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어떻게 균형을 이루는가?

일상 속의 소설

by hesed by


# 들어가는 글



나무는 신의 위대한 알파벳이다.
신은 그들을 통해 빛나는 초록색으로 자신의 고요한 생각을 세상에 쓴다.

<레오노라 스파이어 (Leonora Speyer)_미국의 여류시인>



숲, 산, 나무... 절로 싱그러움에 빠져드는 자연의 단어들이자, 언제든 만나고 싶은 하늘의 선물이다. 때론 삶의 위로가 되어주기도 하고 때론 피난처가 되어주기도 하며,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그리고 모두 초록이라는 공통의 색감을 떠올리게 하는 기분 좋은 대상들이지만, 사실 숲이나 산을 만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필요하다. 요즘은 건강을 위해서 둘레길이나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지만 숲과 산은 여전히 찾아오는 자들에게만 그 모습을 허락한다.


하지만 '나무'는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둘러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비록 인공적이긴 하지만 길가에 심긴 나무들이나 도심의 공원에 자라고 있는 나무들도 있으니 말이다. 아마도 도심의 편의성을 갈망하는 현대인들조차, 그들의 내면에 숨겨진 자연을 향한 그리움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나는 근래 몇 년간 사무실이 가까워진 탓에 걸어서 출퇴근을 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리고 있는데, 길가에 가로수가 꽤나 많이 심어져 있어 감사하게도 항상 초록의 풍성함을 만끽하며 걸어 다닌다. 걷다 보면 나무가 정겨워 때론 나무를 어루만져 보기도 하고 어떨 땐 잎의 감촉을 느껴보려 손을 뻗거나 훌쩍 뛰어보기도 한다. 물론 마주 다가오는 사람의 눈에 띄기라도 한다면, 그 뻘쭘함은 한참이나 나를 부끄럽게 하기도 한다. 뭐 어쨌든 나무가 나의 출퇴근 길의 훌륭한 동반자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이렇게 주변에 흔하디 흔한 나무는 관찰하면 할수록 매우 신비한 존재이다. 나무는 굉장히 놀라운 생물학적 기능들을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는데, 건축을 전공한 탓인지 그중에 나를 가장 놀라게 만드는 것은 '나무의 균형감'이다. 나무가 이루고 있는 구조적 형태는 사실 매우 놀라운 비밀을 담고 있는데, 그 비밀은 우리의 인생과도 매우 유사하다!



# 나무는 어떻게 균형을 유지하는가?


나무는 좀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가분수이다. 보통 '가분수'라는 말은 몸집에 비하여 머리가 큰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인데, 수학에서는 분자가 분모보다 크거나 같은 분수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상부로 갈수록 가지와 잎사귀가 무성해져 사람으로 치자면 머리가 너무 큰 우스꽝스러운 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형태는 사실 구조적 안정성이 매우 떨어져 보인다. 상식적으로 하부가 넓어야 좀 더 안정적으로 서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무는 이러한 예상을 뛰어넘는 신비한 비밀을 간직한 생명체이다. 강한 비바람이 몰아칠 때도 나무가 잘 쓰러지지 않는 것을 보면 나무의 구조적 안정성은 예상외로 뛰어난데, 그 비밀은 나무가 가진 몇 가지 독특한 특성에 기인한다.


첫째는 '뿌리의 지지력'에 기인한다. 땅속의 뿌리는 나무의 안정성을 담당하는 핵심 구조인데, 주근(곧게 아래로 자라서 형성된 굵은 뿌리)은 깊이 뻗어 수직적 고정을 담당하고, 측근(주근에서 옆으로 갈라져 나오는 가지뿌리)은 수평으로 넓게 퍼져 나가면서 토양을 움켜쥐듯 고정한다. 흥미로운 것은 뿌리의 분포 범위는 보통 나뭇가지가 뻗은 범위보다 두세 배 정도 넓어서, 지상부의 무게중심을 충분히 지탱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뿌리는 또한 토양의 수분과 영양분 조건에 따라 성장 방향을 조절하여 최적의 지지력을 확보한다.


