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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카피 Sep 13. 2022

초등학생 아들의 여자 친구

내 아들에게 여자 친구가 생기다니!

모처럼 연차였던 날이었다. 초등학생 아들의 하교 시간을 기다려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일찍 마치고 나온 아이들이 철봉에 매달려 놀고 있었다. 철봉에 매달린 아이 중에 한 남자아이에게 다가가는 한 여자아이, "야, 나 네가 마음에 드는데 폰 번호 알려주라!" 어안이 벙벙한 남자아이는 잠시 멍하니 있더니 "못 가르쳐 주겠는데?".

@ pixabay


굳이 요즘 아이들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어쨌든 좀 다르다. 표현에 거침없고 주저함에 저항이 없다. 속만 태우던 우리 때와는 다르다. 물론 그것도 성향 차이, MBTI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감성주점의 자연스러운 부킹 문화에 익숙한 MZ 세대와는 또 다른,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갈 넥스트 제네레이션이다.


여름방학,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대학교 스포츠 클럽을 다녔던 아들, 방학과 동시에 스포츠 클럽 과정이 끝이 났다. 매일 하루 종일 다양한 스포츠 종목을 만끽할 수 있어 너무 좋았던 아들이었다. 과정이 끝난 이후 매일같이 밤마다 전화가 걸려왔다. 아들은 전화가 올 때마다 방문을 닫고 통화를 이어갔다. 엄마, 아빠는 방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1주일이 지난 후 조심스럽게 아들에게 물었다. 밤마다 전화가 오던데 무슨 일이냐고. "스포츠 클럽 같이 다녔던 OO인데 오늘부터 사귀자고 했어." 뭐라고 답을 해줘야 할지 몰라 잘해보라고만 했다. 자주 전화가 걸려오던 터라 아들에게 넌 전화를 안 하냐고 물었더니 그 친구가 너무 자주 전화를 해서 먼저 전화를 걸 틈이 없다고 했다. 여자  친구가 먼저 전화를 자주 한다고 남자 친구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 건 연애에 대한 기본이 아니라고 조심스럽게 일러줬다.


그렇게 2주의 시간이 흘렀다. 다행히 우려와는 달리 통화의 주기는 조금씩 줄어들었고 서로의 감정이 더 빠르게 식고 있는 듯했다. 모르긴 해도 여자 친구가 아마도 지친 게 아닌가 하는 남자로서, 아빠로서의 합리적 의심을 해봤다. 물론 같은 초등학교도 아니고 먼 거리의 학교를 다니는 친구라 그럴 수도 있다지만 아들의 첫 연애 치고는 너무 시시한 에피소드라 한숨이 났다.


가족과의 외식 자리에서 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아빠의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 시절 라떼는 말이야. 유선 전화밖에 없어 여자 친구와 통화도 어려웠고 컴퓨터도 없던 시절이었어. 여자 친구와 손 편지를 주고받으며 겨우 약속 시간을 정해 만나곤 했었어. 아빠 책상 수납장에 아빠 초등학교 시절 일기와 연애편지가 고스란히 파일에 철되어 보관되어 있는거 알지?" 아내가 힐끗힐끗 쳐다봤다.


그리고 아들의 표정을 살폈다. 아빠, 응 알겠어. 듣는 둥 마는 둥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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