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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Jul 26. 2022

막다른 길에 선 거품 경제

사람은 결국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 나이이고, 그렇게까지 세상 경험이 많지 않은 글쓴이도 과거의 실책으로부터 배운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알고 있다. 물론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의 난이도가 높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지금 느끼는 아쉬움에서 과거의 자신이 겹쳐 보일 때만큼 후회와 공허가 뒤섞인 감정이 강렬하게 일어나는 경우가 많지 않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감지하고 있다. 사람의 심리는 특정 상황에서 취하는 일반적인 행동 패턴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삶이 길어질수록 과거의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듯한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며, 역사가 비슷한 양태로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4세기 전 네덜란드에서 튤립 버블이 있었고, 그 후유증이 어땠는지 후세 사람들은 익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배운 이들마저도 화끈한 버블의 유혹을 거부하지 못하고 3세기 전의 미시시피 버블의 피해자가 되었다. 그리고 선대의 이야기를 들은 후대 사람들 중 누군가가 대공황기 버블의 피해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 그들의 후예 역시 비슷할 현실을 마주할 운명이었고, 결국 역사는 우리 앞에 다시 재현되었다.




서초구 반포동 한신 1차 아파트를 재건축한 아크로리버파크가 2014년 9월에 분양을 시작했습니다. … 그리고 6년이 지난 2020년 12월 현재 시세는 25평형이 28억 원 전후이고 34평형은 37억 원 전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 단지에서 실거래가 체결될 때마다 대한민국 거의 모든 아파트 관심층은 서초구를 주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학렬 著 『대한민국 부동산 미래지도(서울편)』, 한빛비즈, p.128)


  시장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좌우되지만, 그 수요와 공급은 심리가 좌우한다. 바이러스와 함께 전 세계로 퍼져나간 유동성이 들어 올린 자산 가격은 그 자체로 신규 수요를 창출했다. '오늘이 가장 싸다'는 심리가 장악한 수요는 이내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나기 시작했고, 현금에 대비한 자산의 가치는 천장을 모르고 뛰어올랐다. 회사에서 받는 월급은 제자리걸음인데, 부동산과 주식은 몇 배씩 가격이 뛰는 기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바이러스의 창궐 이후 증시가 한 번 크게 꺾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증시가 매번 전고점을 경신할 만큼 경기가 반전된 것은 아니었다. 기업들의 평균적인 이윤 창출 능력이 몇 배 올랐거나 혹은 그러한 미래가 도래할 것이라는 확실한 전망도 없는 상황에서, 1년 만에 코스피와 S&P500 지수가 두 배 이상 오른 것은 분명 정상이 아니었다. 각국 증시 그래프는 한 번도 도달하지 못한 역사적 고점을 너무도 쉽게 경신하고 있었다.


  부동산 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집이나 토지는 매매가가 다른 자산에 비해 높으므로, 대개 대출을 동반해서 구매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격이 천정부지로 상승하면 대출받아야 할 금액이 커지기 때문에 수요가 자연스럽게 줄어들면서 오름세가 진정되어야 했다. 그러나 초저금리와 유동성은 비싼 매물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춰주었고,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은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안고 주저 없이 고액의 대출을 받았다.



…중국 견제를 민주당의 조 바이든이 이어가면서 핵심 기술 등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가열되고 있다. 위기 시를 대비해 반도체 같은 핵심 제품을 자국에서 생산하기 위한 정부 지원 역시 본격화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 위기가 시작되면서 적극적 재정정책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고, 미국에서는 1930년대 대공황 시대의 뉴딜 프로그램을 상기시키는 대규모 정부지출이 추진되고 있다.
(전주성 著 『재정전쟁』, 웅진지식하우스, 챕터 '시대 조류와 경제 발전 단계' 중에서)


  한쪽에서 자산시장이 불타고 있는 동안 각국 정부는 과감하게 나랏빚을 져서 재정지출을 늘려 경기부양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각국의 중앙은행이 금융경색을 막기 위해 회사채까지 사들이며 무제한적인 양적 완화를 실시하고 있던 상황에서, 정부도 소비를 진작하기 위해 과감하게 돈을 풀었던 것이다. 모두가 빚에 대해 너무도 관대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팬데믹 쇼크로 마비된 세계 공급망은 자국 내에 완결성 있는 공급망을 확충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확산시켰다. 그러나 효율성을 기준으로 최적화된 공급망을 한 나라 안으로 돌려놓겠다는 발상은 시간상으로나 비용적으로나 한계가 뚜렷했다. 단기간에 자력으로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미국은 이례적으로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여 타국 기업 공장의 본토 유치에 나서기도 했다.


  당면한 경제 위기 앞에서 국민이 바라보는 경제 문제는 그 종류가 너무 많았다. 임금의 감소와 소비의 위축, 공급망의 차질과 저조한 경제성장률이라는 복합적인 난제를 단번에 푸는 것은 아무리 유능한 정부라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공급 충격과 유동성 범람이 파생시킨 골칫덩어리를 해결하기 위해서 시장이 충격에서 회복할 만한 시간이 필요했다. 정부의 개입이 잘못된 방향으로 이루어지면 더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불행히도 자국민의 정치적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은 약속한 듯이 재정지출 확대를 고수했다. 그들이 바라는 소비 진작이 이루어졌으나, 제대로 된 공급망의 회복 없이 소비가 자극되면서 실물경제에도 인플레이션 압박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금융경제의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유동성 살포를 선택한 중앙은행처럼, 정부도 실물경제 부양을 위하여 부작용을 경시한 채 적자재정이라는 쉬운 길을 선택한 것이었다.