나무의 뿌리의 성장과정은 우리 인생에도 꽤나 의미심장한 교훈을 준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거친 바람과 폭풍우를 만나게 되는데, 때론 가지가 부러지거나 꺾일 수도 있지만 완전히 넘어지지 않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겉으로 화려하게 드러난 가지와 잎보다는, 보이지 않는 '내면으로 뻗어나간 뿌리'가 중요하다. 겉으로 드러난 범위보다 훨씬 넓게 뻗어 나간 '내면의 힘'은 인생의 단단한 뿌리가 되어 우리의 외면을 지탱해 줄 뿐만 아니라, 충분한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공급하여 인격을 성장시킬 수도 있다.


나무의 아름다움은 가지에 있지만, 그 힘은 뿌리에 있다.

<Matshona Dhliwayo_작가, 철학자>



둘째는 '줄기의 유연성'이다. 줄기는 보통 나무의 몸통을 가리키는 말로 공식적인 용어로는 수간(樹幹)이라 부른다. 단단하게만 보이는 나무의 줄기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는데, 줄기는 경직되지 않고 적절한 유연성을 가지고 있어 바람의 힘을 흡수하고 분산시킨다는 것이다. 나무의 섬유질 구조는 인장력과 압축력을 동시에 견디게 만들고, 나이테의 형성은 계절별 성장 패턴에 따라 강도를 최적화한다. 그리고 줄기는 바람이 불 때마다 마치 용수철처럼 구부러졌다가 원래 형태로 돌아오는 탄성을 보여준다.


나무의 기둥이 되는 줄기처럼, 인생에도 자신을 지탱해 주는 나만의 기둥이 있다. 그것은 어떠한 원칙이나 신념 혹은 신앙의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어떠한 형태이건 간에 나무줄기와 같이, 겉으로는 단단해 보이지만 그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유연함과 탄력성을 함께 지녔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거친 세상의 고난 속에서도 유연하되 결코 넘어지지 않는 성숙한 인생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는 '가지의 분산 전략'이다. 보통 나무의 가지와 잎이 달려 있는 부분을 수관(樹冠)이라 부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가지는 무작위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지는 일정한 수학적 규칙과도 같이 나선형 모양으로 배열되는데 이는 매우 전략적인 선택이다. 무게를 고르게 분산시켜 나무의 균형을 잡아 줌과 동시에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자라난다. 또한 가지는 아래쪽이 두껍고 끝으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구조로 하중 분배를 최적화하며 강한 바람이 불 때에는 작은 가지들이 먼저 구부러지거나 부러져 전체 나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나뭇가지의 독특한 성장 방법 또한 우리에게 교훈을 전하는데, 우리 인생에도 분산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외골수적으로 한 곳 만을 지향하는 것도 삶의 방법이겠으나, 좀 더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삶을 여러 각도에서 조망하고, 다양한 경험과 배움을 지향한다면, 설사 하나의 가지가 부러진다 치더라도 완전히 넘어지지 않을 수 있는 균형감과 지지력이 생기는 것이다.


저항하는 참나무보다 구부러지는 대나무가 더 강하다.

<티베트 속담>



넷째는 '잎의 공기역학적 설계'이다. 잎은 광합성 기관이지만 동시에 바람 저항을 고려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많은 나무들의 잎은 바람이 불 때 접히거나 방향을 바꿔 저항을 줄이며, 잎자루의 유연성으로 잎이 손상되지 않도록 보호한다. 또한 잎의 크기와 모양은 각 지역의 기후와 풍속에 적응하여 자라난다.


삶의 거센 바람이 불 때, 정면으로만 꼿꼿이 부딪친다면 그 가지는 부러질 확률이 높다. 그러나 처한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구부릴 줄도 알고 접힐 줄도 안다면 삶은 좀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버텨야 할 때도 있다. 불의가 닥쳐올 때나 인생의 운명적인 대결이 찾아올 때면 강하게 버티는 힘도 있어야겠지만, 상황에 맞는 유연성이 없이 강하기만 하다면 삶의 거센 폭풍에 매번 견디기는 힘들 것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나무는 이러한 독특한 특성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균형을 유지하는데, 무게중심은 뿌리의 지지 범위 내에 유지되며, 바람의 힘은 잎-가지-줄기-뿌리로 이어지는 경로를 통해 땅으로 전달된다. 그리고 나무는 성장하면서 바람의 방향과 강도를 기억하여 그쪽으로 더 강한 목재를 형성하는 적응 성장을 보인다. 이러한 생물학적 설계는 현대 건축학과 공학에도 많은 영감을 주고 있으며, 나무의 균형 원리를 모방한 구조물들도 개발되고 있다.



