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과의 사소한 것
큰 소리로 인사하며 노인 회장님이 들어오신다. 걸걸한 목소리의 노인회장님은 잘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화 내는 듯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나도 처음에는 성질 고약한 노인인 줄 알았다. 그런데 목소리만 그렇지 실제로는 잔정이 많으신 분이었다. 해당 마을 대동계가 열리면 다른 마을보다 음식이 맛있다며 꼭 본인의 마을로 오라고 연락을 주신다. 또한 면 직원들이 무거운 것을 들고 있으면 본인이 더 기운에 세다며 대신 들어주려 하긴다.
어느 날 부인이 입원을 했다며 의료비 지원 방법을 문의주셨다. 한 달에 두 번 이상 신장 투석을 해야 한다며 돈이 많이 드는 일이라 한 걱정 하신다. 나는 면에서 할 수 있는 방법과 관련 담당자를 연계해 드렸다.
그렇게 한달 남짓한 시간이 흘렀을까. 노인회장님의 같은 마을 주민이 면사무소에 오셨다. 노인회장님의 배우자분이 돌아가셨다는 말씀을 전하신다. 아직 의료비 지원신청 결과도 듣기 전이라 더 안타깝다. 의료비 지원 결과가 나오면 바로 전화로 알려드리려고 관심을 갖고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사망신고 하러 오실 때 뵈야 할거 같기에 마음이 더 아프다.
사망신고는 사망한 날부터 한달 이내에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연기간에 따라 과태료를 내야 한다. 가족 중 누군가의 부재도 속상한 일인데 과태료까지 부과하는 일은 가혹하다고 생각해서 나는 동네 주민들의 사망소식을 우연히라도 알게 되면 이장님께 문의를 하고 그 분이 누구인지 메모를 해 놓는다. 그리고 사망신고 기한이 다가오는데도 신고를 하지 않으면 안내를 드린다.
노인 회장님이 오시기를 기다렸다. 배우자 분이 돌아가시고 한 달이 되어가는데도 오지 않으신다. 두번 정도 사망신고 안내 전화를 드렸고, 사망신고 기한인 한달을 꽉 채워서 사망신고를 하러 오셨다.
사망신고서를 앞에 두고 배우자 분이 돌아가셨을 때의 상황을 말씀해주신다. 갑자기 상태가 좋지 않은 배우자를 입원시키고 집안일을 해결하려고 시골로 내려오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담당 간호사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을 달라고 말해 놓았는데, 연락이 늦어서 임종을 못지켰다며 속상해 하신다. 평소 큰 목소리의 노인회장님은 유독 쓸쓸한 목소리로 그 간의 힘들었던 일에 대해 푸념하듯 이야기하신다.
사망신고서를 작성하는 노인회장님은 배우자의 빛 바랜 주민등록증을 만지신다. 주민등록증의 사진을 다시 찍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아프게 되어서 사진을 못 찍었다면서, 미리 사진을 찍었으면 영정 사진이라고 예쁜 것으로 해줄 수 있었는데 하는 후회를 하신다.
'사진을 진작에 찍어줄 걸' 하시는 말씀을 여러번 되뇌이시는데, 그건 나에게 하는 말씀이 아니라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40년을 넘게 살아도 상대방이 언제 죽을지,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게 인생이다. 그러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미루지 말기.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는 사람들과 해야하는 일은 미루지 말기.
언제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미루지 말기.
특히 부모님, 아이들과 관계된 것은 미루지 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