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편지
멀리 있지만 항상 곁을 지키는 그대에게
붉은색 백일홍의 꽃말은 변하지 않는 사랑이라고 해요.
화분에 심어둔 붉은 백일홍에 노란 나비가 날아와 앉았어요.
나비는 사람이 가까이 가면 좀체로 앉질 않고 도망을 치기 일쑤에요.
하여 가만히 서서 꽃에 나비가 앉을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보았어요.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 오너라~"
꼬맹이 시절, 즐겨 부르던 동요까지 불쑥 읊조려 보았어요.
물론 노란 나비가 금세 줄행랑을 쳐도 할 수 없다하였고요.
한데 이게 뭔 일인지 그 나비가 그대로 백일홍 꽃 수술위에 살포시 앉았어요.
사진을 몇 장이나 찍어도 아무렇지 않은 듯 개의치 않는 모습으로요.
실보다 가느다란 다리로 가뿐히 서서는 황금빛 수술속에 든 달콤한 꿀을 연신 맛보았고요.
이렇게 가까이에서 나비가 꽃을 어찌 사랑하는 지 지켜볼 수 있는 경험도 난생처음이었어요.
저를 어쩔 생각도 없고 오로지 사진만 찍을 요량인 것을 그 나비는 혹시 알고 있었을지.
말은 통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해치지 않을 것을 알아채주었구나 싶었어요.
(혼자만의 착각일지 모르겠지만요)
가볍고 가벼운 날개짓으로 꽃을 찾아다니는 나비.
제 몸통보다 수십배 큰 날개로 지녀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어요.
두 날개에 그물처럼 그어진 무늬까지 선명하고, 솜털까지도 보일 정도로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경이로운 순간이었어요.
박제된 채 부서질 듯 노랗게 말라붙은 모습은 자연 관찰책이나 곤충박물관에서 흔히 보았더랬죠.
네모난 검색창, 몇 글자만 적어도 관련글은 얼마든지 쉽게 만날 수도 있고요.
누워있는 배경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실제로 만나는 기쁨과는 비할 바가 아니지요.
살아서 파닥거리면서 제 모양새를 꺼림낌없이 보여주다니 아침에 만난 행운이었어요.
그 나비를 다시 만나도 서로 알아보지 못할 것이고, 다시 만날수도 없을 것 같아요.
그러니 꽃과 나비가 어우러지는 빛나는 그 순간은 얼마나 애틋한 일인가 싶어요.
아름다운 세상, 가슴을 울리는 구경거리가 이토록 많았구나.
어디 축제장을 몇 시간 자동차로 달려가야 나서야 만날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마당 귀퉁이 꽃 주변을 느긋하게 들여다보면 어디선가 나비가 찾아오고, 그때 함께 즐기면 되는 것이었어요.
꽃과 나비처럼 책과 글쓰기도 떼어놓을 수 없는 사이에요.
날마다 좋은 책을 곁에 두고 글과 시를 배우며 짓고 있어요.
책을 읽지 않고 글만 무턱대로 쓸 수도 없고 반대로 오로지 책만 읽어댈 수도 없는 노릇이에요.
매일 보아도 아름다운 꽃처럼 좋은 책은 언제나 설레임으로 다가와요.
(그림책, 동화책까지도 경계를 두지 않고 읽고 있어요 )
어느 장르의 책이라도 저마다의 미덕은 있게 마련이니까요.
기왕이면 편독하거나 탐독하지 않고, 너른 시선으로 다양한 분야의 책도 살펴보면 좋을 듯 하고요.
장미만 어여쁜 꽃이 아니듯이 세상의 모든 책들은 나름의 향기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리라.
일년에 책을 단 한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많지요.
가까운 가족중에서도 물론 찾을 수 있고요.
환갑을 앞둔 큰오빠의 어느 생일날, 김형석 교수의 책을 선물하는 것을 보더니 팔순엄마가 대뜸 뜯어 말리는 거예요.
"니 큰오빤 책 안 보는디!"
'평생 얼마나 책을 멀리 하였으면 그럴까?'
(실제로 큰오빠는 책과 먼 1인, 선물로 준 책은 고맙게도 읽어주었어요)
짧고 자극적인 영상, 특히 유튜브 쇼츠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면서 시간도둑을 맞기 쉽고요.
어른이나 아이를 가릴 것 없이 말이에요.
보면 볼수록 손 안에 든 달콤하고도 무서운 늪이 아닌가 해요.
분야를 막론하고 앞으로도 읽어야 할 좋은 책은 헤아릴 필요없이 수두룩해요.
그럼에도 서두르지 않고 차근 차근 읽으며 배워나가볼 참이에요.
글쓰기를 익혀가는 고요한 시간속으로 내내 기쁜 웃음지으며 걸어가려 해요.
진심에 진심으로.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순간의 꽃』, 고은.
다음 주 토요일, 제 편지를 오늘처럼 기다려 주실 테지요.
나와 그대의 5 퍼센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