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을 찾지 못하는 이유
글쓰기를 꿈꾸는 그대를 만납니다. 정작 글 쓰는 비법을 모릅니다. 다만 블로그 글을 쓰면서 공모전까지 걸어가 본 작은 경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평범하면서도 흔하지 않은 나만의 길을 지나온 이야기입니다.
네이버 블로그에 지난해 여름 끝자락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대략 일 년, 거기에 공모전 글쓰기는 6개월 남짓입니다. 블로그 세상, 들어 알았지만 정작 시작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장벽 없이 글쓰기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점이 그동안 잠든 글을 불러왔습니다. 숨은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첫 글을 서투르게 그려 넣었습니다.
기껏 몇 줄 되지 않은 어리숙한 글쓰기만으로도 평생 하지 않던 글쓰기인 지라 신선한 자극이 되었습니다. 읽어주는 이웃 한 명 없어도 제멋에 겨워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에 한 번 글쓰기, 처음에는 책 쓰기만큼 멀고 막막했습니다. 어떤 글감으로 한 편의 글을 써야 할지 날마다 고민 아닌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 글 쓰고 6개월 즈음부터 글감 걱정을 내려놓았습니다. 작은 깨달음이 찾아든 덕분입니다.
글감을 찾지 못하는 이유, 대략 세 가지 정도로 추려봅니다. 그에 맞춰 해답을 담아봅니다.
첫 번째, 글감이 도통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답답할 정도로 머릿속이 백지처럼 공허합니다. 무엇을 쓸지 막막한 심정을 겪어 알고 있습니다. 사실 글감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컴퓨터이나 들고 있는 핸드폰에 대해서도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풀어쓰면 됩니다.
어떤 것을 보거나 생각한 게 없는 사람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자신이 보고 , 생각한 일을 알아채지 못할 뿐입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 미래 등 무엇이든지 글감이 될 수 있습니다.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도 훌륭한 글감입니다. 마치 편안한 친구랑 나란히 앉으면 막힘없이 술술 이야기가 끊임없이 풀려나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신조차도 모르고 있던 숨어있던 이야기들이 때를 만난 듯이 마구 쏟아져 흐르는 경이로운 순간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글감이 있어도 마음속의 글을 풀어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글쓰기는 자꾸 해봐야 쉬워지는 과정을 스스로 체험해 나갑니다. 글쓰기도 일종의 기술이고 능력입니다. 평생 쓰지 않던 글이 하루아침에 샘솟을 수는 없습니다. 그게 어쩌면 더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어떤 신통한 글쓰기 책을 읽더라도 전에 없던 필력을 금방 갖기는 어렵습니다. 지루한 글쓰기 과정을 몸으로 겪어내야 조금씩 글쓰기에 두려움이 줄어듭니다. 하루에 한 토막 글쓰기는 갈수록 쉬워질 수 있지만 그 또한 한꺼번에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천천히 인내심을 가지고 글 쓰는 시간과 비례해서 느끼지 못하는 사이 글쓰기의 어려움이 줄어듭니다.
세 번째, 글을 쓰긴 하여도 마무리를 지을 수 없어 당황스러운 시간을 마주합니다. 글 마무리는 자연스레 마음의 소리를 담아 쓰면서 자연스레 찾아듭니다. 서론 본론 결론, 즉 삼단 논법 식으로 글을 쓸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실제로 그런 글이 필요한 특정 분야도 있겠지만 우리가 주로 쓰는 글은 자연스러운 글, 수필이 대부분입니다.
쓰다 보면 하고픈 말도 줄지어 떠오르고 글 마무리도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습니다. 마치 오늘 아침 해를 쳐다보면서 내일 해가 뜨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듯이.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채로 일단 글쓰기를 시작하면 됩니다. 글을 쓰면서 걷다 보면 길 끝에 분명히 나도 모르는 마음의 소리가 반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믿을 수 없을지라도 확실히.
책상 앞에 앉아서 진지한 자세로 시험 공부하듯 글쓰기를 하면 글은 저만치 줄행랑을 칩니다. 그와 달리 글감이 가장 쉽게 떠오르는 장소로는 침대와 화장실을 들 수 있습니다. 가장 여유롭게 몸과 마음이 풀어지는 곳이기에 그런 듯합니다. 머리를 아무리 쥐어짜도 빈 종이처럼 허탈하다가도 느닷없이 반가운 글감이 번쩍 나타나는 경우를 겪습니다. 자려고 누웠다가 번개처럼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오는 낯선 이야기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럴 땐 메모를 남겨서 글감을 잡아 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메모는 종이든 핸드폰이든 상관없이 글감을 쟁여 둘 만한 곳, 어디든 좋습니다. 각자의 스타일대로 손쉬운 곳이면 나무랄 데 없습니다.
글감은 따로 있지 않습니다. 내가 생각한 만큼 끄집어낼 수 있으니 글감은 언제까지나 풍요로울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의 눈과 머리는 보는 것을 믿는 게 아니라 믿고 싶은 대로 봅니다. 없다면 없고, 있다면 있는 아주 주관적인 문제, 글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