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자식은 언제 울까

동생들아, 너희들은 모른다.

by 친절한 곰님

나는 장녀이다. 아래로는 2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고 다른 지방에서 혼자 살고 있다. 부모님은 우리 집에서 30분 거리에 살고 계신다. 아무래도 근처에 사는 내가 부모님을 더 자주 찾아뵙고 집안의 사소한 문제들을 해결해 드린다. 이를테면 핸드폰에 어플을 설치하는 방법이라든가, 스팸번호 차단하는 문제 등이 그런 것이다.


태어난 순서에 따라 성격이 다르다는 말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장녀'라고 추측한다. 나의 어떤 면이 그들에게 그런 인상을 주는 것일까. 아무래도 첫째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빈자리를 채우거나 동생들을 돌보는 일을 자연스럽게 떠맡게 되고 그런 것들이 몸에 배어서 티가 나는 것일까. 그렇게 자연스럽게 성격이 결정되는 것 같다.


나에게는 딸, 아들 순으로 남매가 있다. 아무래도 딸에게는 남동생을 돌보라는 잔소리를 많이 하게 된다. 맞벌이 가정이다 보니 방학에는 특히 딸에게 점심을 챙겨 먹으라는 말과 함께 동생도 잘 챙기라는 신신당부를 한다. 가끔 가만히 딸의 말투를 들어보면 꼭 나의 말투인 거 같아서 흠칫 놀랄 때가 있다. 나의 무뚝뚝하고 애교가 없는 성격과 책임감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 같아 미안하다.


주변의 직장 동료 중에 살갑고 귀여운 직원들을 보면 첫째는 아니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나의 딸도 저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러나 나의 첫째 딸은 이미 첫째의 성격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보통은 장남이나 장녀가 사망신고를 하러 온다. 그들은 이미 마음을 정리하고 담담하게 신고서를 작성한다. 돌아가신 분 명의의 예금통장이라든지, 재산 관련 것들을 정리하기 위한 방법도 찾아놓았을 것이다. 그들의 지휘 아래 남은 동생들은 돌아가신 분의 물건들을 정리하면 된다.


분명 장남이든 장녀든 그들이 크게 의지했던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슬플 텐데도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일을 처리한다.


그들을 보면서 사망신고서를 작성하는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한다. 사망신고서를 작성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본 적은 없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나는 신고서를 집에서 미리 작성해 가고 제출만 해야겠다. 겉으로는 첫째가 정이 없고 무심한 것 같지만 사람은 다 비슷하다.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는다. 다만 그것을 몰래 하느냐, 사람들 앞에서 하느냐의 차이이다.


첫째 자식은 언제 울어야 하나.

단지 울면 안 될 것 같은 막연한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울 수 없다.


울더라도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서 몰래,

혹시 깜깜한 밤 소리없이 눈물을 흘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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