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 수필
어떤 여성 모임에 참석하게 됐다. 참석자들의 면면을 다 알 수는 없었지만 내가 배정받은 테이블에는 대학교수와 변호사, 그리고 문화비평가가 있었다. 그렇게들 자기소개를 했고 그들의 박학다식한 대화 속에서 은연중 묻어 나오는 내용으로 짐작할 수도 있었다. 물론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있었고 내 바로 옆자리에 앉은 이는 남편이 의사라고 자신을 소개하기도 했다.
나보다는 다들 잘난 사람들 같아 그들의 열변에 귀를 기울였다. 지혜와 지식이 가득 찬 생활에의 조언도 얻을 수 있겠거니, 그런 기대감에 나의 경청 태도는 처음부터 매우 진지하고 겸손했다.
그네들은 예상한 대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열정적으로 쏟아냈다. 이 사회의 부조리와 정치, 경제, 환경 문제에 이르기까지 거침없는 비판을 장황하고 현란한 언어들로 쏟아냈다. 좋은 얘기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잘 알아듣기 위해 잔뜩 긴장하느라 갈비뼈 부근에 약간의 통증마저 느꼈더랬다.
대화의 주제는 어느덧 아이들 교육 문제로 넘어갔다. 전문직 여성들이라고 해도 학부모들인지라 빼놓을 수 없는 주제였다.
“일등, 일등만 외치니까 인성교육이 그렇게 엉망이 된 겁니다. 내 아이만은 그렇게 키우지 않겠다고 정말 노력하고 있는데.”
“동감입니다. 성적이 다가 아닌데 오늘날 우리 엄마들의 욕심과 극성이...”
“내가 다른 나라를 참 많이 다녀봤지만, 우리 애들처럼 엉망인 나라는 없어요. 다 엄마들 교육이 잘못된 탓이에요. 우리 주부들이 각성해야 해요.”
나는 솔직히 좀 놀랐다. 뭐 그런 당연한 얘길 저토록 진지하게 울분을 토하듯 말하는 걸까. 우리 동네 엄마들은 식은 밥 물 말아먹으면서 맨날 하는 소린데. 그쯤에서 나의 경청 태도는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하품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그래서 전 우리 아이한테 절대로 네가 잘났다고 하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애가 너무 순진해요. 선생님이 넌, 잘하니까 맨날 상장받는구나, 그러시더래요. 그 소릴 듣고 글쎄 우리 애가 이제 다른 애들 주세요, 그랬다잖아요. 그렇게 애가 욕심도 없고 겸손해요.”
“우리 애는 첼로와 바이올린을 시켜요. 맑고 순수한 영혼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게 하려고요.”
“뭐, 우리 애는 글짓기를 몇 년 시켰더니 대회만 나갔다 하면 상을 받네요.”
“어느 선생님께 배우죠? 정보 좀 주세요.”
그때 누군가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과묵하신 분인가 봐요. 통 말씀이 없으시네요.”
내가 얼마나 수다를 잘 떠는지 아는 사람이면 이 말 듣고 하하, 웃겠지. 어쨌든 나도 한마디 했다.
“제 주위에는 그냥 건강한 애들은 많아도 너무나 맑은 영혼을 가진 아이는, 글쎄요. 아직 못 봤어요. 글고 우리 집 애는 상 같은 거 사양할 만큼 받은 게 없어서.”
그들은 더이상 내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나도 별 도움이 안 되는 이야기에 모임이 끝나기만 기다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맑은 가을 햇살이 노랗고 붉은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갑자기 이웃들이 너무 보고 싶어졌다.
“공부 좀 해라. 동생이랑 싸우지 좀 말고!”
큰소리를 담장 밖으로 내보내고 학원비 걱정을 늘어놓고 기미가 더께로 앉은, 너무 평범해서 가끔 내가 혀를 차며 흉도 보았던 우리 동네 그 엄마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