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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Sep 21. 2021

옥수수부터 GMO까지 ─ 농업혁명의 후예

농업혁명의 계승과 확산

  동양의 쌀과 서양의 밀은 문명의 무게를 감당했다. 인간과 곡물은 서로를 파트너로 선택해 공영의 길을 걸었다. 문자의 발명, 대제국의 발흥, 클래식 음악과 산업혁명은 농업혁명이 없었더라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잉여생산물이 발생한 이후로 생존 이상의 욕구에 도전할 여유와 용기가 피어났기 때문이다. 벼와 밀도 인간이 없었더라면 자연계에서 오늘날과 같은 종의 번영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인간의 노동력을 빌려 모든 곳으로 퍼져나갈 수 있었다.


  역사 교과서에서 농경이 중요하게 등장하는 것은 신석기시대의 농업혁명 한 번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농사가 역사의 흐름을 바꾼 선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사탕수수에 대한 욕망은 대규모 노예무역과 서인도제도의 플랜테이션을 만들어냈고, 차에 대한 영국인들의 욕망은 아편전쟁이라는 파국을 불러왔다. 농업과 농산물이 대사건의 발단이 된 역사만으로 두꺼운 책을 몇 권은 낼 수 있을 것이다.


  농업혁명은 약 1만 년 전에 일어난 농경의 시작을 가리키는 표현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농업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제2차, 제3차 농업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역사적 전환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농업혁명의 연장선을 차근차근 되짚어 보아야 우리는 농업혁명이 진정 역사에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해 왔는지 이해할 수 있다.




  먼 옛날부터 서양인들이 밀과 보리 등의 곡물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고심을 거듭했지만, 벼를 재배하는 동양인만큼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이모작과 이기작이 가능한 벼와 달리 밀은 지력 소모가 심해 같은 땅에 반복해서 재배하는 데에 제한이 있었으며, 파종한 씨앗 대비 산출량 역시 밀은 벼를 따라가지 못했다. 근본적으로 밀은 경작 기술이 발달하기 전까지는 생산의 한계가 뚜렷한 식물이다.

 

  중세까지만 하더라도 유럽은 넉넉한 식량을 생산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신대륙으로부터 유입된 옥수수는 부족한 식량을 보충할 수 있는 ‘신의 선물’이었을 것이다. 기후와 토양을 까다롭게 가리지 않는 작물이 씨앗 하나로 몇백 개의 알곡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옥수수는 자신의 강점을 살려 빠르게 식단에 침투했고, 가축의 먹이로도 투입되면서 빵과 고기가 주축을 이루는 유럽 식문화의 기둥이 되었다.

 

  식사를 든든하게 해결할 수 있게 되면, 과학과 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문화와 예술을 창조할 여유가 생긴다. 먹거리에 대한 고민을 어느 정도 해결해준 옥수수는 더 많은 사람이 지적인 활동에 참가할 수 있는 여력을 부여해줌으로써, 유럽이 근현대로 나아갈 추진력을 보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옥수수는 수많은 사람과 가축의 식량 공급원이며, 과학기술이 발달한 현재에는 접착제부터 바이오 에너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널리 재배되는 작물인 옥수수 없이
현대 문명을 지금 모습으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물학적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작물이 된 옥수수만큼이나 인류의 역사를 획기적으로 바꾼 식물이 있다. 바로, 옥수수처럼 신대륙에서 넘어온 감자다.


