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 수필
나는 밥을 참 좋아하는 아낙이다.
요즘은 밥을 적게 먹고 한 끼 정도는 안 먹어도 살 수 있다.
젊을 때는 굶지 못했다. 간식을 먹을 바에야 밥을 먹었다.
어느 시대에 살았어도 독립운동 같은 건 못했을 것이다.
밥만 굶기면 다 불게 분명하니까.
서른아홉의 초겨울, 모기업 공모전에 입상해서 상경했다.
호텔에서 시상을 했는데 11시 반에 식사를 제공한다고 했다.
시상은 그전에 시작하니 6시 새벽 기차를 타야 했다.
아침을 먹을 시간이 없는데 굶을 수 없는 나는 김밥을 쌌다.
남편이 그럴 바에 차라리 새벽에 밥을 먹으라고 했다.
이른 새벽에는 밥이 안 넘어간다고 불퉁거리며 기어이 쌌다.
남편이 계속 혀를 차며 뭐라 했다.
"점심도 일찍 주는데 고새를 못 참나? 김밥은 어디서 먹을 건데?"
"기차 안에서 먹지."
"사람들 다 있는데서?"
"그 사람들은 밥 안 먹고사나? 난 꿋꿋하게 먹을 수 있어."
나는 꿋꿋하게 먹을 수 없었다.
겨울이라 그런지 아침이 되어도 기차칸은 어두웠다.
내 옆에는 하필 그놈의 멋진 남자가 앉아 있었다.
김밥을 꺼낼 기회만 노리고 있는데 드디어 열차 칸에 불이 들어왔다.
음료수와 먹거리를 파는 수레도 통로를 지나갔다.
그러나 새벽 기차에 몸을 실은 사람들은 고단한 눈을 뜨지 않았다.
조심조심 김밥을 꺼냈다.
뚜껑을 열자 참기름 내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고소했다.
팔짱을 낀 채 눈 감고 있던 남자가 슬쩍 일별 하더니 돌아앉았다.
그 남자의 입에서 깊은 한숨소리가 들렸다.
멋진 남자 따위, 휘둘리지 않을 각오가 돼 있었지만 이미 전의를 상실했다.
김밥 도시락 뚜껑을 닫고 다시 쇼핑백에 넣었다.
시상식이 끝나고 점심으로 스테이크가 나왔다.
도시락이 들어있는 쇼핑백을 소중하게 끌어안고 맛있게 먹었다.
옆에 앉은 수상자가 뭐예요, 물었고 나는 멋쩍게 웃었다.
돌아오는 열차는 3시.
옆자리에 울 엄마 연배의 늘그막 한 아주머니가 앉았다.
아침잠도 많은 내가 첫새벽부터 김밥 싸고 한양까지 갔으니 피곤했다.
도착할 때까지 한숨 자려고 하는데 아주머니가 웅웅 앓는 소리를 냈다.
"아이구, 배야. 부산까지 차례 멀었는데, 우야노."
흘낏 훑어봤다. 머리도 헝클어지고 지친 표정이었다.
"아줌마, 왜 그러세요? 어디 아프세요?"
그렇게 묻자 아주머니가 기다렸다는 듯 하소연을 했다.
"서울 딸네 집에 갔다가 부산 집에 가는 길이라요.
언제 또 오냐 싶어서 새벽부터 일 한다고 설쳤디만 종일 굶었네.
종일 씨름하는 아가 안쓰러워서 하나라도 더 해줄라 한 긴데
열차 시간이 급해서 그냥 나왔더만 밥도 안 먹고 가면 지 속은
어떻겠냐고 딸 아는 성질만 내고."
갑자기 설움이 북받치는지 아주머니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아주머니가 울면 어쩌나 싶어서 다급하게 말했다.
"아줌마, 저한테 김밥 있어요. 드실래요?"
아주머니가 눈이 둥그레져서 어디? 하고 물었다.
"잠깐만요. 겨울이라 괜찮지 싶은데 제가 먼저 먹어볼게요."
김밥을 꺼내 먼저 먹어봤다. 굳지도 않았고 맛있었다.
지금 같으면 기차에서 모르는 이와 음식을 나누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땐 그랬다. 아주머니는 꿀 같이 달고 맛있다고 했다.
나도 스테이크로 느끼한 속을 우엉과 단무지로 달랬다.
아주머니가 고맙다면서 콘을 사주셨다.
여름에도 안 먹는 아이스크림, 게다가 싫어하는 콘을 나는 맛있게 먹었다.
아주머니는 아이구, 배야. 그랬지만 배가 고파서 그런 게 아닐 것이다.
속이 아파서 그랬을 것이다.
일터로 간 딸은 엄마가 혼자 역까지 잘 갔으려나 궁금해서 전화를 했겠지.
그러다 밥도 안 먹고 일만 한 걸 알고 울컥해서 한 소리 했겠지.
모녀가 서로 안쓰럽다는 게 결국 언성만 높이게 되었겠지.
그렇게 엄마를 보낸 딸의 마음을 아니까 더 아팠을 것이다.
아무튼 그날의 김밥은 정말 맛있었다.
그해 겨울도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