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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뼘 수필 Aug 22. 2023

아들의 여자친구

한 뼘 수필

산책 갔다 오는 길에 우연히 며느리를 만났다. 가까이 살아도 저나 나나 서로의 집을 드나들지 않는데 길에서 만나니 반가웠다. 잘 지내냐고 서로 안부를 묻고 웃다가 헤어졌다. 그때 남편이 속삭였다. 

"밥 때 돼서 그냥 보내니까 미안하다. 당신 괜찮으면 불러서 같이 밥 먹자. 혼자 밥 먹는 거 뻔히 알면서 그냥 보냈다고 큰애도 나중에 들으면  서운할 거야."


내가 고개를 저었다. 아들은 회사에서 저녁을 먹고 오기 때문이다.

"뭐가 서운해. 저 혼자 먹는데 김밥 한 줄, 빵 한 조각 먹으면 될 걸 괜히 우리 집에 데려가면 남편도 없이 시부모 앞에서 밥이 뭐 맛있겠어? 먹고 나면 또 설거지를 해야 되나, 어쩌나 신경만 쓰이지." 


남편이 흥, 코웃음을 쳤다.

"솔직해봐라. 당신이 귀찮어서 그런 거 아이가?"

솔직히 부정할 순 없다. 귀찮다기보다는 뭔가 신경이 쓰인다. 잘하려고 애쓰는 아이가 이쁘면서도 그러느라 제 딴에는 얼마나 힘들까, 그게 또 신경 쓰인다. 그러니 피차 신경 쓸 일을 만들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남편이 또 불쑥 말한다.

 

"울 엄마는 사람 오는 거 진짜 좋아했는데."

그건 맞다. 남편과 연애할 때 그의 집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자기 집에 가자면 별생각 없이 갔고 그의 어머니가 오라면 또 갔다. 시어머니께 그때 고스톱을 배웠다. 정말 재미있었다. 나는 희비가 얼굴에 금방 나타나는 편이다. 돈을 잃어봤자 어머니가 다 돌려주시는데도 지면 약이 올랐다. 표가 났을 것이다. 그래도 어머니는 밥 해줄 테니 오라고 하셨고 막 배운 잡기가 재미있어서 나는 갔다. 

한 번은 놀러 갔다가 무슨 말끝에 원앙새 얘기가 나왔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하니까 어머니가 달성공원에 있다고 가서 보자고 하셨다. 그래서 갑자기  공원에 가게 됐는데, 버스정류장에서 남편과 내가 싸웠다. 나는 22번 버스를 타야 한다고 그랬고 그는 76번을 타야 한다고 서로 우긴 것이다. 어머니는 길에서 싸울 게 아니라 택시를 타고 가자고 했지만 우리는 서로 고집을 꺾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고집이라곤 없는데 그때는 젊어서 그랬을까? 

“어머니, 22번이 확실한데 왜 택시를 타요?”

“아니, 엄마. 76번이야. 나는 꼭 76번 탈 거니까 맘대로 해요.”

그때 마침 22번 버스가 왔다. 나는 내 말이 맞음을 확신시켜 주기 위해 홀라당 올라타버렸다. 그는 안 탔다. 어머니는 아들과 아들의 여자친구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하시더니 결국 버스에 오르셨다. 그리고는 아들을 향해 애타게 손짓했지만, 아들내미는 끝내 안 탔다. 

버스도 출발했다. 내 고집으로 남자친구를 떨구고 그의 어머니와 둘이 가려니 사실 좀 거북했다. 그렇게 확신했던 이 버스가 정말 달성공원에 가는 버스일지 그것도 걱정됐다. 어머니는 별말씀 없이 그저 창밖을 내다보셨다. 다행히 버스는 달성공원 앞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남편이 먼저 와서 공원 입구에 서 있는 게 아닌가. 22번은 타기 싫고 우릴 놓칠 수는 없어서 택시 타고 왔다나. 

어쨌든 그날 우리는 원앙새도 보고 공원 구경도 잘했다.

남자친구 집에 그렇게 드나들었어도 막상 그 집이 시집이 되었을 때는 또 달랐다. 그렇게 격의 없이 대해주셨지만 가족의 일원이 되자 그 무게감이 엄습했다. 연애할 때는 보이지 않던 친정과의 차이도  그랬고 좋은 며느리가 되어야겠다는 굳은 결심도 스스로를 압박했다. 털털하게 먼저 다가가는 성격도 아니어서 늘 드나들던 곳이 별안간 낯선 곳처럼 마음이 맴돌기도 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늘 한결같이 대해주셨다. 나도 며느리에게 어머님처럼만 하자고 생각한다.

사진은 어머니를 따라가는 남편과 나를 생각하면서 올린 이영환 작가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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