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중견기업연합회 반원익 부회장의 동아일보 인터뷰 기사(송충현 기자)를 다시 꺼내 본다. ‘입사 13년 만인 40세에 최연소 임원이 됐고, 15년 만에 계열사 사장이 됐다. 15년간 온전히 쉬어본 날이 손에 꼽을 정도. 주말에 출근하는 것은 물론이고 휴가도 거의 가지 않았다. 인생을 일과 회사에 모두 걸었지만 그는 “당시 그랬던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상사들로부터 “대단한 놈” 소리를 듣고 일했지만 돌이켜보면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는 것. 특히 가족과 멀어진 게 가장 안타까웠다고 했다. “아직도 아이들과 서먹해요. 애들은 내가 옆에 있는데도 부엌에 있는 엄마에게 내 일정이나 안부를 물어요. ‘엄마, 아빠 저녁에 어디 간대?’ 이런 식이죠. 아직까지 회복이 안 되더라고요. 뼈아픕니다.”그는 청년들이 개인 시간을 회사에 모두 쏟지 않도록 상사들이 잘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충 일하게 놔두라는 의미가 아니다. 일은 업무 시간에 시키고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게 성과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나 자신과 가족이 회사보다 중요한 직원들에게 휴일에 업무 지시를 내려 스트레스를 준다면 회사에 어떤 도움이 되겠냐는 것.
그렇게 그는 당시 칼퇴근 전도사로 직장 문화를 바꾸는 데 큰 일조를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2016년 다섯 살 아들에게 보냈던 편지
사랑하는 아들, 지용이에게
아빠는 매일 늦고,
일찍 온다는 약속도 못 지키는
거짓말쟁이라고 하는 우리 지용아.
아빠는 이 편지를 일찍 쓰겠다는 스스로의 약속도 못 지키고
오후 4시에 시간에 쫓기며 쓰고 있어.
아빠는 늘 지용이에게 미안하단다.
터닝메카드 배틀도 해야 하고,
윷놀이도 해야 하고, 숨바꼭질도 해야 하는데,
일찍 집에 가지 못해 미안해.
아빠는 행사 마치고
오늘 밤에도 출장을 가야 한단다.
그리고 지용아, 너무 고마워.
아프지 않고, 무럭무럭 쑥쑥 건강하고,
행복한 아이로 자라줘서.
하지만 지용아 알지?
아빠가 늘 지용이한테 하는 말.
세상에서 아빠가 지용이를 가장 사랑한다는 거.
우리 건강하고, 행복한 가족으로
예쁘게 살자.
아빠 출장 가서 빨리 올게!
2016년 8월 26일 지용이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지용이 아빠가
그날은 어린이집에서 아빠와 달을 보며 산을 걷는 행사가 있는 날이었고 한 달 전부터 아빠가 함께 가겠노라 찰떡같은 약속을 했던 터였다. 하지만 급한 출장이 생겼고 그날도 어김없이 거짓말쟁이 아빠가 되어야 하는 날이었다. 급기야 미안한 마음에 편지를 썼고, 아이는 펑펑 울며 엄마와 밤길을 걸었다고 했다. 아이와 함께한 11년의 시간을 돌아본다. 난 아이에게 어떤 아빠이며, 어떤 아빠로 기억되고 싶은 걸까. 후에 어떤 아빠로 남겨지게 될까.
직장인에게 가장 소중한 아빠라는 이름의 본캐
바리스타고, 부동산이고, 시인이고 다 무슨 소용. 내 아이에게 좋은 아빠가 아니라면 그 어떤 부캐도 다 부질없다. 혹독한 야근의 시대는 가고 워라밸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물론 아직도 그러지 못한 곳도 있으리라. 쪼개 쓸 시간은 언감생심, 직장인 부캐라는 단어조차 배부른 소리로 들리는 분들 역시. 하지만 어떤 상황의 직장인이든 만들어야 할 부캐가 아니라 잊어선 안 될 아빠라는 본캐를 잊지 말자.
아이와 잘 노는 아빠가, 일도 잘한다.
아빠 육아라는 말이 있다. 아이가 두 살이 되던 해부터 아빠 학교 교장인 권오진 선생님의 아이와 노는 방법에 대해 필기를 해가며 아이와 빈틈마다 놀았다. 영상 매체가 아니라 몸으로 놀 수 있는 놀이 방법을 찾거나 만들어 아이와 함께 했다. 아빠는 주말에 잠시 놀러 집에 오는 사람이 아니라 늘 나와 노는 사람으로 아이와 함께 했다. 아빠는 결코 아이와 놀아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함께 노는 사람이다. 해줘야 하는 걸 해주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 하는 놀이여야 한다.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 그게 사랑이더라.
부모 욕심은 끝이 없다. 돌이 되기 전부터 말을 하기 시작한 아이를 보며 혹시 영재?라고 생각했던 때가 떠오른다. 누구든 내 아이는 내 눈에 남다르다. 그래서 놀이부터 학습에 관련한 많은 교육을 다양한 채널과 함께했고,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의 길목에 섰다. 영재학교도 갔으면 좋겠고, 글쓰기도, 미술도, 음악도 모든 분야에 남달리 뛰어났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그게 그저 아이를 위한 진심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가 할 수 있는 만큼, 그 과정을 즐기는 아이로 클 수 있도록 응원하게 되었다. 조금 모자라면 채워줄 수 있도록, 더 나은 길보다는 더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부모의 역할을 다하자. 그게 결국 사랑이더라.
아이를 위한 육아력, 결국 함께 크더라.
내 인생에 아이와 함께한 지금까지의 11년은 성장이 멈췄던 청소년기를 다시 재현해준 시간들이었다. 물론 키가 크진 않았지만 마음의 키가 그보다 훨씬 커졌다. 아내와의 사랑에서 아이와의 사랑으로, 그리고 가족의 사랑으로 커져온 11년의 시간, 그리고 앞으로 더 행복하게 만들어갈 그 이상의 시간을 생각한다. 내게 아이가 없었다면 어떤 인생이었을까 상상만해도 아찔하다. 직장인이지만 아빠인, 직장 생활에 더 올인하고 퇴근 후 아빠라는 이름으로 더 열심히 아이와 노는 우리를 위해! 브런치를 준비하는 일요일 아침, 책을 읽던 아이가 다급히 나를 부른다. “김 아빠, 어디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