# 나무는 햇빛을 따르면서도 넘어지지 않는다.


나무가 해를 바라보는 것을 '향광성'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나무의 균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보통 나무는 햇빛을 따라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무게중심이 이동하는데, 만약 나무가 단순히 햇빛 방향으로만 기울어진다면 결국 넘어질 것이다. 그러나 나무는 이를 보상하는 정교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나무가 기울어지거나 한쪽으로 치우쳐 자랄 땐 줄기 내부에 특별한 현상이 일어나는데, 기울어진 방향의 반대편에 더 강한 힘을 생성해 가며 균형을 잡아간다. 이는 마치 나무가 스스로 '자세 교정'을 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뿌리에서도 이러한 교정 효과를 만들어낸다. 햇빛을 향해 기울어진 지상부를 지탱하기 위해 뿌리들도 비대칭적으로 성장하는데, 나무가 기울어진 반대편 뿌리들이 더 깊고 넓게 자라서 균형을 잡아주는 자연 지지대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가지들 또한 햇빛 방향과 균형을 동시에 고려하여 배치가 결정된다. 햇빛이 부족한 쪽에는 더 긴 가지를 뻗어 광합성 면적을 확보하면서도 전체적인 무게 분산을 고려한 성장 패턴을 보인다. 결국 나무는 하루 중 태양의 움직임과 계절별 태양 각도 변화를 학습하여 장기적으로 최적의 균형점을 찾아가는데, 이는 단기적으로 햇빛을 쫓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친 성장 전략인 것이다.


그리고 나무는 숲 속에서의 경쟁과 균형을 이룬다. 숲에서는 다른 나무들과의 햇빛 경쟁 때문에 수직으로 빠르게 자라려고 하지만, 동시에 바람에 견딜 수 있는 균형도 유지해야 한다. 이 때문에 나무들은 높이 성장과 직경 성장 사이의 최적 비율을 찾아가며 성장해 간다.


결론적으로 나무의 향광성은 단순히 햇빛을 쫓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 획득과 구조적 안정성을 동시에 최적화하는 복합적인 생존 전략의 일부이며, 나무들은 햇빛도 따르면서 넘어지지도 않는 '절묘한 균형점'을 찾아낸 것이다.



# 마무리의 글


오늘도 나는 퇴근길에 길가의 나무들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비바람이 불어오는 날씨에 가지와 잎은 정신없이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 줄기와 뿌리만은 단단해 보였다. 나무 위 잎사귀들은 사정없는 비바람에도 장단을 맞추어 유연하게 구부러지고 접혀지고 있었지만, 그 굵은 기둥과 뿌리는 결코 삶의 어려움에 물러서지 않으리라는 결연한 의지를 뿜어내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아마도 내일이면 날이 좋아 나무는 또다시 햇빛을 쫓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과도하게 기울어지지 않는 절묘한 균형감으로 살아갈 것이다.


아마 처절하도록 비정하게만 느껴지는 거친 세상의 경쟁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나무와 같이 '절묘한 균형점'을 찾아내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햇빛을 바라보며 쫓아가되 과도한 기울임으로 넘어지지 않는 절묘한 균형감과 때론 강직해 보이지만 상황에 맞는 유연성 그리고 변화가 필요할 때면 적응성을 발휘하는 삶! 그런 균형감 있는 아름다운 삶이 모두에게 이루어지길 바라며, 나의 삶도 나무를 닮기 위해 오늘도 결의를 다져본다.


나무는 땅이 하늘에 쓰는 시다.

<칼릴 지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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