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라는 이름의 소설
올해 초 봄 어느 날인가 경주 뚜벅이 여행길의 이야기다. 서너 시간을 훌쩍 넘겨 걷다 보니 자연스레 허기가 찾아왔다. 마침 내가 지나던 곳은 봄 내음 물씬한 고풍스러운 경주의 관광지들과는 사뭇 다른 어느 골목이었다. 아마도 한때는 번화했을 경주의 구 중심가 어디쯤 되는 듯한데, 지금은 예전의 화려함을 거의 사라져 가고 오래된 기억들만 가득할 것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왠지 오랜 전통과 주인장의 포스를 느끼게 하는 손칼국수집이 눈에 띄자,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가게로 성큼 들어섰다. 가게 문을 들어섰을 때, 예상과는 달리 다소 뻘쭘한 광경이 펼쳐졌다. 연세가 꽤나 들어 보이시는 할머니 한 분이 식사를 하고 계셨고, 바로 옆 한켠에서는 할아버지 한 분이 초점 없는 눈으로 TV와 할머니를 번갈아 바라보고 계셨다. 손님은 아니신듯했고, 아마도 할머니는 칼국수를 빚어내시는 안주인이시고 할아버지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할머니를 도와 홀 서빙을 담당하고 계신 듯했다. 그러고 보니 결국 손님은 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를 발견한 할머니와 할아버지 사이에는 이상한 대화가 오고 가기 시작했다. 들어온 손님에 놀랐는지 할머니는 반쯤 일어서시더니, 나를 힐끗 보시며, 오히려 할아버지한테 조그만 소리로 투덜거리며 역정을 내시는 것이 아닌가?
"아, 글쎄 크게 써놓으라니까. 손님이 다 그냥 들어오시잖아!"
순간 어수선한 상황에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나도 모르게 허기진 배고픔이 입 밖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저, 혼자인데... 지금 식사가 가능할까요?"
그러자 아마도 식당의 안주인이자 주방장이신 듯한 할머니는 "지금이 사실 쉬는 시간(브레이크 타임)인데, 뭐 오셨으니 할 수 없지요. 앉으세요" 하시면서, 오히려 나에게 미안해하시며 식사를 멈추시고 주방으로 들어가려고 하셨다.
순간 아차 싶어 출입문 쪽을 돌아보니, 조그만 하얀색 용지에 직접 손으로 적으신듯한 브레이크 타임 표시가 걸려 있었다. 휴대폰으로 미리 확인했던 가게 정보에는 브레이크 타임에 대한 내용도 없었을뿐더러, 문 옆에 걸려있는 손수 적으신 브레이크 타임 안내 문구는 누군가의 눈에 띄기에는 너무 작아 보였다.
그제야 나는 어느 정도 상황 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아마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고된 음식 장사에 쉬는 시간을 만들고자 브레이크 타임을 신설하신 듯하고, 홀 서빙과 잡무를 담당하시는 듯한 할아버지가 손수 제작한 표지는 너무 작아 할머니의 원성을 산 것이었다.
어쨌거나 내 마음속에는 죄송한 마음이 스르르 밀려들어왔다. 점심도 거르실 정도로 열심히 식당 일을 하시고 이제야 한술 뜨시며 숨을 돌리고 계신데, 눈치 없는 내가 들어선 것이다.
나는 급히 손사래를 치며, "아~ 할머니, 괜찮습니다. 식사하세요. 다른 데로 가보지요 뭐" 하고는, 다시 문을 나서려고 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들어온 손님을 어떻게 보내냐고 하시며 한사코 앉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염치없는 나의 허기진 배는 할머니의 권유를 핑계 삼아 어서 빨리 앉으라고, 연신 나의 뇌에 지령을 내리고 있었다.
마침내 할머니와 나는, 그럼 하시던 식사를 마저 하시고 음식을 준비하시는 걸로 극적인 타협을 이루었고, 나는 바지로 향 가득한 칼국수를 기대하며 자리에 앉게 되었다.
소소한 에피소드를 겪으며 들어온 식당이라 그런지 앉아 있는 동안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며 그분들의 인생을 감히 짐작해 보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스쳐갔다.
실제 그분들의 인생을 제대로 짐작하기는 어렵겠지만, 아마도 평생을 식당에서 일하시며,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해온 할머니와, 이제는 연세가 너무 드셔서 간단한 잡일 정도밖에 도움이 안 되어 늘 할머니에게 미안한, 머리가 새하얀 할아버지...
두 분의 인생이 스쳐가는 이방인인 나에게도 어렴풋이 느껴질 만큼, 오래된 식당 모습 속에서 뭔가 짠한 애처로움이 밀려왔다.
잠시 후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푸짐하고 정겨워 보이는 칼국수 한 그릇을 정갈한 반찬과 함께 할아버지께서 쟁반에 담아 오셨다. 왠지 죄송한 마음에 나도 반쯤 일어나 쟁반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시작된 식사! 역시나 할머니의 연륜이 묻어 있는 손으로 빚은 칼국수는 최고급 요리가 되어 나의 허기진 배와 식욕을 충만히 채워나갔다.
열심히 칼국수를 향해 젓가락질을 해대던 나는 갑자기 궁금증이 생겨 할머니에게 조심스레 질문을 드렸다. "할머니랑 할아버지 연세도 많으신 거 같은데 이제 장사 그만하시고 편히 쉬셔도 되지 않아요?" 나의 오지랖 넓고 눈치 없는 질문에 할머니는 푸념 섞인 대답을 건네셨다.
"관두면 자식들이 싫어해."
이 무슨 예상치 못한 대답인가? 아마도 경주라는 관광도시 특성상 이 식당은 오래된 맛집으로 알려져, 꽤나 잘 운영되는 듯했다. 그러나 할머니와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평생 자식들 뒷바라지를 위해 운영해 온 식당 일을 이제는 접고 싶지만, 이렇게 장사가 잘되는 식당을 포기하기에는 자식들의 욕망은 너무 커져 버린 것이다. 추측건대 부모의 희생을 통해서라도 자신들의 유산을 불려 갈 수 있다면 하는 자식들의 숨겨진 욕망과 그런 상황을 뻔히 알지만 자식을 이기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나는 순간 알지도 못하는 그분들의 자녀들이 원망스러워졌다. 아마도 서울 어딘가에서 떵떵거리고 살며 잘 찾아오지도 않는 불효자일 거라고... 나는 근거도 없는 추측을 내심 확신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때마침 TV 화면에는 우리나라의 갑부들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갑부 한 명이 나와 하나에 일억이 넘는 의자들의 컬렉션을 자랑하며 자신의 인생을 넌지시 치켜세우고 있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그 갑부의 인생을 바라보며 시샘과 동경의 감정을 한꺼번에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TV를 초점 없는 눈으로 응시하던 할아버지도...
"왜 인생은 불공평한 것인가?" 불현듯 내 머리와 가슴을 스쳐 지나가는 질문이었다.
자본주의의 냉험함을 몸으로 부딪치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그것은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봤을 질문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인류 역사를 통하여 끊임없이 관통하는 질문일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사회적 관점의 해결책들이 있겠지만, 그러한 거대 담론과는 별개로 이 글을 통하여 말고 싶은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각자가 지녀야 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이다. 비록 일순간 모든 불공평을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각자의 삶에서 이러한 질문과 고민의 과정을 거쳐, 결국은 개개인의 태도와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불공평한 사회에 대한 스스로의 저항과 공평한 사회로의 작은 실천으로 이어지고, 그것들이 모여진다면... 아마도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희망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