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경영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때였다. 퇴근 후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 영상 전공 석사 과정에 이어 박사 과정으로 예술경영을 전공하던 때였다. 수업을 마치고 교수님과 간단한 저녁을 함께하던 중 교수님이 한마디 툭 던지셨다. 금정구 선동이 부산이면서 부산 같지 않은 감성으로 평 50만원이면 살 수 있는 땅이 아직 많아. 당시 회사 홍보팀장으로 사내 복지 차원에서 화승이랑이라는 직원들의 주말농장을 진행하고 있던 때였다. 금정구 두구동의 한 임대 농장의 이랑 40개를 임대해 직원 가족에서 1년의 수확의 기쁨을 안겨주는 프로젝트였다. 수확물의 일부는 사내 식당 판매를 통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는 사내 복지와 사회공헌이 선순환 구조였다. 금정구 두구동, 선동의 토지를 유심히 보고 있던 터라 교수님의 한마디에 솔깃했다. 하필 다음 날이 토요일이었고 대학원 동기와 함께 당장 선동 인근의 두구동 부동산을 향했다.
갑자기, 360평, 부산 금정구, 평지 임야, 토지주
에이, 평당 50만 원요? 요즘 그런 땅이 어디 있어요. 몇 년 전이면 모를까. 두구동, 선동에는 매물로 나와 있는 땅 자체가 몇 개 없고 큰 규모의 땅밖에 없었다. 혹시 다음에 매물이 나오면 연락 달라는 말만 남기고 부동산을 나섰다. 그리고 2주 후 연락이 왔다. 토지에 관심이 많았던 시기라 형네 가족과 산소에 들렀다 양산 명곡동의 토지를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다 함께 선동의 그 땅에 가게 되었고 도무지 부동산엔 관심이 없던 형이 정말 갑자기! 이 땅을 사고 싶다고 했고, 바로 부동산에 연락해 계약을 진행했다. 네모반듯한 평 90만 원의 220평 평지 임야는 형에게 돌아갔다. 살짝 멍. 한 상태의 2주가 지났고 다시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형이 계약한 땅 바로 옆에 네모반듯하진 않지만 360평의 평지 임야가 있으니 생각 있으면 와서 보라고. 주말 당장 달려가 확인했고 계약을 진행했다. 그렇게 갑자기, 360평, 평당 70만 원, 부산 금정구의 평지 임야의 토지주가 되었다.
조경 숲을 감나무 숲으로
조경회사에서 조경목을 심어 판매하는 베이스캠프였던 곳이었다. 그 사장님은 양산으로 터를 옮겼고, 심어져 있던 모든 나무를 그곳으로 옮겼다. 드디어 눈앞에 확 트인 360평의 땅이 한눈에 들어왔다. 포클레인을 불렀다. 땅을 고르고 농사를 지을 이랑을 정비했다. 그리고 무모하게 감나무 묘목 100그루를 주문했다. 감나무 농사를 지어봤어야지. 그중에 지금은 고작 10그루도 채 남아있지 않지만 나무 심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직장인으로서 평일엔 불가능한 농사에 장인어른 찬스를 썼다. 워낙 부지런하고 꼼꼼한 스타일이시라 농막인 컨테이너 내부 보수부터 도라지, 들깨, 당귀, 오이, 무, 배추, 상추 등 풍성귀 가득한 농작물 수확을 이어가고 계신다. 주말마다 우리 가족도 함께 도시농부(까지는 조금 민망하지만)의 자세로 물을 주거나 수확에 작은 보탬을 더한다. 그렇게 3년의 농사를 짓던 중 지목을 임야에서 농지로 바꿀 수 있다는 팁을 우연히 접하게 된다.
지목변경이 현실로, 불법 전용 임야의 한시적 농지 양성화
임야를 임야로 쓰지 않고 농지로 사용한(불법 전용) 지 3년이 넘은 토지의 경우 지목변경을 신청하면 농지로 변경(양성화) 해 주는 시기가 10년마다 도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게 딱 신청 마감이 한 달이 남았고, 바삐 서류를 준비했다. 모든 토지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1980년대 항공사진 판독을 통해 그 시기에도 농사를 짓고 있었다는 증빙이 있어야 가능했다. 다행히 구청에 문의해 자료를 확보했고 서둘러 접수에 들어갔다. 생각보다 간단한 절차는 아니었다. 요건에 맞는 서류를 구비하고 접수하는 과정 자체가 까다롭고 어려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결과 통보가 왔다. “지목 변경 완료되었습니다.”드디어 임야에서 전으로 지목은 변경되었고 내게 부산에 360평의 농지가 생겼다.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농사를 짓고, 수확물로 풍성한 식탁을 기대할 수 있는 ESG 라이프가 눈앞에 왔다.
