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란카피 Aug 27. 2022

머리가 새하얘지는 초등 아이 글쓰기

마음껏 VS 틀에 맞춰

글을 쓰는 나로서 막상 내 아이의 글 쓰기는 좀체 맘처럼 되지 않는다. 초등학교에 가기도 전에 동시 한편은 뚝딱 쓰겠지? 일기도 좀 빨리 써봐도 좋을 텐데. 까짓것 독서감상문은 5줄 정도로 간단히 시작하면 좋겠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온다.


한글에 막 적응을 했던 초등학교 1학년의 아이는 나름 주말에 TV 시청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시를 썼고 나름 영 아니진 않았다. 5분 만에 쓴 시 치고는 읽어줄 만했다. 역시 내 아들이네 하며 글 쓰기에 소홀하던 찰나 2학년에 들어서면서 꾸준하지 못한 탓인지 아이는 글쓰기 자체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초등 1학년 때 쓴 아이의 동시
초등학교 2학년 때 아이가 만든 글 퍼즐


작년 아빠와 즐기며 글을 쓰자며 틀에 박힌 기승전결의 글쓰기를 가르치는 논술학원을 관두고선 즐기며 글쓰기와 멀어져 버렸다. 아이는 아이대로 학원 셔틀에 바빴고 나는 나대로 회사 일로 정신없이 보낸 시간들, 그리고 초등학교 4학년을 맞았다. 작년 글쓰기 공모전에선 운 좋게 특선을 받게 되어 상금도 두둑이 받았지만 벼락치기 같은 글쓰기는 결국 오래가지 못했다.


어젠 아내와 아이의 방학 숙제인 독서감상문을 보며 약간의 설전이 벌어졌다.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맞지 않는 부분을 다수 발견했고 참고 참다 격분한 아내가 아이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글쓰기 학원을 가지 않는 대신 아빠와 주말에 독서와 글쓰기를 하기로 했지만 실천하지 못했고 결국 이 사달이 났으니 당장 다음 주부터 글쓰기 학원을 가라는 거였다. 아이는 한사코 거부했다.


글쓰기 학원이 결국은 글의 틀에 맞게 가르칠 거고 아이의 창작을 가로막을 거라는 내 생각과 상충되어 꾹 참고 있다가 좀 더 생각을 해보자고 한마디 던졌다. 주말마다 꾸준히 아이와 글쓰기를 하지 못한 나에 대한 원망도 섞였을 아내는 다행히 폭발하진 않았고 결론을 내진 못했지만 적당한 선에서 타협했다.


최소한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할 줄 알면서 글의 틀은 익혀야 한다는 아내와 굳이 한 자라도 틀리면 안 된다는 강박보다는 맞춤법은 좀 틀리더라도 글의 방향과 느낌, 가능성을 찾아주는 과정을 함께 걸어가는 게 필요하지 않냐는 나. 하지만 결국 이 두 가지의 상충된 생각은 상충된 생각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절충이 필요하다는 것도 말이다.

쇼미더머니에 빠져 랩 가사를 썼던 초등 3학년때의 아이


가장 기본적인 것들에 대한 숙지는 필수, 그 과정 속에서 틀에 박힌 글보다는 생각을 담은 글의 플로우를 머릿속에 그리고 기승전결보다는 아이 맘대로 상상대로 마음껏 쓸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게 늘 아이에게 귀에 딱지가 않도록 이야기를 해주지만 잘 되지 않는 게 사실이다. 결국 아이가 즐기며 하고 싶도록 만들어줘야 하지만 그것 자체가 가장 어렵다.

초등 4학년인 아이가 지금 방학숙제로 쓴 독후감상문의 일부


반면에 조카의 아이는 특별한 교육을 하지도 않았지만 습관처럼 독서를 한 탓인지 시에 대한 접근 자체가 다르다. 그러면서 늘 생각하고 시를 쓰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한다. 이쯤에서 글도 역시 훈련을 통한 재능도 있지만 타고나는 것인가 싶다. 재능을 물려주지 못한 내 탓에 아이에게 미안해지는 대목이다.

조카의 아이가 쓴 동시 공모전 수상작 시화


작은 동네 글방을 열어 동네 아이들과 내 아이와 함께 글을 함께 쓰는 게 꿈이었다. 시:집이라는 카페 겸 글방. 하지만 아이와의 글쓰기가 쉽지 않은 과정을 몸소 체험하며 그 꿈을 조금씩 잊어가고 있다. 내 아이 글쓰기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무슨 남의 아이 글을 함께 쓴다는 말인가 싶어.


토요일 오늘은 아이가 생애 첫 바이올린 콩쿠르를 나가는 날이다. 어떤 성적이 나와도 충격을 먹지 않을 각오를 한다. 피아노, 바이올린, 드럼, 미술, 수영, 영어, 수학, 레고로봇 등 학원에 방과 후 수업에 매일매일 녹초가 되어 집에 오는 초등학교 4학년 아이지만 주말도 노는 시간이 많지 않아 TV와 게임 시간이 매일매일 한정된 이 시대의 너무나 평범한 아이지만 주말마다 잠시 틈을 내어 함께 글을 쓰는 시간을 꼭 가져야겠다.


이 모든 과정이 부모를 위한 과정인지 아이를 위한 과정인지는 아직도 혼란스럽지만 아이가 훌쩍 큰 어느 날 아이와 맥주 한잔하면서 오늘을 회고할 날이 오길 빈다. 그때 아빠와 함께 한 글쓰기가 네게 어떤 의미였는지, 지금 네게 힘이 되는 순간이었는지, 너도 너의 아이가 생긴다면 아빠처럼 그렇게 할 건지 묻고 싶다.


물론 아이의 답은 몰라!라는 아주 간단한 외침 뿐이겠지만 말이다.

이전 13화 내 아이에게 필요한 여섯 가지 지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