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 수필
산에서 내려오는 길, 목에 벌레가 떨어져서 비명을 질렀다.
반사적으로 털어냈는데 가늘고 작은 벌레가 콕, 찌른 것 같았다.
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때부터였다.
목이 가렵고 따끔 거렸다. 별로 예민하지 않아서
뭐에 물려도 조금 긁다가 마는데 이번에는 심했다.
나는 모기나 벌레가 잘 타는 사람이다.
산에 가면 만날 모기랑 벌레에 뜯기고 온다.
동생 말이, 보통 A형이 그렇고 그중에서도
어린아이가 더 잘 탄다고 한다. 일리 있는 것 같다.
엄마도, 동생들도, 나도 A형이다. 다들 잘 물린다.
차이가 있다면 엄마랑 동생은 물릴 때마다 그 독이 너무나
심하고 오래가서 진한 상처를 남기는데 나는 잠깐 가렵고 만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온 데 다 물렸는데 그중에서 목이 가장 심했다.
목 주변이 온통 두드러기 같은 반점이 툭툭 불거졌다.
남편은 B형인데 전혀 모기나 벌레를 타지 않는다.
A형인 작은 아들은 아기 때 너무나 모기에 잘 물렸다.
엄마는 모기에 물린 손자를 보고 너무 화가 나서 말했다.
"그놈의 모기 주댕이를 쪽 잡아 째뿔라."
단언컨대 내 평생 울 엄마가 욕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화나서 소리 지르고 인상 쓰고 때릴 때도 욕은 안 한다.
그런 엄마도 손자가 모기에 물리니까 험한 말이 나왔고
그 말이 어찌나 재밌는지 한참 웃었다.
어쨌든 정리하자면 이렇다.
가족이 다 모이면 모기는 A형 울 이쁜 손녀를 집중 공격한다.
손녀가 없으면 작은 아들을 공격한다.
작은 아들이 없으면 나를 공격한다.
남편은 언제나 무사하다.
그러니까 나는 산에 가면 벌레와 모기로부터 남편을
지켜주는 비자발적 보디가드가 되는 셈이다.
개 풀 뜯어먹는 소리가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뜻의
이 속담을 굳이 인용하는 건 어제 산에서 개가
정말 열심히 풀을 뜯어먹는 걸 봤기 때문이다.
하산 후, 운암지 근처 옹심이 칼국수 집에 갔다.
벅벅 긁고 있으니 남편이 보고 깜짝 놀라서
푸새비에 물린 것 같다고 했다.
"푸새비? 그게 뭔데?"
톡 쏘는 송충이 종류의 벌레를 어릴 때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그러니까 경상도 사투리인 것 같다.
"송충이는 털이 있잖아. 털실 느낌은 아니었어."
그렇게 말했더니 남편이 열심히 갖다 붙인다.
"그럼 독거미 다리가 당신 목을 살짝 긁고 간 거네."
이거야말로 개 풀 뜯어먹는 소리 같다.
저녁이 돼서야 좀 가라앉았다.
축구 보면서 먹는다고 아주버님이 보내준 케이크를 찾아왔다.
오늘 아침 일어나니 두드러기가 다시 시작됐다.
어제보다 더 심하게 올라왔다.
갑자기 남편이 대상포진이라고 했다.
아니라고 하는데도 교회 가는 내내 우겼다.
"대상포진 아니야. 아프진 않고 가렵기만 하다고."
"대상포진이야. 요즘 너무 무리해서 면역력이 약해진 거지."
많이 무리한 건 사실이다. 근래에 나를 너무 볶아쳤다.
그래도 대상포진은 아니다. 해 봐서 안다.
그때도 목에서 시작한 건 맞는데 너무 아팠다.
목뼈에 금이 간 줄 알았다.
남편이 하도 우겨서 성질을 냈다.
"한 사람이 알지, 하지도 않은 사람이 아나?"
교회로 들어가려는데 목 상태가 너무 심했다.
다른 사람들이 내 목을 보면 불안할 것 같았다.
그래서 손수건을 살짝 매고 목을 가렸다.
그러니까 남편이 또 한마디 한다.
"우리 고등학교 다닐 때는 그렇게 손수건 매면
키스 마크 가린다고 놀렸는데, 당신도 아나?"
"알지, 키스 마크! 좋네. 블로그 글 제목으로 써야겠다."
남편이 질색을 했다.
"그런 것도 알았냐고, 학교 다닐 때 까졌다고 할 텐데."
웃음이 나왔다.
"뭐래, 우리 때는 목에 손수건 매면 다 그렇게 수군거렸는데."
지금 내 목의 두드러기가 피라칸타 붉은 열매 같다.
개 풀 뜯어먹는 쏘리라굽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