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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Sep 17. 2021

종교의 힘으로 도시가 싹트다

인류사의 여명, 종교의 빛나는 탄생

  인간은 매일이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던 3백만 년을 거쳐 먹이사슬의 정상에 오르는 쾌거를 거두었다. 불을 활용하는 방법을 손에 넣어 맹수가 예전만큼 위협적인 대상이 아니었고, 도구가 작살과 화살까지 발전하면서 많은 집단 구성원에게 식량을 제공하기 위하여 인간이 대형 초식동물을 타깃으로 설정하기에 이르렀다. 인간의 집단 규모가 커지면서 많은 동물들이 타깃이 되어 절멸의 운명에 놓였다.


  그렇게 인간이 자연사에서는 이례적으로, 단일 종으로 생태계를 바꿀 정도의 위력을 가지게 되었다. 뭉친 인간의 파워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매머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반면, 인간과 타협한 일부 늑대들은 상호 협력의 역사를 쌓아나가며 최강자의 친구(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생물학의 지배에 놓인 존재로서 인류는 끊임없이 진화의 길을 걸어야 할 운명이었다. 다른 종 중에 경쟁자가 마땅히 없는 상황에서 가장 큰 라이벌은, 서로 다른 믿음과 소속감을 가진 인간 집단이었다.






  10만 년간 지속된 마지막 빙하기에서 생물 종의 잔혹한 세대교체가 재현되었다.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피하지방을 두껍게 하고 눈, 코, 입의 크기와 높이를 조정하는 힘겨운 적응 과정을 거쳤다. 당시에도 불을 다룰 줄은 알았지만 혹독한 추위로 인해 많은 이들이 쓰러졌으며, 유전적 조정과 철저한 집단 단위 협력을 통한 생존 노하우의 공유에 성공한 자만이 자손을 남길 수 있었다.


  간빙기로 접어든 이후에도 지진, 홍수, 화산 폭발과 같은 시련은 쉴 새 없이 닥쳐왔다.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 한없이 무력함을 느꼈을 당대의 인류에게는 정신적인 구심점이 절실히 필요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눈앞에 펼쳐지는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 설명해주고 정신적 안정감을 제공해줄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취약한 개인을 집단 단위로 뭉치게 할 수 있는 강력한 중심이 필요했다.


원시인이 추상적인 대상을 바탕으로 엮은 간단한 스토리는
절박함이 가미되며 마침내 종교라는 서사로 발전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단일 종으로 천하통일이 이루어진 만큼, 집단의 힘은 구성원의 수와 그들 간의 결속력에 비례했다. 강한 믿음을 바탕으로 많은 이들을 강하게 끌어들일수록 집단은 번성할 수 있었다. 혈족이라는 소속감에 같은 종교의 신도라는 동질감이 덧칠되며 '우리'라는 개념이 점점 짙어진 것은 두 가지 효과를 낳았다. 개별 집단 규모의 확대와 배타성의 증대였다.



  혈연, 동일한 믿음, 소속감과 배타주의의 절묘한 조합은 집단의 정체성과 팽창성을 더욱 자극했다. '세상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진 우리' 안에 들어 있다는 자부심은 그 테두리 밖의 존재에 대한 적의로도 연결되었으며, 그룹 간의 충돌은 승자의 경쟁력을 더욱 끌어올려 주었다. 역사 교과서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토테미즘과 애니미즘 역시 이 격변기의 산물이었다.


  새로운 차원의 생존 경쟁 속에 견고한 신앙 체계를 가진 대규모 집단들만이 번영을 약속받을 수 있었다. 그들은 신앙을 뒷받침하기 위해 추상적 대상의 물리적 체현 작업에 착수했고, 그중에서도 많은 인원을 확보한 그룹이 협력 프로젝트에 뛰어들어 신전 건설까지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때부터 인류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역사를 가꾸는 위대한 여정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인지 혁명의 뒤를 잇는 소혁명이라는 이름의 기폭제,
종교혁명과 도시혁명이 연이어 촉발되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종교는 단순한 신앙이 아니었다. 세상에 대한 설명서이자 행동 양식을 규정하는 틀이었으며, 사람들을 한데 끌어모아 동일한 목표를 갖고 움직이게 하는 힘이었다. 종교를 중심으로 단단히 규합된 사람들은 많은 인원이 한 곳에 살아가기 위해 환경을 정비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했으며, 그것은 이후 도시국가에서 일어날 토목 사업 및 인프라 정비의 원형이 되었을 것이다.



  무거운 돌을 여러 번 날라 규모 있는 의식 시설을 건설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도시를 형성할 수 있을 정도의 인구가 결집하는 임계점에 임박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농경 사회로 진입하기 전부터 이미 인류는 도시를 일으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인간 사회에서 계급이 본격적으로 분화한 것이 농경 시작 이후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의 어느 집단에나 실질적인 리더는 존재했다. 경험이 많고 집단의 룰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며, 전승되어 온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었던 우두머리는 고대 의식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제사장이 존재하는 샤머니즘에 이르러 사회 리더의 권위는 더욱 굳어졌을 것이며, 이것이 신앙의 권위가 개인에게 이식되는 계급화로 이어졌을 것이다.


  개인 간의 정보 전달만 이루어지면 공존에 큰 지장이 없었던 시기와 달리, 규모 있는 공동체에서 공동의 구심점을 가지고 생활하려면 중심 신앙에 부합하는 규칙을 만들고 적용할 존재가 필요했을 것이다. 지도자가 다른 이들로부터 권위를 조금씩 이양받아 룰이 제정되고 집행되도록 한 시점부터 구성원 간의 위계 개념이 생겨났다. 평화적인 공존을 위해서 누군가에게는 수직적인 질서가, 다른 이들 사이에는 수평적인 질서가 적용되는 구도는 신앙 체계로 정당화되었을 것이다.


  몸집이 불어난 사회에 걸맞은 새로운 질서의 확립은, 농업혁명의 불씨와 결합하여 도시와 국가를 형성하는 폭발적인 도약을 일궈냈다.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영역에서의 발전에 의존했던 것과 달리, 농업혁명 전후로 일어난 도구의 고도화로 인류는 물질적인 영역에서도 대대적인 질주의 서막을 열었다.



(※ 인용문에 Mapo 꽃섬 서체를 사용하였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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