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보 자판기인 그와 저녁을 먹었다. 아니지 술을 마셨다. 그 느낌을 잃지 않기 위해 늦은 밤, 후다닥 손가락을 들었다. 그가 추천해 준 부동산을 실천하지 못한 슬픔을 담은 '부동산 말 좀 들을 걸 그랬어요' 두 번째 이야기에 이어, 그가 실천하지 못해 뒷 골 때리는 이야기를 들으며 또 함께 아쉬움을 달랬다. 부동산 상승기에 편승하지 못해 속 쓰린 영혼들의 토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는 부산 해운대구 S아파트의 40평대에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그곳에 입주하기 전 부동산에 정통한 한 후배가 미분양으로 그 아파트 매입을 추천했다고 한다. 분양가에서 -5%가 가능하다고 했고, 그는 무슨 아파트에 할인이냐며 미쳤냐며 거절했다고 한다. 얼마 후 그 아파트는 급격히 오름세를 보였고 5천만 원의 프리미엄을 주고 급히 그 아파트를 매도했다고 한다. 부끄러워 누구에게 얘기하지도 못한다는 그. 그렇게 지금 그 아파트에 오랜 시간 주거를 이어오고 있는 그는 아찔한 1 주택의 아픔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다.
그에게도 부동산 말을 듣지 않아 뼈아픈 사례가 있다. 바로 최근 입주한 부산 송도 힐스테이트. 당시 미분양 물량이 있었던 곳이라 고층 어디든 계약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주위의 많은 추천이 있었지만 그는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조금 흔들려도 되었을 법한데도 말이다. 오늘, 바로 오늘, 그 송도 힐스테이트 35평 고층이 9억 원에 실거래되었다는 소식을 그분께 전했다. 이것 봐, 난 역시 안된다니까. 라며 자책하는 그를 또 아쉽게 바라보았다.
송도 힐스테이트 전경
말을 듣지 않아 뼈 때리는 슬픈 두 번째 사례는 바로 해운대역의 H 생숙(생활형 숙박시설)이다. 당시 부산 최초로 입주민들에게 조식을 제공한다는 광고가 대대적이었던 그곳은 부산에서는 생소한 형태의 분양이었다. 하지만 정말 그곳은 양질의 조식 제공을 실현했고, 1년 새 2억 원의 시세차익이 눈앞에 딱 펼쳐졌다. 아니 대체 진심 정말 난 뭘 하고 있는 것인가. 아무런 설명이 되지 않을 만큼 혼란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그 후로도 그는 여러 차례 추천을 받았고, 더 열심히 그 기회들을 놓쳐왔다.
이제 그는 아파트보다 상가주택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 주차가 가능하며, 임대 수익도 나고, 거주하며 옥상에서 텃밭을 일 굴 수 있는 보다 디테일한 조건이다. 되도록이면 평지에 위치한 도심과 너무 떨어지지 않은 곳이면 좋겠단다. 열심히 입품과 발품, 손품을 팔아 알아봐 드려야겠다. 이제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겠다며 비장한 열의와 각오를 다지는 그. 세상의 모든 부동산이 5년 전 가격으로 내려와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그의 진심 어린 바람이 명징하게 귓가에 남는 밤이다. 이제는 그도 나도 부동산 말을 잘 들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여전히 신중하고, 또 신중할 수밖에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언젠가 부동산을 오픈하게 되면 '명탐정 홈즈'라는 상호를 쓰자는 그의 메시지를 보며, 그 언젠가를 떠올려 본다. 직장 생활은 영원할 수 없으며, 인생 후반전은 분명 준비해야 하는 거라는 걸. 그와의 만남 속에서 스스로를 더 채찍질할 수 있는 찰나를 만끽했다. 부지런히 뛰고 또 달려 그 언젠가의 나를, 우리를 앞서 만날 수 있도록 더욱 심기일전해야겠다. 매 순간 나를 돌아보고, 앞서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