친구의 장례식이 있다. 중학교때 친구인 그녀는 늘 활달한 성격에 여자친구들 뿐 아니라 남자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는 아이였다. 내가 대학생 떄였다. 친구의 죽음 소식을 듣고 연락이 닿은 여럿이 모여 서울로 올라간 적이 있다. 나는 한 학년에 3반인 시골의 작은 중학교에 다녔는데 그때 아이들의 반 이상이 이미 장례식장에 와 있었다. 갑작스러운 죽음은 영정사진에서도 알아차릴수 있다. 언제 찍었는지 모를 스티커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썼다는 말을 들었다. 죽은 이유에 대해 다들 침묵한다. 무엇이 그 친구를 그토록 힘들게 했을까. 나는 그 때 무엇을 하고 있었나 생각했다.
가장 최근의 장례식장은 바로 어제이다. 설 명절 당일 시어머님의 엄마가 돌아가셨다. 연세는 91세, 요양원에 계신지 6년이 넘으셨다. 어머님은 설은 지나고 일주일 안쪽으로 돌아가실거라 생각하셨고 마음의 준비는 하셨는데 생각보다 이른 소식이다. 누군가는 가족들 다 모였을 때 장례를 치르라는 고인의 깊은 뜻이라고도 말한다. 연휴 초 대설주의보로 눈이 많이 쌓였지만 발인 당일에는 날씨가 풀려서 얼었던 땅이 녹은 것도 자손들을 배려한 고인의 뜻이라고 했다.
설명절 오후 4시쯤 시어머니는 엄마가 오늘을 넘기지 못할 거라는 소식을 전해듣고 대전 가는 기차표를 급하게 예약하셨다. 아버님은 3호차, 어머님은 4호차로 따로 앉아서 가셔야 했지만 다행히 빈자리는 있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대전가는 기차안에서 임종소식을 들었다. 아버님이 전화로 그 소식을 전해듣고 어머님이 탄 4호차로 가셨다. 소식을 들은 어머님은 눈물이 나왔다고 했다. 울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잠시 나갔다고 한다. 자리로 돌아온 그의 손에는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냅킨이 들려있었고 어머님께 전해줬다. 무뚝뚝한 아버님이 뭐라고 말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님은 누군지도 모르는 그 젊은이에게 아마 큰 위로를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장례식장에 가면 지인의 마음이 아프겠구나 까지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나의 일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아이들만 부쩍 큰다고 생각했지 나의 부모님이 나이드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를 위해서라도 부모님께 잘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