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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Jul 23. 2022

21세기판 골드러시가 된 자산시장

유동성이 만든 부동산, 코인, 주식 광풍

  지난해를 달군 가장 큰 이슈라 하면 단연 폭등을 거듭하는 자산 가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칠 줄 모르는 비트코인의 신고가 등반과 거침없이 치솟는 수도권의 부동산 매매가는 지겨우리만치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었다. 삶이 팍팍하다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이전보다 살림이 풍족해졌다는 말을 별로 들어본 바가 없는데, 유독 자산시장에서만 그러한 폭발적인 추이가 나타났던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이런 현상이 나타났지만, 사회에 미친 반향이 우리나라만큼 큰 곳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동시다발적으로 자산 가격이 폭등하자 시장에 먼저 뛰어든 사람들이 큰 이득을 보았고, 선발주자와 후발주자 간의 격차 그리고 후발주자와 레이스에 뛰어들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간격이 벌어질수록 불참자의 불안감이 커져만 갔다.


  시간이 지나 자산시장의 그래프가 정점 근처까지 올라갔을 무렵 사람들의 아우성이 극한으로 치달았다. 더 이상 감당 가능한 수준을 넘어버린 집값에 많은 이들이 좌절했고, 그들 중 누군가는 자포자기를 하거나 부동산 시장보다는 접근성이 높은 증시, 코인 레이스에 합류했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사람들이 광란의 레이스가 펼쳐지는 시장의 신규 참여자가 되는 과정이 2020~21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분명 21세기 초에 재현된 골드러시였다.




문제는 한국이 2012년 이후 GDP 갭이 지속적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데 있다. 이렇다 보니 경제 전체의 인플레 압력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참고로 국제통화기금(IMF)은 2020년 한국의 GDP 갭이 코로나19 쇼크 등으로 인해 마이너스 폭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론 최근의 물가상승률 하락 현상은 한국만 겪는 일이 아니다.
(홍춘욱 著 『디플레 전쟁』, 스마트북스, p.37)

  

  세계 경제가 디플레이션을 피하기 위해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막대한 유동성을 불어넣어 왔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경제학자들은 기술 혁명으로 생산력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찾아온 공급 견인 디플레이션이 아닌, 실질적인 수요의 위축으로 발생하는 수요 견인 디플레이션이 얼마나 위협적인지 잘 알고 있다. 소비와 투자가 맞물리면서 계속 경제에 하방 압력을 가하는 치명적인 악순환만큼 공포스러운 것도 드물다.


  2010년대 후반에 들어 힘겹게 기지개를 켜나 싶었던 인플레이션은, 코로나 사태를 맞아 다시 한번 고꾸라졌다. 심대한 충격에 각국은 일제히 기준금리를 크게 낮추었으며, 디플레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제한 양적완화에 이어 질적완화에까지 손을 댔다. 실물경제가 멈추고 금융경제가 경색 상태에 이르는 파국을 피하고자 중앙은행과 정부가 천문학적인 규모의 자금을 시장에 불어넣었다.


  바이러스의 창궐은 분명 통제 가능한 영역을 벗어난 변수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재임 기간에 경기침체가 오는 것을 피하려 갖은 애를 쓰는 법이다. 정치인들은 내수를 부양해야 할 이유가 있었고, 경제학자들도 단기 패닉에 의한 도미노 효과를 막기 위 구제, 부양책에 지지를 보냈다. 그렇게 대규모의 자금이 금융지원, 실업수당, 소득보조의 형태로 사회 각지에 쏟아지게 되었다.



팬데믹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은 대출동결조치로 집을 팔지 않고 버틸 여유가 생겼고, 소득이 줄어든 사람들은 이자 부담이 줄어든 것이다. 특히 연준이 시중에 통화를 살포하면서 주택시장과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흘러 들어갔고, 이들 시장은 일시적 충격에서 쉽게 탈출할 수 있었다. … 지금은 팬데믹이 리스크가 되어 시장 자산가격에 반영이 끝난 시점이다. 앞으로 경제는 회복될 일만 남았다.
(한상완·조병학 著 『트리플 버블』, 인사이트앤뷰, p.141)


