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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뼘 수필 Aug 05. 2023

백색 소음과 종소리

한 뼘 수필

동창이 밝아오고 노고지리 우짖어도 절대 내 눈 안 떠진다.

자고 일어나는 건 습관 들이기 나름이라고 엄마한테 수없이 깨졌지만 안 된다.

남편 말로는 저혈압에 소음인의 특성이라고 한다. 확인된 바는 없다.

그런 나도 가끔 양심적으로 새벽에 깰 때가 있다.

오늘 같은 날이다. 수탉 우는 소리에 깼다. 아니 깨고 보니 들렸다. 

사위가 푸르스름하다. 갖가지 소리가 새벽을 연다.

차 소리, 초침 소리, 개 짖는 소리, 풀벌레 소리,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까지.



김혜진의 '경청'을 읽었다.

눈이 너무 아파서 눈을 감았다. 레인지에 돌린 팥주머니를 눈에 올렸다.

갑자기 비죽 웃음이 나왔다. 지금 나, 소리를 경청해야 하나?

그러지, 뭐. 눈을 감고 순하게 시작~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대해서는 일도 불평할 게 없다.

그런데 비행기가 지나가는 곳인지 꿈에도 몰랐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리는 비행기 소리가 너무나 거슬린다.

이건 백색소음이야, 하늘에서 파도치는 소리니까. 최면을 걸며 평정심을 찾는다.

대신 비행기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번쩍거리는 비행기의 멋진 몸체를 또렷하게 볼 수 있다.

어떨 땐 손을 흔들어주고 싶어 내 팔을 꼭 붙들기도 한다. 

더구나, 더구나 총소리도 들린다.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만 근처에 군부대가 있다.

처음에는 요령부득이 한 소리였다. 가늠조차 안 되는 이해불가의 소리였다.

총소리라는 걸 알았을 때 우하하하, 허탈한 웃음이 자꾸 나왔다.

장고 끝에 악수 둔다고, 이 집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총소리까지 들린단 말인가.

백두산 계곡에서 폭포 떨어지는 소리처럼 세차다. 

커다란 세탁기가 최강으로 돌아가는 소리 같기도 하다.

미친 듯 쏴대는 총소리는 나의 안위를 지키는 소리. 그러니 백색 소음인 게야.

가마솥 가득 콩 볶듯 쏟아지는 그 많은 총알은 다시 주워서 재생할 수 있을까? 

나의 오지랖은 하릴없이 국가와 국방의 재정을 걱정한다.


신축단지라서 주변에 공사가 끊이질 않는다. 날마다 부서지고 날마다 올라간다.

길을 파헤치고 길을 닦는다. 새 건물에 붙어 있는 임대문의가 나를 슬프게 한다.

대체 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도 이런데 주인은 얼마나 애가 탈 거야. 

틀틀틀틀, 꿍꽝꿍꽝 쿵쿵.  삶을 세우는 희망의 소리였겠지.

그러니 이건 백색소음이다. 삶의 질을 높이고 안정감을 주는 유익한 소리.

개 짖는 소리를 뚫고 우렁차게 울리는 수탉의 울음소리 우렁차다. 

언젠가 출장 갔다가 어느 길목에서 본 거대한 수탉이 떠오른다. 

담장 위에 떡하니 올라앉은 그 닭은 얼마나 의젓하고 멋지던지.

아침잠 많은 덕에 어쩌다 듣게 되니 이 소리는 반갑고 정겨운 소리다.

일 났나? 깼으면 아침 좀 일찍 먹자.

벌써 쓰레기를 처리하고 들어오는 남편의 목소리.

후다닥 누워서 자는 척한다. 아침 일찍은 뭐가 먹히질 않는다.



예전에 동생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교회 종을 쳤다.

어느 날, 자매가 만나서 한참 이야기 꽃을 피우다가 자려고 누웠다.

그런데 동생은 눕지 않고 벽에 기대고 앉아 눈을 감았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잠들면 종을  못 칠까 봐 그런다고 했다.

내가 성질을 냈다.

"알아서 오겠지. 종 안친다고 새벽 기도 안 오나?"

동생이 웃었다.

"언니야, 교인들만 깨우는 게 아니야. 이곳 사람들은 종소리를 들으면서 하루를 열어."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나는 아픈 눈을 가만히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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