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루 Jul 20. 2022

코로나의 역습과 어그러진 판도

팬데믹이 불러온 혼란

  2019년 12월 중순쯤에 TV 9시 뉴스에서 유독 눈길을 사로잡은 헤드라인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중국 우한에서 원인 모를 괴질이 돌고 있어 방역 당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 질병이 호흡기 질환이라는 코멘트를 듣자마자, 불현듯이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저 바이러스가 언젠가 우리나라로 올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국경을 막아야 하는가?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정식 명칭조차 없었던 정체 모를 전염병이 무슨 일을 일으킬 것인지 파악할 방도가 없었다. 전염력이나 치사율도 불명이었고, 그저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에서 퍼지기 시작한 질병이라는 점에서 그것이 상당 규모로 확산할 것이라고 막연히 가늠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머릿속에서는 국경을 쉽게 넘나들 수 있는 시대라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소동을 겪는 시나리오까지만 전개되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3개월 뒤 한 도시에서 발견된 바이러스는 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서 퍼져나가고 있었고, 그 바이러스는 곧 '코로나', 'COVID-19'로 불리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초기에 감염자 수가 크게 늘어났지만 고강도의 방역과 거리두기 정책으로 사망자가 속출하는 최악의 상황까지는 피해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비교적 낮은 수준의 보건-방역 대책이 적용된 서구권에서는 노약자가 몇만 명씩 죽어나가는 참상이 펼쳐지기도 했다.


  5억 명 이상을 감염시킨 코로나 바이러스는 근래 등장한 바이러스 중 가장 광범위한 피해를 끼쳤다. 수많은 인명을 앗아갔을 뿐 아니라 살아남은 이들의 일상도 멈춰버리면서 세상의 모습을 바꿔버리는 무시무시한 장악력을 보여줬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런 유형의 위협은 겪어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그만큼 충격이 컸기에 세상은 흔히 언급되는 것처럼 '팬데믹 전과 후'로 나뉘게 되었다.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도전이 던져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일어난 이후 벌써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2020년 2월까지 계속된 호황은 사상 최장기간 지속된 번영이다. 시장 상승세가 이렇게 오래 지속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호경기는 언젠가 끝나게 되어 있다. 트럼프가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 압력을 가하면서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고 있다.
(짐 로저스 著 『위기의 시대 돈의 미래』, 리더스북, p.27)


  팬데믹의 임팩트가 너무 컸기 때문에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직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좀처럼 잘 기억해내지 못한다. 팬데믹 이전 세계 경제는 10년간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는 기이한 행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물경제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아 유럽연합과 일본에서 화폐를 찍어내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었다.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니 화폐를 찍어내서 물가를 억지로 올려서라도 자극을 주어야 한다'라는, 무언가 미심쩍으면서도 속 편한 방편을 장기간 구사한 끝에 경제가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기대와는 다르게 그 움직임은 금융경제에서만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실물경제의 상승과 괴리가 있는 금융경제의 상승, 즉 자산 시장 거품이 생겨났던 것이다.



바이백이 기업문제의 해결책으로 떠오른 것은 비단 스타벅스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지난 1982년에만 해도 S&P 기업은 이익의 2%만을 자사주 매입에 썼다. 2018년 말에 이 비율은 59%로 늘어났다. 2008년 이후 10년 넘게 지속된 초완화정책 덕택에 기업들은 그 어느 때보다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게 됐지만, 그렇게 모은 돈을 생산성 향상에 투자하기보다는 바이백에 사용한 것이다.
(임승규 外 6명 著 『포스트 코로나 우리는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한빛비즈, p.32)


  각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낮은 금리를 비정상적으로 오래 유지하며 기업들의 차입 부담이 줄어들었지만, 실물경제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융통된 자금이 주가 부양과 자산 재투자에 투입되었다. 더 많은 수요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판단이 서지 않자, 기업들이 시장에 미래 지향적인 투자를 하기보다 보유한 자산의 가치를 부풀리는 편한 선택을 하는 경향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장기 성장과 구조 개혁보다 주주의 당기 이익을 앞세워야 한다는 마인드가 저금리 환경을 만나자, 투자보다 자사주 매입을 우선시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신자유주의와 함께 태어난 주주 자본주의가 가진 태생적 약점으로부터 비롯한 것이었다. 미래 지향적인 투자는 수익이 날 때까지 시간이 걸리며 비용 대비 산출량이 얼마나 될지 불투명하지만, 자사주 매입은 즉각적인 주가 부양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자고로 자본은 수익률을 좇아 날아가며, 시장이 열려 있기만 하다면 국경 같은 것에도 제약을 받지 않는다.  실물경제와 금융경제 사이의 온도 차이가 눈에 보일 정도로 뚜렷해진 여건 속에서 자본은 단기 전망이 좋지 못한 실물경제보다 유동성 공급으로 인해 뜨거워지는 금융경제에 흡수되었고, 그 결과 주식과 부동산만이 두둥실 떠오르게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확진과 사망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유럽이 현재 코로나19 발병의 중심지가 되었고, 3억 3000만 명에 달하는 거대 인구와 국가적 리더십의 부재를 고려했을 때 미국이 향후 유럽을 뒤이어 질병 확산의 중심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주가는 하루에도 5~10%씩 변동하고 있다. … 다른 금융시장도 변동성이 크기는 마찬가지다.
(리처드 볼드윈&베아트리스 베더 디 마우로 著 『세계 석학들이 내다본 코로나 경제 전쟁』,
매일경제신문사, p.17)


