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
"아이쿠! 더워서 걸어서 못 가것구만."
오후 햇살이 어찌나 맹렬한지 집밖을 나서면서 겁이 덜컥 날 때가 있어요.
열두시가 되면은 먹는 둥 마는 둥 점심상을 물리고 엄마는 동네회관 마실을 나설 준비를 하시지요.
어디가 편치 않은 날에도 잠깐 바람을 쐬어야 밝으레 생기가 도는 엄마인 것을 알고 있고요.
"그럼, 오토바이로 모셔다 드릴까요?"
평소같으면 손을 내저으며 마땅찮게 여기실 말인 줄 알았어요.
한데 워낙에 무더위에 질린 모양인지 담박 고개를 끄덕이면서 반기는 기색이셨어요.
"그랴! 그러믄 좋겄어"
오토바이 뒷 좌석에 엄마를 태우고 논과 논 사이로 빼꼼히 난 농로길을 느릿하게 달려갔어요.
걷는 것보단 빠르지만 뛰는 것 만큼의 속도로요.
버스만 타도 멀미를 하는 엄마, 빨리 달리면 엄마의 시원찮은 속이 훌떡 뒤집어질 수도 있어서요.
하여 달리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무겁게 달려가는 거예요.
최고 속도따위는 아예 잊은 채로 말이에요.
누가보면 달리는 것인가 싶어도 땡볕아래 걷는 것보단 시원한 기분이 들거든요.
비록 뜨겁게 달궈진 바람이라 도리어 숨이 턱 막히는 순간도 있지만요.
엄마를 무사히 동네회관 앞에 내려드리고 그대로 돌아 나오는 길에 풀더미를 만났어요.
(가던 길에는 온통 뒤에 앉은 엄마에게 신경이 쓰여 미처 눈에 담을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위의 사진처럼 어느결에 자그만한 잡풀이 길가에 나무처럼 솟아올랐는지 새로이 보였어요.
달리던 오토바이를 잠깐 세워두고 뒤돌아 선 채로 등뒤로 뻗어있는 농로길의 모양새를 사진으로 남겨 보았어요.
제멋대로 솟구쳐 오르는 풀들의 모습은 더위를 이겨내는 거대한 생명력을 자랑하는구나.
이름없는 꽃 한송이에도 마음의 눈을 쏠리고 이처럼 아는 길에서 만나는 생명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게 되어요.
머지않은 날에 기어이 노랗게 말라죽어갈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오늘을 힘껏 살아가는 모습이 경이롭게 다가왔어요.
사람들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보잘것 없이 하찮은 풀이고 아무것도 아닌 생명이라 할지라도 말이에요.
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나도 좋지만 풀같이 살아가면 또 어떠랴.
살아가는 것은 정답이 없는 일, 꽃은 꽃대로 풀은 풀대로 모두 제 갈 길을 충실히 살아가면 되는 일이겠지.
풀은 온갖 비바람앞에서 굳게세 살아가니 누구보다 강한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농부의 사랑을 받는 밭작물도, 아름다운 꽃방울을 피워내어 찬사를 받은 꽃 한송이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존재, 풀입니다.
그럼에도 작은 틈만 보이면 어김없이 그 자리엔 빼곡하게 풀이 자라납니다.
바람을 타고 날아온 풀씨가 뿌리를 깊이 깊이 내리는 것입니다.
비록 반기는 사람은 커녕 농부에게 뽑혀나갈 골칫거리로 업신여김을 한몸에 받습니다.
돌아서면 끈질기게 땅위에서 솟아나는 풀의 생명력은 단연코 으뜸입니다.
하여 풀 한 포기 없는 밭을 보면 어쩐지 아득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얼마나 풀을 뽑아냈을지 보이지 않는 혼자만의 그림을 그려보면서요.
풀과 싸우는 어리석은 농부가 되지 말자는 다짐을 하고요.
왜냐하면 풀과 싸움은 백전백패, 시간을 이겨보겠다고 덤비는 어리석은 짓일테니까요.
아니면 비온후 반짝 떠오른 앞산 너머의 아름다운 무지개를 두 손에 쥘 수 있다고 어깃장을 부려봐야 헛일입니다.
지난해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을 읽고 깊은 울림을 받아 흉내내듯 첫 번째 『자화상』을 지은 적이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miky1115_/223619329603
5퍼센트, 자작시 『자화상』☆
시를 그리는 첫 마음을 되새기면서 같으나 다른 두 번째 『자화상』을 지어보았어요.
걸어온 시간을 모른 척 변치 않는 순수성을 지켜가자는 약속을 스스로에게 하면서요.
진심에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