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루 Sep 20. 2021

인류사 최대의 야누스, 잉여생산물의 탄생

경제사의 본격적인 출항

  여러분은 경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일단 경제라는 단어에서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은 돈일 것이며, 그다음에는 주식이나 부동산 등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경제의 정의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넓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경제는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ㆍ분배ㆍ소비하는
모든 활동, 또는 그것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사회적 관계이다

  문화가 생활양식의 총체라는 광의의 개념으로도 정의될 수 있듯이, 경제 역시 삶의 모든 모습이라고 폭넓게 정의할 수 있을 정도로 탄력적인 어휘다. '경제'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돈이며 우리 삶에서 돈이 관여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것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가 삶의 거의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있다면, 경제사가 역사 대부분의 영역을 포괄할 수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모든 이들이 이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대사건 뒤에는 대체로 짙은 경제적 배경이 드리우고 있다. 일견 돈과는 상관이 없어 보이는 예술, 순수과학 같은 것들도 예외는 아니다. 일정 생활수준에 도달해야 비로소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창작하고 세계의 진리를 탐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깊이 있게 감상하기 위해서 경제사는 피해 갈 수 없는 관문이다. 문명이 확장을 거듭하며 오늘날 경제의 규모가 대양(大洋)에 견줄 수 있을 만큼 불어났지만, 그렇게나 대단한 이력을 자랑하는 경제사도 원류는 작은 시냇물과 같았다. 그리고 이 거대한 흐름을 끝에서부터 되짚어보면, 탐구자는 잉여생산물이라는 자그마한 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으로 땅을 개간한 농부의 손끝에서, 장차 큰 바다가 될 샘물이 솟아 나왔다.





   원시 신앙에 의존하던 초기 사회에서 제사장과 일반 구성원 간의 지위 차이가 그렇게까지 크지 않았을 것이다. 리더가 막강한 물리력으로 다른 구성원을 모두 제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그의 격을 뒷받침하는 것은 구성원들의 존중과 신앙에 대한 신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잉여생산물의 등장은 '특별한 자'들이 다른 이들에 비해 월등히 많은 자원과 권력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구성원이 많아질수록 종교의식을 지내던 이들이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이 커졌고, 남들보다 확연히 좋은 수확을 거둔 이들이 등장하면서 경제적 갑을인 채권자-채무자 관계가 생겨났다. 채무의 발생은 경제적 격차의 확대로 인한 계층 분화로 직결되었기에, 경제사적으로 획기적인 분기점이 되었다.


  '돈이 모이는 곳에 권력이 모이고, 그 둘이 모이는 곳에 다시 돈이 모인다'는 말은 정치와 경제가 결합되어 사이클이 발생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주 명료하게 알려준다. 고대 사회라고 해서 이러한 정치경제적 섭리의 특수한 반례가 적용된 것은 아니었다. 점점 굳건해지는 종교의 힘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주도하는 권위를 장악한 정치 리더와, 우수한 작황 및 채권-채무 관계로부터 부를 쌓은 신흥 경제 리더는 서로에게 없는 것을 얻기 위해 손을 잡았다.


  그렇게 농경 시대에 이르러 '엘리트' '상류층'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생태 피라미드를 초극한 인간은 드디어 그들만의 계층 피라미드를 창조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모든 동물에 탑재되어 있던 이기적 유전자가 인간에도 깃들어 있다는 사실은, 생존을 위해 협력이 우선시되던 시기에는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자연계의 다른 종에서 적수가 없어지고 점점 많은 수의 사람들이 서로를 둘러싸게 되자, 상황이 판이하게 달라졌다.


DNA 속 이기심은, 정치적·경제적 파워를 손에 쥔 이들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이들을 통제하고 싶은 열망의 형태로 발현되었다

  그리고 역사는 힘이 있는 자들의 의도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채무 관계 속에서 부자는 빈자들에게 간섭을 할 수 있는 힘을 얻음과 동시에, 종교 리더와의 결탁이 정치경제적 계급을 사상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결과로 이어지며 갖가지 사회적 특권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고대 정경계의 강자들은 자신들의 특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관료제 네트워크라는 탁월한 발상을 해냈다. 수직적 질서와 수평적 질서가 혼재하던 원시 사회의 체제로는 '가지지 못한' 다수의 반발을 그럴듯하게 무마하거나 확실하게 제압할 수 없었다. 시스템을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들은 '공동체의 안정적인 유지'라는 기치를 내세워 공고한 수직적 체제를 확립할 필요가 있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국가 개념이 탄생했다. 국가는 엄격한 룰을 정해 두고, 그 규칙에 따라 각 계층의 본분과 권리를 유지할 거대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러한 현상이 가장 먼저 일어난 것이 수메르 문명이었다. 사제와 부유층이 상위 계급을 이루었고, 이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엘리트 중심의 규정이 생겨났다. 여러 도시 국가가 난립하여 마찰하는 과정에서 사회가 결집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자 사회적 위계는 더욱 굳어졌다. 세금과 노동력을 제공하는 평민층과 그들로부터 자원을 징발하는 엘리트의 구분이 뚜렷해지고, 정치적 정당성과 무력 및 경제력을 겸비한 엘리트 중의 엘리트는 왕으로 올라섰다. 이러한 일들은 시간 차이를 두고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재현되었다.


  물론 계층 사회의 등장을 단순히 가진 자들의 기획만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팽창하는 공동체가 약한 수직적 질서만으로 안정을 유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해관계와 감정의 충돌 빈도가 늘어나는 사회에 균열이 가지 않도록 하려면 강력한 질서가 필요하다. 종교 리더와 신흥 부자들이 이러한 시대적 요구가 발생한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또한, 계급 분화의 파생물인 세금과 함께 따라온 기록은 이후 모든 문명의 기둥이 되었다. 문자는 지배 계층의 이익에 봉사할 목적으로 이용되었지만, 결국 역사에 없어서는 안 될 최고의 파트너가 되어 주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욕망에 충실했을 뿐이었으나, 결과적으로 문자와 기록의 등장을 앞당기고 새로운 사회 질서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매우 큰 파급 효과를 만들어낸 셈이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시대의 승자들은 그들이 다져 놓은 기반이 후대에 어떤 모습으로 발현될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분명 기록에 남은 영광의 이름들이 중세와 근대, 현대 문명에 빼놓을 수 없는 기반을 마련한 것은 사실이다. 동시에 황제와 노예가 공존하는 신분제 사회, 월가에서 시민들이 들어 올린 '1%에 대한 99%의 분노' 피켓 같은 역사의 그림자 역시, 잉여생산물과 몇천 년 전의 리더들이 손을 잡은 계약의 부산물이 되었다.



(※ 인용문에 Mapo 꽃섬 서체를 사용하였음을 알립니다.)

이전 04화 농업혁명, 역사의 궤도를 바꾸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