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초반전] 부산 광안리에 한 채의 아파트가 있다면
광안자이 '미분양 물량 처리' 이례적 문자 공지 좋아요
[2017년 11월 26일 부산일보 이대성 기자 기사 발췌]
광안자이가 지난 24일 미분양 잔여 세대의 처리 계획을 문자로 공지한 뒤 25일 추첨을 진행했다. 그동안 공지 없이 자체로 잔여 물량을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던 분양업계에서는 이번 사례가 좋은 선례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광안자이는 지난 24일 오후 모델하우스 방문자 등에게 '광안자이 잔여 세대 추첨·동호 배정 안내'라는 제목의 문자를 보냈다. 문자에는 25일 진행되는 접수·추첨 시간과 구비 서류, 계약금 납부 등이 안내됐다. 이에 따라 25일에는 전용면적 73㎡ 등 3개 평형의 추첨이 진행됐다.
업계에서는 이번 광안자이의 미분양 잔여 세대 처리 방식을 매우 이례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미계약, 부적격 등으로 소진되지 않은 물량을 분양사무소 측이 공개하지 않고, 어떻게 처리할지도 잘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현행법에는 미분양 물량을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하는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않다. 청약 부적격자가 워낙 많아 미분양 물량 발생은 인기 단지에도 흔한 일이다. 그동안 분양사무소는 이를 일부에만 공지했고, 그 처리 방식도 선착순으로 할지, 추첨으로 할지, 내 집 마련 신청자(지난 8월 30일부터 금지)에게 줄지 등 제각각이었다. 이 때문에 분양사무소가 있는 모델하우스 주변에는 미분양 물량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 밤낮으로 대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첨되셨습니다.라는 말을 바로 옆에서 듣다.
무주택이었던 당시 아파트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역시 부동산에 관심이 많던 처남이 광안자이의 미계약 잔여 세대 추첨 현장에 온 가족을 불러 모았다. 정작 자신은 연차를 내지 못해 오지 못했고 우리 가족에 처남댁에 그날 처남댁인 딸을 보러 대저에서 넘어온 사돈까지 함께 ‘뽑기’를 했다. 평형별로 소량의 세대가 남아있던 터였는데 그나마 물량이 많은 31평에 온 가족이 ‘몰빵’했다. 전 평형에 대부분이 1, 2, 3층이었고 유일하게 31평에 8층 10층이 있었다. 평소 로또 5등도 몇 년에 한 번 걸릴까 말까 하던 나였기에 기대 자체가 없었다. 발표의 순간이었고 역시나 똥 손 인증의 순간, 바로 옆에 함께 있던 사돈 어르신이 함성을 질렀다. ‘당첨되셨습니다.’ 31평 중에서 유일한 10층을!
얼떨결에 계약하게 된 아파트
2017년 당시 부동산 시장은 급속한 냉각기였다. 더군다나 광안자이는 당시 부산에서 가장 높은 분양가로 위상을 날릴 때였다. 사돈 어르신은 이미 주택이 있으셨고, 처남 역시 마찬가지, 무주택자인 우리 가족에게 딱 떨어지는 타이밍의 아파트였다. 하지만 그 순간 망설임이 있었다. 이렇게 비싼 분양가의 아파트를? 부동산 하락이 지속될 거 같은데 굳이 지금? 당시 광안자이의 프리미엄은 500~1천만 원 사이로 낮게 형성된 때였다. 어차피 살 집 하나는 있어야 하니 당첨된 사돈 어르신께 피를 주고 사게 되었다. 시세에 맞게.
내게 광안리에 한 채의 아파트가 있다면?
