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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뼘 수필 Aug 21. 2023

집 나간 강아지를 찾습니다.

한 뼘 수필

"와~ 눈이 쌓였어!"

남편의 목소리에 창밖을 내다보니 이렇게 많은 눈이 내렸다. 눈이 귀한 지역이다 보니 반가워서 사진부터 찍었다.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사람과 경비 아저씨가 보인다. 오전에 우체국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경비아저씨가 눈을 맞으며 눈을 쓸고 있다. 

"눈이 와서 반갑긴 한데 고생이 많으십니다."

우리 인사말에 아저씨가 허허 웃으신다. 


우체국 가는 길에 작은  숲길을 지나간다. 일찍 나섰는데도 벌써 먼저 간 사람들의 발자국이 있다. 땅에 쌓일 듯 말 듯, 살짝 내린 눈은 '살눈'이라 한다. 살눈보다는 많이 내렸지만, 겨우 발자국이 날 만큼 적게 온 눈은 '자국눈'이라고 한다. 이 길은 자국눈보다는 많이 내리는 중이다.


우체국에서 나와 20여 분 걸어서 논두렁밭두렁에 갔다. 도시의 번화가 끝자락에 자리한 종자논이다. 발이 푹푹 빠질 거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눈이 많이 쌓이지 않았다. 그래도 논두렁에는 아무도 밟지 않은 '숫눈'이 쌓여있다. '숫눈'은 눈이 쌓인 뒤에 아무도 지나지 않은, 그대로의 깨끗한 상태로 있는 눈을 말한다.



눈이 내리고 있는 논틀길을 걸으니 초임 시절의 그곳이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곳은 안개와 눈이 정말 많은 곳이었다. 눈이 한번 내리면 발목이 푹푹 빠지는 건 예사다. 발목이 푹 빠질 만큼 한 자쯤 쌓이면 '잣눈'이라고 한다. 



잣눈이 한창 내리던 새벽이었다. 이장님의 안내 방송이 마을을 쩡쩡 울렸다. 



"오늘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학교가 쉽니다. 그런 게 다들 학교 가지 말고, 밖에도 나가지 말고 집구석에 들 있어요."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눈길을 푹푹 빠지며 출근할 걸 생각하니 한숨이 나오던 차에  잘됐다 싶어서 다시 잤다.  뜨끈한 구들목에서 한참 자고 있는데 누가 자취방 문을 두드렸다. 잠에 취해 누구냐고 물으니 웬 남자 목소리였다.


"아니, 조 선생은 집에 있으면서 출근도 안 하고 뭐 하셔요?"


나가보니 서무실 직원이었다. 


"오늘 눈이 너무 많이 와서 학교 휴교잖아요."


"아, 학생이나 학교 안 가지, 선생도 안 가면 어쩝니까? 교감 선생님이 난리 났어요." 


그때는 휴대폰이 없는 시절이었으니 직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데리러 온 것이다. 팔자에 없는 오토바이를 타고 늦은 출근을 한 나는 교감 선생님께 혼났다. 스물네 살의 겨울이었다. 






작은 며느리가 보내온 눈오리들 사진이다. 세상에! 이걸 어떻게 만들었지? 이렇게나 솜씨가 좋다니, 믿기지 않았다. 이어 보내온 영상을 보니 작은 틀에 눈을 뭉쳐 넣으면 오리가 뿅, 나오는 것이었다. 너무 재밌어서 막 웃었다. 


집 나온 오리들을 보니 집 나간 강아지 찾는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앞에서 등장했던 이장님이 다시 나온다. 


새벽 5시.

모두가 잠든, 아니 시골이라 거의 태반은 눈을 떴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제나저제나 아침잠이 많은 나는 이장님 방송 소리를 비몽사몽 듣고 있었다. 


"에, 에. 집 나간 개~ㅅㄲ를 찾습니다. 어젯밤 나가서는 아직 들어오지 않은 개 ㅅㄲ, 아, 그 얼룩이  자석 말이요. 다시 말하겄습니다. 집 나간 개~ㅅㄲ를 찾습니다."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이불속에서 혼자 막 뒹굴면서 웃었다. 이장님의 찰진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울리는 것 같다. 



모처럼 눈 내린 날 추억이 새록새록 돋는데 이 글을 쓰는 사이  어느새 눈이 그치고 도로와 아파트는 촉촉하게 젖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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