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
밤새 비오고 그친 다음 날이었어요.
베란다 창틀앞에 청개구리 한마리가 납짝 엎드려 있었어요.
가까이 아주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어요.
개구리의 두 눈동자가 어찌 생겼는지.
까맣게 옆으로 찢어져 열린 게 동공, 발바닥 끝이 스테인레스 창틀위에서 스펀지처럼 제 몸을 착 붙들어매주고 있었어요.
문득 손끝으로 더듬어 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그 전에 훌쩍 달아나버릴 것을 알았지요.
하여 아쉬운 대로 사진으로만 만족해야했어요.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마당 덤불 어디선가 참새떼들이 연신 수다를 떨고 있어요.
아니 어쩌면 한낮 내내 그러는 지도 모르겠어요.
하도 듣다보니 습관이 되어 별스럽게 듣지 않을 뿐이고요.
참새는 쉬지않고 떠드는 족속.
지붕위에 참새집을 짓고 살아가니 한 지붕 식구가 된 탓이에요.
유일하게 참새가 조용한 시간은 비오는 날인 것 같아요.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면 그제서야 바쁜 날개짓을 멈추고 어디선가 고요히 쉬는가봐요.
그렇지 않고서는 내내 텃밭 귀퉁이를 날아다니면서 제멋대로 떠들썩하게 지내거든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수없이 내뱉으면서요.
간혹 그 허무한 지저귐이 궁금한 적도 있지만 다 알아들어도 피곤하지 않을 까 싶어요.
말 많은 사람 옆에만 있어도 어쩐지 기운이 쏘옥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 때처럼요.
5 퍼센트, 자작시 ☆
참새와 개구리.
두 친구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어요.
삶을 노래하는 시, 어느 것이나 시의 소재가 될 수 있지요.
개구리는 밤시간에 주로 떼창으로 만나고 있어요.
얼마나 많은 개구리들이 집주변에 모여 살고 있는 지조차 가늠할 수 없어요.
그저 돌림노래처럼 밤마다 울려대는 통에 그런가보다 하면서 지내고 있거든요.
밤에는 시끌시끌할 정도로 요란한데 정작 개구리는 쉬이 눈에 띄지 않아요.
논둑 길을 서성이다가 풀숲에서 튀어나와 갑작스레 펄쩍 뛰어가는 뒷모습을 마주할 수는 있지만요.
그럴 때에도 순식간에 나타나는 것과 동시에 줄행랑을 치기 바쁜 개구리에요.
하여 가깝고도 먼 개구리지요.
아무리 많아도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니 즐겨 보고 있고요.
참새와 개구리는 그런 면에서 부담스럽지 않은 존재에요.
참새가 빨래줄에 널어놓은 옷위에 하얀 똥을 갈겨놓는 치명적인 미운 짓을 빼놓는 다면요.
그것마저도 드문 일이라 몇 번 투덜거리다 말고요.
너른 마당에 하얀 똥이 즐비하지만 비와 바람으로 저절로 스며드니 탓하지 않고 바라보게 되어요.
'똥을 누지 않고 어찌 살까?'
새들의 화장실은 따로 없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새들에겐 어디나 화장실이 될 수도 있겠구나.
새들의 똥은 하얀 색이라 거부감도 덜 들기도 하고요.
거무튀튀하거나 붉은 색이었으면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싶어요.
그런 상상을 해보니 하얀 새똥이 그나마 가장 시각적으로도 돋보이네요.
참새와 개구리 그 둘사이에 서서 주로 들으며 살아오고 있어요.
입이 있어도 말을 할 필요가 없어서 듣고만 있는 것이지요.
참새와 개구리입장에선 '저 사람 왜 말이 없나?' 할 지도 모르겠어요.
자기들처럼 요란하게 입방아를 찧지 않으니까요.
서로 거기 그대로 자기의 터전을 지켜면서 함께 살아가면 그것으로 만족이지요.
땅속이나 땅위에나 사람들만이 살아가는 곳은 아니니까요.
구태여 참견하지 않고 서로를 평화롭게 보아주는 것만으로 충분하고요.
진심에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