참 오르지 않았다. 다행히 떨어지지도 않았다. 아파트가 지어지는 2년 내내 제 자리 걸음을 하며 부동산 빠꾸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동네북 아파트로 자리매김했다. 조금이라도 얹혀 정리를 해야 하나, 가끔 가족과 광안리에 놀러 가서 주변을 돌아보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누구하나 끝까지 완주하라는 듣고 싶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굳이 그렇게 비싼 아파트를 아직까지 가지고 있었냐는 한심 어린 시선만 가득했다. 어차피 광안리에서 살게 아니라 사직동에서 살 거라면 굳이 광안리 아파트를? 대체 왜? 하지만 또다시 드는 생각. 내게 광안리에 한 채의 아파트가 있다면? 그거였다. 언젠가 와서 살면 되지, 뭐가 대수야. 그래도 광안린데.
입주점검, 퍼펙트, 대출, 그리고 월세
2년의 기다림 끝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입주점검이 다가왔다. 몇 년 전 H사 아파트의 입주점검과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 퀄리티에 입이 벌어졌다. 당시 코로나가 시작되던 초입인데도 철저한 방역은 물론 구석구석 세심한 준비와 안내에 감동했다. 벽지에 먼지가 묻었거나 바닥재에 긁힌 자국 말고는 특별한 흠을 찾아낼 게 없었다. 더군다나 화살표 스티커로 하자 있는 부분에 직접 붙이고 메모를 하도록 해 확실한 확인과 체크가 가능했다. 전세, 월세를 무척이나 고민했지만 전세도 결국 대출이라는 결론에 닿아 일부 대출과 함께 월세 세입자를 바로 구했다. 월세의 일부가 대출이자로 직행하지만, 첫 번째 아파트와 같이 새 아파트에 처음 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내 집, 그래도 내가 살아갈 집이라는 생각에 행복했다. 그렇게 직장인 김부장의 단기간 무주택 탈출은 성공했고, 1년 후 부동산 활황기가 찾아왔다.
어느 날 눈 떠보니 똘똘한 한 채, 하지만 한 치 앞을 모른다.
2년간 부산을 비롯한 전국의 부동산이 들썩들썩 이었다. 서울은 어디든 손가락만 가리키면 하루 지나 올라있었고 전국이 그야말로 부동산 용광로였다. 전국 어디든 재개발 구역을 그리는 화가가 넘쳐났고, 그 화가가 그린 그곳은 여지없이 다음날 물건이 사라지는 알 수도 없고, 말도 안 되는 그런 시기였다. 너무나 갑자기 타오르다 보니 불안이 조금씩 엄습해오기 시작하며 트렌드 하게 떠오른 워딩이 바로 똘똘한 한 채였다. 양도세 규제가 극심해지는 상황에서 여러 채보다 똘똘한 한 채가 낫다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며 똘똘한(까지는 아니지만) 한 채, 가져서 다행이다, 잘했다며 쓰듬쓰담해 주었다. 다시 하락기를 맞이하는 시점에 돌아본다. 과연 이런 똘똘한 한 채가 잘한 일이었던 걸까. 값비싼 한 그루의 나무보다 잘 키운 열 그루의 나무를 분양하는 것이 결국은 위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차곡차곡 저축하듯 부동산을 잘 키우는 알토란 후배에게
가끔 부동산을 물어오는 후배들이 있다. (선배들에겐 조언을 잘하지 않는다. 어차피 실행하지 않으니까.) 스승이라며 자주 연락이 오는 그는 경기도권의 소액 아파트를 시작으로 이제 5개의 아파트를 가진 알토란 임대인이다. 5층 이하 주공아파트를 집중 공략하는 전략가다. 경기도 안성, 평택, 청주에 이어 강원도 원주까지 전국을 누비며 몸으로 부동산을 배우고 실천한다. 이런 열정보다 일에는 바늘구멍 하나 없을 만큼 더 빈틈없고 치밀하다. 직장은 직장인으로서, 부동산은 부동산으로서 그에 맞는 최선의, 최상의 결과를 내놓는다. 이제는 물건을 미리 물어보지 않고 계약을 하고 연락을 줄만큼 안목이 늘었다. 똘똘한 한 채의 나와 미래의 더 똘똘해질 아이들을 잘 키워갈 후배,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