가계의 상환 능력을 평가하는 보편적인 지표로는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통용되는데, 2021년 3월 말의 가계부채 3,170조 원을 적용하면 230%에 달한다. …평균 DSR로 환산하면 70% 내외로 추정된다. 전체 가계 평균 DSR이 70%라는 것은 평균 가계가 원금의 상당 부분을 상환하지 않거나 추가 대출을 일으켜 원리금을 상환하면서 경제 활동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서영수 著 『2022 피할 수 없는 부채 위기』, 에이지21, p.40)


  경제의 실질적인 규모 확장을 동반하지 않은 자산시장의 팽창이란, 근본적으로 지속될 수 없는 거품에 불과하다. 2021년에도 예외는 없었다. 무역 의존도가 높아 세계 경제의 여건 변화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국 증시가 가장 먼저 고점을 찍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단기에 급등한 소비량에 맞추기 위해 원자재 가격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으며, 공급 여건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기업 전반의 기대 이윤이 감소했기 때문이었다.


  끊임없이 유동성이 공급되고 신규 투자자가 유입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진 많은 사람들은 심상치 않은 시그널에 큰 관심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의 대대적인 재정정책이 경기를 확실히 부양할 것이라는 기대가 투영되어 선진국 증시에는 자금 유입이 끊이지 않았다. 테슬라와 애플로 대표된 기술주들은 미래 시장에 대한 장밋빛 전망으로 글로벌 경제에 다가오는 또렷한 그림자를 가리고 있었다.


  실물경제에 선행하는 증시에 이어 그것에 후행하는 부동산 시장도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것이 점점 명확해졌다. 젊은 연령층을 중심으로 한 수요는 여전히 존재했지만, 너무 많이 오른 집값으로 인해 소득 대비 부채가 지나치게 많아진 것이다. 추가적인 유동성 공급이 없는 한 매수자 진영이 위축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영혼까지 끌어모아도 감당하기 힘든 집값에 결국 2021년 하반기부터 매매량이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경제학자 카를 케이스와 로버트 쉴러는 주택을 투자처로 보는 상황
자체가 주택 버블이 갖는 정의적 특징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윌리엄 퀸·존 D. 터너 著 『버블: 부의 대전환』 중에서)


  인플레이션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동시에 자산 가격의 상승세가 무뎌지자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물가 상승으로 인해 기존 소비 패턴을 유지하기 위해서 더 많은 돈이 필요한데, 자산 가격이 생각대로 오르지 않는다면 대출 상환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미 자산시장은 초저금리가 유지되어야만 스스로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임계점 직전에 있었다.



"부동산 버블을 이용해 큰돈을 벌어보고자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남녀를 불문하고 거의 없었을 것이다." 특히 단순히 땅을 사고팔기만 하면서 레버리지로 큰돈을 버는 행운과 같은 스토리는 투자자들 사이에서 빠르게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형성하게 했고, 일부 사람들이 자산보다 훨씬 많은 대출을 받아 투기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위의 책, p.172)


  이 구절은 19세기 말 호주의 부동산 열풍을 표현한 이야기이다. 현대인은 그 시절 사람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고, 경제에 거품이 발생했던 시절을 겪은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심지어 경제위기를 선제적으로 경고한 경제학자들의 인터뷰도 원한다면 얼마든지 인터넷 뉴스를 통해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뜨거운 시장과 쉴 새 없이 날아드는 정보에 갇힌 사람들은 또다시 독이 든 거품을 들이켜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물론 버블 경제가 역사에 해로움만 남기는 것은 아니다. 버블 경제 때 주목받은 것들이 다음 세대에 포텐셜을 발휘하며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대표적인 사례가 불과 20년 전에 존재했다. 하지만 버블이 꺼져가는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고난을 겪는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을 서로 연결시킨 경제는 우리가 동고동락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2008년 이후 세계 경제는 위기가 닥칠 때마다 양적완화와 대규모 부양 정책 등의 임시방편으로 일관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2021년 말에 이르러 중앙은행은 경기가 꺾일 것을 직감하면서도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긴축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적자재정이라는 필살기를 남발한 정부 역시 더는 기력을 소모해선 안 되었다. 예전과 달리 빚 폭탄을 주저 없이, 그리고 안전하게 떠안아줄 거인이 없는 것이다.


  경제계의 마약성 진통제인 완화적 통화정책과 미래에 활용해야 할 여력을 현재로 끌어오는 재정정책이 10여 년 만에 그 약효보다 부작용이 큰 것으로 판명되었다. 갖가지 문제들이 실타래처럼 얽히며 생긴 복합 위기로 인해, 누구도 고통을 피할 수 없는 절망의 시간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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