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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뼘 수필 Oct 11. 2023

반쪽만 웃을까, 다 웃을까.

한 뼘 수필

팔을 다친 큰 형님께 안부 전화를 했더니 하소연이다. 

"집안일을 이 사람이 다 하니까 힘들어해서 미안해."

그러면서 형님은 말꼬리를 흐렸다. 

"아주버님 하시는 게  마음에 안 차서 그러시죠?"

형님이 웃으며 그렇다고 한다. 그러면서 되묻는다. 

"동서는 아지뱀 하는 게 맘에 들어?"

"맘에 들고 말고 가 어딨 어요? 해주면 고마운 거죠. 

누구라도 하다 보면 늘어요. 잔소리하면 하던 것도 안 하고."

큰 형님이 그래, 맞아. 나도 아는데 잘 안 돼, 한숨을 쉰다. 

워낙 깔끔한 성격이라 그러기도 할 것이다. 

문득 몇 년 전 일이 떠올랐다. 

작은 애가 결혼하고 첫 명절에 왔을 때 나는 친정에 있었다. 

저들이 온다고 한 날보다 앞당겨 왔기 때문이다. 

그때는 큰애도 독립하기 전이라 우리 집에 있었다. 

나는 동생들하고 한창 재밌어서 금방 일어나기 싫었다. 

그래서 며느리한테 먼저 떡국을 끓여 먹으라고 했다. 

혹시나 싶어 다 준비해 놓고 온 걸 다행으로 여기면서. 

그리고 큰애도 같이 먹게 넉넉하게 끓이라고 덧붙였다. 

바로 작은 애한테서 전화가 왔다. 

"엄마, 히야 것도 ㅅㅇ이가 끓여요? 왜요?" 

어?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잘못 들었나?

"그럼, 니 형은 안 줄 거야?"

"아니, 히야 걸  ㅅㅇ가 끓이는 게 맞나 싶어서요."

열부터 났다. 

"그래? 그럼 너는 남편이니까 ㅅㅇ가 끓여주는 게 맞고 

니 형은 동생인 니가 끓여주면 맞겠네. 그렇지?"

작은 애가 네,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물론 며느리가 넉넉하게 끓여서 다 같이 맛있게 먹었다. 

처음에는 정말 작은 애가 이기적이고 못됐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천지분간이 안 되는 애였나, 이해되지 않았다. 

나중에는 이해가 됐다.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고. 


신혼 시절, 나도 그런 의문을 가졌었다.  

연애할 때 뻔질나게 드나들던 시댁이다. 

그런데 결혼하자 이상하게 시댁이 낯설고 힘들었다. 

정말 잘하는 좋은 며느리가 되고 싶어서 내 딴에는

열심히 노력했는데 마음 한쪽이 무겁고 불편했다. 

햇볕이 찔러대도 일어나지 못하는 내가 새벽에 일어났다. 

집안일을 싫어해서 뺀질거리다 만날 혼나던 내가, 

시댁 식구들 밥 짓겠다고 새벽에 쌀 씻는데 눈물이 났다.

시댁에서 일하는 게 화가 난 게 아니라 엄마께 못 해드렸던

나의 못남과 못됨이 걸렸던 건데 그땐 그걸 몰랐다.  

'시媤'의 부조리라고 생각했다. 

왜 어머니는 입때까지 잘하던 집안일을 딱 멈추고 날 시키지? 

나는 왜 시부모님 마음에 들기 위해 이렇게 애를 쓰는 거지?

잘한다는 소리는 듣고 싶으면서도 의문투성이였다.

그런 마음으로 좋은 며느리가 되려고 하니 벅찼다. 

다행히 시댁 식구들은 모두 유쾌하고 다정하다. 

모이면 한밤중까지 담소 나누는 걸 정말 좋아한다.

만날 둘러앉아 과자를 먹으면서 끝없이 얘기한다.

수다 떠는 걸 좋아하는 나와 찰떡이었다.

그렇게 어우렁더우렁 어울리고  정이 들면서 

나의 의문들은 저절로, 자연스럽게 해소됐다. 

그런 의문을 가지고 불편했던 사실조차 잊게 됐다.

뭘 어떻게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어느 결에 그렇게 됐다.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 내 생각에 나는

나름 괜찮은 며느리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괜찮은 며느리는 나 혼자될 수 없다. 

남편이 도와줘야 하고 시어른들이 도와줘야 한다. 

결혼은, 시댁과의 관계는, 낯선 세계와의 만남이다.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세상. 그런데 며느리는 

어른이 되는 시간을 모르는 세계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알 수 없는 그들만의 법도, 세상의 관습과 

도리를 들먹이기 전에 한 사람이 낯선 세계에

친숙해지도록 기다리고 배려하는 마음이 먼저여야 한다. 

결혼 전 수없이 들락거렸던 나도 혼란스러웠는데

시부모 얼굴 몇 번 보고 결혼한 시댁이라면 얼마나 낯설까. 

작은 애도 그게 이상했을 것이다. 

결혼해서 처음 온 시댁에, 모든 게 낯선 며느리에게 

놀러 간 시엄마는 빨리 오지도 않고 어쩌고 저쩌고 했으니 

아들은 그게 이상하고 부조리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생각과 행동에는 차이가 있다. 

이렇게 말하는 나라고 뭐 늘 잘하는 건 아닐 것이다.

막상 어떤 문제에 부딪치면 이성을 잃기도 한다.

생각과 다른 말이, 감정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나는 힘들여서 해주는 걸 상대는 쉽게 생각하기도 한다. 

어떻게 다 따지면서 살겠는가. 


"뭔 생각을 그래 하슈?"

지나가던 남편이 묻는다. 

"아주버님은 집안 일 하신다고 힘들고 형님은  형님대로 힘쓰인데." 

"안 하다 하니까 힘들지. 내처럼 날마다 해봐라, 힘드나."

남편도 요즘 자뻑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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