  쓰러지기 직전이었던 경제가 긴급 수혈을 받고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정책 입안자들의 뜻대로 풀리진 않았다. 시중에 풀린 막대한 유동성은 본래 소비자들의 구매 행위를 자극함으로써 생산과 소비를 촉진하고, 금융경색을 해소하려는 목표에서 공급된 것이었다. 막상 일련의 정책을 실시한 뒤에는 코로나19 이전과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실물경제보다 금융경제가 일어나는 속도가 더 빨랐던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고용이 축소되고 사람들의 행동반경이 제약되었기 때문에, 시민들이 금전적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그것이 바로 소비 시장으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이전처럼 많은 이들이 이곳저곳을 드나들고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기 위해서는 팬데믹의 확산이 먼저 진정되어야 했기에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사람들은 수중에 쥐어진 돈을 가지고 자산시장에 합류했다.


  유동성의 덕을 본 자산시장은 낮은 금리라는 우호적인 조건도 갖춘 상태였다. 차입 비용이 전례 없이 낮아진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자산시장의 선발대로 뛰어들었다. 주식시장이 바이러스 확산의 충격으로 단기간에 큰 폭의 내림세를 보여준 뒤였으며, 부동산 시장은 이전에 비해 늘어난 유동성과 금리의 효과로 경기 충격을 잘 방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눈치 싸움'에 가까운 불꽃 튀는 레이스가 전개되기 시작했다.



세계 주요 선진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저금리 정책을 편 결과 노르웨이, 뉴질랜드, 스웨덴 등 많은 나라의 주택 가격이 올랐다. 그렇지만 BIS에서 발표한 세계 주요국과 비교하면 주택 가격 상승률은 한국이 가장 높다. … 현 정부 4년간 전국 아파트 매매 가격 상승률은 58.3%로 이전 정부의 상승률 22.3%보다 2.6배나 높다.
(서영수 著 『2022 피할 수 없는 부채 위기』, 에이지21, p.62~63)


  코로나19의 등장 이전부터 세계 각국이 통화량을 불리고, 재정 지출을 늘리는 방식으로 빚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고 있었다. 그런데 팬데믹의 창궐로 시장에 추가적인 대규모 유동성이 투입되었으니, 어느 부문에서든 폭발적인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것은 자명했다. 그 스타트를 부동산과 주식 시장이 가장 먼저 끊었던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종합주가지수인 S&P500 지수는 코로나 아웃브레이크 직후 무려 30% 가까이 증발했지만, 대규모 금융지원이 즉각적으로 발효되며 2021년 초 전고점을 돌파했다. 주택시장의 가격지수인 케이스-쉴러 지수는 충격을 잘 흡수한 부동산 시장의 건재를 반영하여 단기 내림세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의 지수는 마치 경쟁을 하듯이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선발대에 합류한 인원이 늘어나면서 자산시장이 보여주는 기울기가 가파르게 변하자, 후발대에도 점차 참가자 수가 불어나기 시작했다. 낮은 금리와 자산 가격 상승세의 가속화는 높은 레버리지 효과를 누리려는 사람들의 좋은 타깃이 되었다. 특정 섹터의 성장성이 높다는 장밋빛 전망이 쏟아져 나올 때마다 신규 주주를 자처하는 이들이 생겨났고, 이 기회에 내 집을 마련하겠다는 사람들이 주저 없이 빚을 지고 시장에 뛰어들었다.



2020년부터 NFT는 제대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 2020년 10월, NFT에 관심을 가지게 된 비플이 자신이 작품 3개를 토큰화해 13만 달러가 조금 넘는 가격에 팔았다. 그런데 불과 두 달 뒤인 12월, 그의 'Everdays' 컬렉션에서 나온 몇 개의 한정판 NFT가 총 350만 달러 이상에 판매됐다고 하니 놀라운 상승세다.
(성소라·롤프 회퍼·스콧 맥러플린 著 『NFT 레볼루션(e북)』, 더퀘스트,
챕터 '2020~현재: 뜨거운 관심 속 NFT' 중에서)


