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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뼘 수필 Sep 07. 2023

눈물

한 뼘 수필

 책을 펼쳤는데 눈이 너무 아파서 인공눈물을 넣었다. 그런데 어느 이의 수필을 읽는 중에 마음을 건드리는 내용과 마주하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인공눈물을 넣지 않아도 될 뻔했다.

 

 연암 박지원은 광활한 요동 벌판을 보고 ‘한바탕 울어볼 만한 자리’라고 했다. 그리고 사람은 슬플 때만 우는 게 아니라 기쁨, 분노, 사랑, 미움 등 칠정이 극에 달하면 저절로 울음에 이른다고 말했다. 

 

 연암의 말이 아니어도 나는 잘 운다. 서러워도, 기뻐도, 마음이 따뜻해져도 울컥 눈물이 나온다. 그런데 엉뚱한 지점에서도 내 의도와 상관없이 눈물이 나와서 곤란한 적이 종종 있다. 반면에 울어야 할 상황인데 눈물이 나오지 않아서 못된 년 소리를 듣기도 한다. 

 

 한 번은 교무실에서 정약용이 18년의 유배 생활 동안 오백 여권의 저서를 남겼다는 기사를 보고 있는데 느닷없이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내가 만약 18년간 유배를 당하게 된다면 벌써 그전에 속 터져서 죽었을 텐데 어떻게 그 절망감을 이렇게 많은 저술로 승화했을까, 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무튼 외출증을 끊으러 온 우리 반 아이가 "샘, 왜 울어요?"라고 물어서 난처했던 적이 있다. 

 

또 어느 날인가, 우리 반 교실에서 음악 수행평가 감독을 하고 있었다. 교내 방송으로 음악이 나오면 곡명이나 작곡가를 쓰는 평가였다. 다양하고 익숙한 클래식 음악들이 흘러나왔다. 아이들도 방송으로 나오는 음악을 놓칠세라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슈만의 '트로이 메라이’가 흘러나왔다.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우면서 많이 쳤던 곡이라, 오! 하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이유는 지금도 모른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있었냐고? 그 곡과 연결되는 접점은 없다. 근데 눈물이 나왔고 그냥 흐르는 수준이 아니라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내렸다. 감정이 북받쳐서 어깨까지 저절로 들썩여졌다. 아이들의 수행평가를 망칠까 싶어서 남모르게 눈물을 닦으며 진정하느라고 미치는 줄 알았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은 남편이 잘라 말했다. 

 "갱년기네."

 

 그 남편과 결혼할 때 우리 가족은 다 울었다. 처음으로 자식을 출가시키는 엄마도, 큰언니를, 큰누나를 보내는 동생들도 섭섭해서 다 울었다. 정작 가족을 떠나는 나는 일도 안 울고 좋아서 웃고 돌아다니다가 엄마한테 못 됐다고 한 소리 들었다. 

 

 서울로 이사 가는 큰아들을 보내며 시어머니는 정말 많이 우셨다. 시어머니의 눈물을 보면서 큰 형님도 울었고 셋째 형님도 울었다. 옆에서 멀뚱하게 서 있던 나는, 어쩐지 그 상황이 같이 울어야 할 것 같은데, 눈물이 나오지 않아서 애가 탔다. 안 그래도 깍쟁이 같다는 소릴 듣는데 이럴 때 같이 좀 울면 얼마나 좋은가. 아무리 슬픈 생각을 해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는 너무 젊어서 그랬는지 타지로 큰아들을 보내는 어머니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정호승의 시가 떠오른다.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어릴 때 읽은 동화 중에 슬퍼도 눈물이 나지 않아서 마녀로 몰려 죽음의 위기에 처하게 되는 왕비의 이야기가 있었다. 아픈 아기를 보면서 가슴이 찢어지는데 눈물이 나오지 않아 괴로워하던 왕비가 어린 마음에도 참 안타까웠다.

 

 눈물은 좋은 것이다.

 인공눈물은 눈동자의 겉만 슬쩍 적시지만 내가 흘리는 천연의 눈물은 눈동자를 흠뻑 적시고 마음을 촉촉하게 만들어준다.

 삶은 시시때때로 날 아프게 하고 고통의 눈물을 흘리게 하지만 그 눈물을 닦아주는 것도  우리가 살아내야만 하는 삶이다. 

 삶의 이야기 한 편이 날 울게 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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