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는』 자작시
(feat 아버지에게 가을을)

일요시

by 심풀

마당을 나서기만 해도 국화꽃이 흐드러져 있습니다.

그 몇 걸음이 무겁고 무거워 나서지 못하는 아버지.

내년이면 아흔.

뇌졸중파킨슨치매 약을 잡수십니다.

하루에 열 알쯤 되는 약으로 살고 계십니다.

아침에 일곱 알, 저녁에 세 알

더하여 점심때는 종합 영양제를 따로 드리고 있습니다.

여든에 발병하셨으니 벌써 십여년, 그 사이 아버지 곁에서 아버지를 위로해주고 걱정해주던 지인들이 뜬끔없이 서둘어 먼저 산으로 떠났습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허전함, 아쉬운 생각마저 잊어가는 지 아무런 말씀이 없으십니다그려.

삶이 허무한 것을 알아채는 인지능력을 발휘하는 우리의 뇌.

뇌가 제 기능을 서서히 잃어가는 아버지, 말도 생각도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청각장애까지 갖고 계시니 일상적인 소통이 신통치 않은 것은 말해 무엇하랴.


SE-9f15ad96-190f-4a89-9b81-1ff5f5d5252c.jpg?type=w773 노란 국화꽃, 텔레비전 앞에 심고☆



가을이 깊어가는 것을 무엇을 보고 느끼는가.

짙고 짙은 푸름을 자랑하던 길가의 가로수가 노랗게 물들어가는 중입니다.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하늘 하늘 코스모스, 더하여 오래 오래 꽃 피우는 국화를 바라보면서 깊어가는 가을을 만납니다.

은은한 꽃 향기가 바람속에 날려오는 기쁨을 누리면서요.

오로지 걸어서 몇 걸음만 나서면 만나는 손쉬운 즐거움이것만 그 과정이 너무 너무 버거운 사람,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과연 가을을 무엇으로 느낄 수 있으실까요.

눈뜨면 밥이고 눈감으면 밤입니다.

굳게 닫힌 아버지의 세상에 가을이 어떻게 찾아들 수 있을 까 싶었습니다.

밤새 촉촉히 빗방울이 세상을 부드럽게 감싸준 아침 산책길에서, 노오란 국화꽃을 똑똑 꺾었습니다.

아버지에게 가을을 보여드리고 싶어서요.

가을을 노래하는 국화 향기로 잠든 아버지지의 뇌에 반짝 가을이 들어서길 바라면서요.






국화는








찬바람에 길가 나뭇잎들이


울그락불그락 화가 났는지 나무에서 떠나간다


개구리에서 벌레들까지


땅속으로 추운 날을 피해 잠잘 준비에 바쁘다



그럼에도 국화는 제철,


한껏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낸다


싸늘한 세상 속에서 피는 꽃답게


안타까이 사라지는 시간을 기억해낸다




외로워도 외로운 줄 모르게


찬서리에 노르죽죽 죽어가는 그날까지


아름다이 살다가자고


국화는 끝까지 지켜주는 것이다.




오퍼센트, 자작시☆




아버지의 유일한 친구, 텔레비젼 앞에 노오란 국화꽃을 심어두었습니다.

떨어진 꽃잎도 버리기가 아까워 나란히 뉘여놓았습니다.

피었거나 떨어졌거나 아름다운 꽃.

텔레비젼을 하루 종일 보시니 중간 중간 아버지의 눈길이 가는 길에 꽃에도 머물지 않을런지요.

버스 정류장처럼 가다 서다 하면서 텔레비젼과 꽃 사이를 더듬더듬 보시면 좋겠습니다.

아버지가 한 순간이라도 꽃의 아름다움에 눈을 활짝 열고 그윽히 바라보실 수만 있기를….

아무리 아름다운 꽃과 세상이라해도 제대로 느낄 수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마음의 문을 닫아걸면 깜깜한 어둠뿐인 것을요.

가을을 통째로 아버지에게 가져다 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가을을 가득 품은 국화꽃 한송이를 보여드릴 수 있으니 그저 감사한 일입니다.


KakaoTalk_20251101_095501211.jpg?type=w773 노란 국화 꽃말, 우정과 용기☆



밤새 홈빡 빗물에 흥건히 적셔진 노란 얼굴의 가을꽃, 국화입니다.

비바람을 온 몸으로 맞고도 고운 얼굴을 찌푸릴 줄 모르네요.

국화는 싸늘한 가을이 들어서면 제철을 알고 앞다투어 피어나서 어여쁜 자태로 곁을 내내 지켜줍니다.

겨울, 찬 서리를 맞아 시퍼렇게 죽어갈 지언정 국화는 내내 한결같습니다.

꽃잎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서둘러 지는 법이 없습니다.

해마다 가을은 짧게 스쳐지나가지만 국화는 고요하게 머물러줍니다.

향기마저도 튀지 않고, 은은하게요.


진심에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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