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듯이 가고싶다는 마지막 소원을

금일기

by 심풀


엊그제 저녁, 설거지를 끝내고 돌아서는데 핸드폰이 부르르 울렸어요.

아버지가 건강하시던 시절 쓰던 핸드폰에 이름이 찍혀 있었어요.

아버지와 동갑내기 친구, 홀로 외롭게 사시면서도 항상 밝은 모습이 인상적인 분이셨어요.

귀가 어두운 아버지를 대신하여 말이 잘 통하는 엄마가 주로 통화를 하시곤 하십니다.

"안녕하셨슈! 오래 간만여유!"


정작 친구인 아버지와는 소통이 되지 않아서 어느 땐 두 분이 속닥속닥 통화를 마치곤 하지요. 그또한 자연스런 일로 여기고 있습니다.

두 분이 정답게 대화를 나누는 것을 뒤로 하고 돌아서는데, 갑작스레 엄마가 가는 발걸음을 붙잡는 것이었어요.


"막내야! 니가 좀 받아 적어줘라. 나는 못씅께."

무엇을 받아적어야 하는 지 영문도 모르는 채 전화를 받아들고 불러주는 대로 연신 펜을 놀렸습니다.

"그려. 성철스님 말씀이니께 잘 적어놓고 아부지랑 같이 읽으시라고 햐."

통화를 하면서 엉겁결에 받아적어놓은 글씨는 비오는 날 난데없이 올라온 지렁이처럼 널부러져 꼴보기 싫었습니다.

"그것좀 니가 보기좋게 큼지막하게 써주면 좋것는디, 그 말씀을 밤낮으로 공들이믄 집에서 자는드끼 간댜."

웬일인가 싶었더니 엄마의 마지막 소원, 요양병원 신세를 지지 않은 것을 빌어볼 참 이었구나.




성철스님, 말씀☆


아무리 큰 스님, 성철스님의 말씀이라 하여도 담박 믿을 수는 없었습니다.

세상에 그런 신통력을 지닌 말이 있을리가 없으니까요.

그런 논리라면 수많은 불자들은 어찌하여 요양병원 치레를 하면서 삶을 마무리하겠는가.

그렇다고 하여도 믿는 마음이 가득한 엄마와 입씨름을 할 필요는 더욱 없는 일이었습니다.

말씀에 효력이 있거나 말거나 엄마가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만 있다면 그또한 커다란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비록 엄마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과 상관없이요.

큰 글씨로 다시 받아적은 글귀를 옮겨 적어보았습니다.

A4 한 장에 꽉 차게 커다랗게 인쇄를 해놓으니 읽기가 수월하실 것 같아서요.

더하여 텔레비젼만 보면서 소일하는 아버지까지도 함께 읽어보시면 나쁠게 하나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두 분이서 머리를 한 목소리로 글귀에 마음을 담아 두시면 더욱 아름다운 일이 될 법도 합니다.

KakaoTalk_20250807_065928856.jpg?type=w773 여름 하늘☆


아버지는 요즘 엄마의 옷도 종종 뺏어 입을 정도로 뜻밖의 행동을 보이십니다.

엄마의 티셔츠나 고무줄 바지를 난데없이 갈아입고 계신 아버지.

그 모습이 하도 황당하여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하였거든요.

물론 차분히 아버지 옷으로 갈아입혀드리니 별다른 불만이 없으시기도 하였고요.


이번에도 엄마가 성철 스님의 말씀을 읊조리는 모습이 아버지에게도 또다른 의미로 좋은 자극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미심쩍었던 엄마의 희망사항에 새로운 뜻이 더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엄마는 새벽에는 밭일, 낮에는 동네회관 마실, 저녁에나 짬을 내서 읽어보실 모양이십니다.

하지만 큰 스님의 글귀를 굳게 믿고 계시니 알고도 모른 척 할 생각입니다.


"글자가 잘 보이는 지 한 번 읽어 보셔요."

인쇄한 종이를 건네드리니 엄마는 더듬 더듬 길을 찾아가듯이 한 줄 한 줄 읽어내려갔어요.

중간에 어쩌다 엉뚱하게 읽어도 모르는 척 웃음지으며 곁으로 보아넘겼습니다.

"글자 그대로 읽기 힘들면, 그냥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그렇게 끝을 내도 좋을 것 같아요.

부처님이 엄마가 반까막눈인 것을 환히 알테니 마음 편히 읽으셔요."


중간 중간 큰 스님 말씀을 엄마식대로 슬그머니 고쳐 부르면 또 어떠랴.

두어 글자 본 글귀와 다르더라도 본 뜻은 변치 않을 것 같아서요.

하여 제식대로 한 마디를 거들어 보았어요.

기왕이면 엄마의 소원이 가뿐하게 이뤄지길 바라면서요.

진심에 진심으로.





어릴 때는 나보다 중요한 사람이 없고,


나이들면 나보다 대단한 사람이 없으며,


늙고 나면 나보다 더 못한 사람이 없다.




-백범 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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