  우리는 시장의 전망과 자신이 바라보는 대상의 내재 가치, 그리고 그것이 가져다줄 효용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자산에 돈을 쓰는 행위를 투자라고 부른다. 그리고 시장의 격변하는 흐름에 동조해 단기간에 시세차익을 얻으려 자산에 돈을 쓰는 행위를 투기라고 부른다. 자산시장과 부동산 시장이 뚜렷한 오름세를 보이자, 시장이 어느새 투자자와 투기자가 섞여 북새통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러자 판도를 지켜보던 사람들 중 야심 가득 이들은 좀 더 대담한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자산의 가치가 계속 뛰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투자금액이 필요한 주식이나 부동산보다, 적은 돈만 넣어도 운이 좋으면 몇십 혹은 몇백 배의 이득을 볼 수 있는 가상화폐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흘러넘치는 유동성은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수익률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성향이 강한 영역에 유입되었다.


  비트코인의 존재는 알았지만 그 가치에 의문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도 가파른 우상향 시세 곡선의 매력을 거부하지 않고 1년 만에 400% 이상의 폭발적인 상승률을 만끽했다. 기술의 발전과 새로운 플랫폼의 출현은 거래를 촉진해 구경꾼들을 붙잡았고, 기존 거래자들을 더욱 깊게 매료했다. 블록체인을 응용하여 코인과 같은 시기에 존재감을 끌어올린 NFT도 독자적인 시장을 통해 수많은 참여자들을 불러 모으면서 활황을 구가했다.


  실물경제 부양에 들어갔어야 할 자금이 먼저 강한 상승세를 보인 자산시장의 수익률에 이끌려, 주식, 부동산, 코인 시장의 신규 유동성으로 변해버리는 과정이었다. 부채의 화폐화로 조달된 돈을 지원금으로 받아 든 시민들이 정부의 빚에 자신의 빚을 얹어 자산을 매입한 셈이다. 레이스의 참가자들은 서로의 성공 사례를 비교하면서 아쉬움과 환희를 표현했고, 불참자들은 불타는 시장의 수익률을 보며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수십 년간 기술의 발전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랐습니다. 더 이상 지구에는 개발하거나 발전시킬 무언가가 별로 없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 하지만 기술의 발전 속도로 볼 때 화성 테라포밍은 한동안 꿈만 같은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화성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 무엇일까요? 이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메타버스입니다.
(김상균·신병호 著 『메타버스 새로운 기회』, 베가북스, p.37~38)

 

  이 무렵 우리의 귀에 가장 자주 들려온 단어 리스트에서 상당히 상위권에 들 '메타버스'라는 말이 통용되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활동량이 늘어난 변화를 감지한 기업들이 가상현실의 수익 창출 잠재력을 포착했기 때문이었다. 사무실에서의 회의가 화상 회의로 대체되고, 물리적 현실에 존재하는 자신과 다른 별도의 분신을 디지털 환경 안에 구축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혹자는 메타버스의 도래를 지켜보며 데자뷔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약 20년 전에도 관련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차원이 다른 시대를 열 것이라는 기대 속에, IT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기만 하면 관심을 한 몸에 받았으며 시장 가치가 훌쩍 뛰어오르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소위 '닷컴 버블'의 진행 과정처럼, 메타버스라는 단어와 엮이기만 하면 그곳에는 여지없이 투자자금이 쏟아져 들어왔다.


  중앙은행으로부터 끊임없이 흘러들어오는 유동성은, 자산시장을 과열로 이끈 것에 이어 새로운 섹터를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자산가치가 폭등하면서 현금, 월급의 가치가 평가절하되는 현상이 나타났고, 투자를 하지 않으면 손해를 본다는 마인드가 빠르게 퍼져나갔다. 사람들의 경쟁 심리가 투자 열기와 만나며 격한 화학작용을 일으켰고, 결국 광범위한 영역에서 투기가 만연해지는 비정상적인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역사책을 펼쳐볼 것까지도 없이, 우리는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에 벌어졌던 일이 어떤 양태였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금융의 발전이 모두가 더 쉽게 돈을 융통하고 지출할 수 있게 함으로써, 주위에 보이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노다지를 캐는 일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동안 그들 중 누군가가 투자자가 아닌 투기꾼으로 변신했다. 그렇게 21세기 버전 골드 러시는 드라마가 아닌 다큐멘터리가 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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