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해서 기쁜 그대에게
그는 무주택자였다. 외국인 아내를 두었고, 두 명의 자녀가 있다. 청약 통장은 있지만 만들어 놓고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어떻게 청약하는지도 모르는 그였다. 보다 답답해 마침 분양을 앞둔 부산 거제동의 브역대신평초(브랜드, 역세권, 대단지, 신축, 평지, 초품아) 울트라 대어 아파트를 추천했다. 다문화 특별공급과 1순위를 동시에 신청했고, 그는 특별공급으로 당첨되었다. 계약금을 간신히 맞춰 계약을 했고, 여유롭게 입주를 기다리고 있다. 이미 분양가에서 2배가 오른 상황으로 그는 요새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그와 부산역 평산옥에서 수육에 소주 한잔하며 인생을 이야기한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그 역시 무주택자였다. 마흔이 넘도록 집이 왜 필요해하며 전세를 살았다. 몇 번 전세를 옮겨가며 이사가 귀찮은데 옮겨 갈 때마다 전세금이 올랐다. 물어보니 집값도 계속 오르는 거였다. 그래서 그는 물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에게도 마침 분양을 앞둔 부산 남천동의 브역대신평초(브랜드, 역세권, 대단지, 신축, 평지, 초품아) 울트라 대어 아파트를 추천했다. 생애 첫 청약이다 보니 다행히 가점이 높았지만, 턱걸이로 1순위 당첨되었다. 현재 그 아파트는 분양가의 3배가 되었다.
부산이 한참 아파트가 오르는 시기였다. 부산 센텀의 아파트를 사려다 에이 떨어질 건데 하며 와이프의 말을 무시했던 그는 매일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 아파트에 전세를 살던 그때 오를 만큼 올랐다고 생각한 그 아파트를 살까 말까를 고민하던 그. 이번만큼은 아내의 말을 듣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그가 나에게 물었다. 나 역시 와이프와 같이 고민했고, 냉큼 사라고 일렀다. 지금 역시 그 아파트는 매매했던 금액의 두 배가 되어있다.
그는 부산에 아파트가 있으면서 일찍이 선구안으로 경기도 용인의 40평대 아파트에 투자를 했었다. 가파르게 오르던 그 아파트가 갑자기 하락 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결국 아파트를 정리했고, 부산의 아파트마저 정리한 후 전세를 시작했다. 그가 듣기 싫어도 계속 집을 사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듣지 않았고, 다행히 부산이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하던 작년, 구서동 아파트 40평대를 잡을 수 있었다. 배액 배상을 당할 뻔했지만 위기 모면을 잘했다. 현재 그 아파트 역시 몇 억 원이 올랐다.
결국 끝까지 집을 사지 않은 분도 계신다. 그는 부산 대연동의 신축 아파트에 입주해 무려 8년을 전세를 살고 있다. 전세 2년 차에 임대인이 집을 사라고 권유했지만 사지 않았고, 이듬해 몇 억이 올랐다. 그리고 지금은 그 집은 당당하게 분양가의 4배가 되었다. 여전히 그는 그 집에 전세를 살고 있고 언젠가는 부동산이 하락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산다. 이젠 굳이 아파트를 사기보다는 노후를 위한 토지를 사서 집을 지어 살 행복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내가 잘 아는 디자인 회사가 하나 있다. 그들은 부산 연산동에 4층 상가 건물을 사서 한 층을 디자인 사무실로 썼다. 그리고 몇 년 후 두 배보다 조금 높은 수익을 남기고 정리했다. 그리고 인근 거제동의 3층 건물을 매입했다. 1층에 맛집이 있는 곳으로 외관을 리모델링하고 1층의 간판까지 리뉴얼했다. 지금은 물론 그 매입가보다 훨씬 올랐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 분들은 각자 사업을 하면서 부동산 영역에 기민함과 민첩성을 보유했고, 그리고 지속적으로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디자인 사업도 잘하지만 부동산도 잘하는 칭찬 받을만한 회사다.
모든 게 고민이고, 선택이고, 판단이고, 결정이고, 실천이다. 그 과정 속에서 웃지, 울지는 결정된다. 그 속에서 가장 답답한 건 바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실천하지 않더라도 알아보고, 가보고,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 그 부지런함이 결국은 웃음 짓게 만드는 힘이 된다. 몇 개월 반짝하며 부동산에 관심을 가졌다가 실천 후 관심을 끊기보다 지속적으로 트렌드를 알아보고, 임장을 하는 것. 생활형 부동산으로 함께 호흡하다 보면 분명 더 넓은 시각과 안목, 그리고 실행력이 따라와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