  감자는 척박한 땅에서도 수확을 기대할 수 있으며, 탄수화물뿐 아니라 미네랄, 비타민까지 고루 함유한 저비용 고효율 식료다. 그러나 낯선 외양에 덩이줄기라는 특이한 방식으로 자라는 감자에 유럽인들은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꼈다. 척박한 토지와 싸늘한 기후로 인해 만성적인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국민이 많았던 프로이센은 국가가 주도하여 감자를 빠르게 보급했지만, 다른 지역에선 감자는 쉽게 차별적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프로이센의 사례를 통해 감자의 효능을 실감한 인접국이 감자에 관용을 베푸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환경을 잘 가리지 않는 감자의 매력을 인정한 유럽인들은 감자를 밀과 보리의 보완재로 활용했다. 그리고 겨울에 남는 작물이 없어 월동을 위해 돼지를 도축하여 소금에 절여서 보관했던 유럽인은, 겨울에 감자를 돼지의 사료로 활용함으로써 가축을 자신들이 원하는 시점에 도축할 수 있게 되었다. 작물 하나로 삶의 모습이 변화한 셈이다.


  이밖에도 감자는 엄청난 역사의 나비 효과를 만들어냈다. 영국의 간섭으로 인해 밀을 수탈당하여, 식량 공급을 감자에 의존하던 19세기 아일랜드에 닥친 감자 역병은, 100만 명 이상이 아사하는 참극으로 이어졌다. 아비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회의 땅’으로 불리던 아메리카로 향한 수백만 아일랜드인이 공업화가 막 시작된 미국으로 유입되었다. 그들 중 다수는 산업화의 역군이 되었고, 소수는 성공한 사업가와 정치가가 되어 미국이 최강국으로 오르는 과정에 힘을 보탰다. 결국, 감자가 세계 패권 변동에 공헌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신대륙에서 넘어온 두 가지 식물로 세계사가 이 정도나 바뀌었으니, 아메리카 발견으로 인한 작물의 전래를 제2차 농업혁명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에 필적할 만한 파급력을 발휘한 것은 제3차 농업혁명으로 정의할 수 있는 화학비료와 유전자 편집 기술밖에 없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을 뿐, 농업은 역사적 분기점을 계속 생성해 왔던 것이다.



  옥수수와 밀은 자연 그대로인 상태에서 연작을 하기 어렵지만, 질소 비료를 위시한 화학 비료를 사용해 땅에 영양분을 인위적으로 보충함으로써 휴경 기간을 최소화하고 농업 생산량을 크게 늘릴 수 있었다. 지력 회복을 위해 경작을 잠시 중단하거나 콩을 재배하는 전통적 방식보다 월등히 많은 곡물을 산출할 수 있게 되어, 산업화를 기점으로 급격히 불어난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었다.


  인간에게 유리한 결과물을 제공할 수 있는 특질을 가진 개체를 교잡해, 더 풍성한 수확을 얻는 기존의 소극적 개입 방식도 진화를 거듭했다. 유전자 지도를 해독하는 능력까지 얻은 인간은 DNA를 조작해 알곡의 크기와 낱알이 성숙하는 시기, 열매의 색깔을 결정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더 많은 양분을 공급하고 더 많은 알곡이 맺히게 함으로써, 인류는 78억에 달하는 동족을 부양하고도 남을 만큼 식량을 생산하고 있다. 이론적으로나마 모든 인간이 기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위대한 성과를 제3차 농업혁명이라고 해도 전혀 모자람이 없다.


  1만 년 전, 최초의 농업혁명을 일으킨 것은 돌연변이를 우연히 발견한 어느 원시인의 호기심이었다. 그러나 그의 후손은 돌연변이를 찾아내고 실패할지도 모르는 파종을 시험하는 우연성에 의존하는 영역을 한참 넘어서서, 육안으로 보이지도 않는 생명의 회로를 재배치해 종을 개량하는 창조자의 반열에 올라섰다. 다소 거부감이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인간은 이제 주어진 환경 조건에 순응하지 않고 자연을 편집하고 있다.


  자연의 많고 많은 피조물 중 하나에 불과한 인간이, 감히 자연에 손을 대기에 이르기까지의 장대한 스토리가 바로 농업혁명의 역사다. 끊임없이 계승되고 확산되는 농업혁명을 돌아보면, 우리는 농경의 시작점이 발휘한 영향력을 한 어구로 표현하는 것에 네 글자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인용문에 Mapo 꽃섬 서체를 사용하였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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