  그러나 중국에서 시작된 바이러스의 역습이 이 모든 것을 뒤바꾸었다. 모든 이들이 패닉에 빠져 각국의 주요 종합주가지표가 순식간에 20~30%씩 깎여나갔고, 사람들의 이동량이 줄어들자 곧바로 실물경제에도 극심한 충격이 날아왔다. 느슨한 방역 규제가 적용된 서구권 국가들이 입은 피해가 특히 컸다. 특히 미국은 타국에 비해 확진자 수가 폭증하면서 심대한 인명 피해와 경제적 손해를 감내해야 했다.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이 팬데믹 출현 이후 2020년 2분기에 무려 -30%라는 충격적인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것은 팬데믹이 세계인에 얼마나 큰 데미지를 주었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감염자가 속출하며 곳곳의 직장이 멈춰 섰고, 바이러스를 피해 간 사람들도 외출을 줄이면서 덩달아 소비도 줄어들며 경제의 양 날개인 생산과 소비가 모두 꺾여버렸다.



<이코노미스트>는 애널리스트들의 말을 인용, 후베이발 코로나19 유행병으로 전 세계 스마트폰 물량이 10% 정도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자동차 부문은 국제 공급망 차질로 인해 특히 동아시아 지역에서 이미 크게 타격을 받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수요 측면에서도 충격을 유발, 수입이 감소하게 되는데 특히 가장 타격을 심하게 입은 국가들의 교역 상대국에서 수입이 크게 감소될 전망이다.
(위의 책, p.114)


  팬데믹의 출현으로 우리는 서로가 얼마나 상호의존적인 존재인지 깨닫게 되었다. 우선, 공장이 조업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면서 생산에 차질이 생김으로 인해 생산자들이 타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이 제품 가격 상승과 품귀 현상을 유발하여 소비자들이 고통을 받았다. 기업은 생산 능력이 줄어 이윤이 감소하고, 기대 수요가 위축되어 투자에도 소극적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것은 고용 위축과 소비자 효용 감소로 이어졌다.


  시장에서 형성된 이러한 악순환도 충분히 골치 아픈 문제였으나, 여기에 글로벌 공급망의 손상이 겹쳐지며 모두가 큰 손해를 떠안았다. 제조업의 허브인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바이러스의 창궐로 인해 생산에 난항을 겪었고, 특히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던 중국에서 공장이 멈추자 수많은 소비재와 중간재의 흐름이 정지해 버렸다. 고정적인 수요가 큰 영역일수록 피해 규모가 클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두려움으로 인해 지갑을 닫았고, 회사에서는 재택근무 명령이 떨어졌으며, 공장은 폐쇄 조치가 내려졌다. 한 부문의 위축이 다른 부문의 위축으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 각국의 우선적인 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이미 패닉이 장악한 시장 심리를 돌려놓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분명했다.



연준은 4월 10일 최대 2조 3000억 달러 규모의 유동성을 투입해 일부 투기등급 회사채(정크본드)까지 매입하겠다고 발표했다. … 셰일 기업뿐 아니라 사실상 미국 내 모든 기업들의 생명 줄을 연준이 쥐고 가겠다는 것이다. … 유럽중앙은행(ECB)이나 일본은행(BOJ)이나 사정은 매한가지이다. … 유로존과 일본 경제는 이미 ECB와 BOJ 없이 움직일 수 없는 수준이다.
(『포스트 코로나 우리는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p.44~45)


  중상을 입은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세계의 브레인들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러나 극심한 외부 충격에 신음하고 있는 세계를 최단 시간 안에 구원해야 한다는 심리적인 압박이 존재하는 이상, 그들에게는 최상의 방책을 짜낼 시간이 부족했다. 그리고 이미 기준금리가 낮았기 때문에, 금리를 0%대로 다시 내리는 것만으로는 당장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경제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할 수도 없었다.


  결국 세계 각국은 정책적 마지노선을 또 한 번 낮추는 길을 선택했다. 금융의 중심인 미국까지 질적 완화라는 극단적인 카드를 내놓은 것이었다. 디플레이션 압력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상태에서 팬데믹을 맞이한 유럽연합과 일본 역시 뾰족한 다른 수를 내놓지 못하고 한때 금단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선택지에 손을 댔다. 이로써 일본이 지옥 같은 '잃어버린 시간'을 끊어내기 위해 걸었던 길을 세계가 따라 걷게 되었다.


  천문학적 규모의 양적완화에 이어 질적완화까지 실시되면서, 세계 금융시장은 당장 쓰러질 일이 없어졌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숨 고르기를 했다. 그러나 긴급 구제의 성격을 띠는 유동성 공급의 문턱을 더욱 낮춘 것은, 닥쳐온 고통을 억누르기 위해 점점 더 강한 진통제를 쓰는 행위나 다를 것이 없었다. 10년 동안 세계 경제를 서서히 중독시킨 독이 든 술, 이지 머니가 팬데믹 혼란상을 틈타 우리 곁에 더욱 밀착해 들어온 것이었다.


  진통제는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지, 질병의 뿌리를 뽑아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경제 수장들이 눈앞의 위기를 빠르게 덮는 것에 치중하고, 정치인들이 다음 선거를 의식해 긴축은커녕 부양책 전개에만 열중하면서 경제는 진통제만 복용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최고 강도의 진통제인 질적완화에까지 손을 댄 글로벌 경제는 수술을 계속 유예하면서, 더 큰 고통이 다가온다는 것을 예감하면서도 갖은 애를 써서 다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전 06화 경제의 딜레마와 쪼개지는 세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