단기 시세 차익보다 미래 가치로 접근하는 토지
나의 첫 토지와의 만남은 당장 몇 년 안에 시세 차익을 얻겠다는 욕심 따위는 없었다. 제주 집과 첫 아파트의 시세 차익으로 첫 투자로 선택한 토지는 10년, 20년 먼 미래를 생각한 장기투자의 관점이었다. 현재 이 토지는 개발제한구역에 심지어 상수원 보호구역이다. 당장 집을 지을 수도 없고, 농사를 짓고 있지만 아주 먼 미래 언젠가 제한이 풀린다면 시세 차익보다 노후의 작은 집을 지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은 바람 가득이다. 사고, 팔고, 사고, 팔 고의 투자적 관점으로만 부동산을 마주하기보다 노후의 관점, 실리적 보험의 관점도 필요하리라 본다. 당시보다 가치는 좀 더 올랐지만 지금 얼마라는 것보다 언젠가, 그 언젠가라는 마음으로 일요일인 오늘도 가족과 함께 그곳을 향한다. 봄엔 온 가족이 씨앗을 뿌리고, 여름엔 아이가 뛰어놀며 메뚜기를 잡고, 농작물을 수확해 밥상 가득 자연 한상을 누리는 지금, 삶과 업무가 균형 있는 워라밸처럼 삶과 부동산이 자연스러운 워랜밸의 삶을 만들 필요가 있다.
갑자기, 280평, 양산 원동, 대지, 토지주, 아차!
부산 선동의 토지 이후 아주 갑자기, 280평의 대지가 내 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노모의 소유인 양산 원동의 280평 대지를 매수하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솔깃했고 바로 레이더를 작동했다. 토지 등기부를 떼어보니 무려 14명이 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해놓은 토지였다.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이런 토지를 왜? 하는 마음으로 잊고 있다가 다시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아는 변호사에게 연락을 했다. 가처분 해지 소송을 의뢰했고 석 달에 걸쳐 모두 정리했다. 그리고 드디어 내 품으로 들어왔다. 이 토지는 당시 같은 부서 직원과 공동 소유로 갖게 되었다. 아차! 간과한 게 하나 있었다. 이 토지는 주택 뒤에 위치하고 있는데 지적도 상 구거(인공적인 수로 또는 그 부지 : 인공적인 수로 또는 그 부지. 하천보다 규모가 작은 4∼5m 폭의 개울을 뜻한다.)와 물려 있어 현황 도로를 개설한다면 당연히 건축이 가능할 것으로 추측하고 사게 되었는데 시청 확인 결과 건축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게 되었다. 또 언젠가라는 마음으로 두고 있는데 최근 언론에 이런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양산 난코스 물금~원동 도로, 직선 개량해 안전성 높인다.’몇 년 전부터 단독주택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한 이곳에 이런 호재로 그래, 언젠가는...
여전히 식지 않는 제주 땅에 대한 열망
10년 전에 인연이 되었던 제주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페이스북에 가입된 제주 부동산 관련 그룹에서 정보를 서치하고 포털 사이트의 부동산 매물 현황을, 블로그에 소개된 부동산 매물을 습관처럼 들여다본다. 제주 현지의 부동산과도 꾸준한 연락을 하며 매물을 소개받으며, 경매 물건에도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물론 업무 시간이 아닌 업무 외적인 시간에 말이다. 여전히 나는 서귀포 국제 영어교육도시 대정읍을 비롯한 인근의 토지, 100평을 갖고 싶은 게 꿈이다. 바다가 보였으면 좋겠고, 계획관리지역이었으면 좋겠다. 대지는 넘사벽이니 농지가 아닌 임야였으면 좋겠다. 이런 명확한 목표를 가진 부동산의 열망이 결국은 실현의 실마리가 된다. 부동산 하락기를 예상하는 시점이지만 오늘 어떤가. 제주도에 내 땅 100평이 생긴다는 행복한 상상으로 오후 영영가 있는 서치를 해보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