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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뼘 수필 Sep 15. 2023

나 가거든, 마술피리

한 뼘 수필

엄마 생신이라 친정 식구들과 청송에 갔다.     

생신이 여름이다 보니 몇 년 전부터 휴가를 겸해 여행을 가곤 한다.     

청송은 자주 가는 곳이라 아들며느리와 갔던 삼척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에게 장거리가 부담스러울 것 같아 그렇게 정했다.     

하긴 청송은 몇 번을 가도 좋다. 산세가 뛰어나고 볼거리도 많다.     

주산지도, 얼음골도, 주왕산도, 신성계곡도, 절골도 다 좋다.          


동생 부부는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청송에서 살았다.     

학원에  보낼 형편이 안 됐다.     

그런데도 조카와 질녀는 그렇게 공부를 잘했다.         

둘 다 좋은 대학에 가서 4년 전면 장학생으로 다녔다.     

조카는 대학원도 그렇게 마쳤다.     

     

한 번은 공부 안 하는 큰애를 불러서 진지하게 말했다.     

"ㅎ은 학원 한 번 안 가도 그래 잘하는데 넌 어쩔 작정이냐."       

큰애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내가 청송에 가서 살 테니 엄마가 ㅎ을 데려와 뒷바라지하는 게 좋겠어요."    

  



그런 추억들이 떠올라 잘 달리던 고속도로를 벗어나 34번 국도로 갔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이다.      

가는 동안 기암괴석의 산들이 이어져 풍광이 정말 좋았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걸렸다. 도착 시간이 자꾸 지연되었다.     

허리 아픈 엄마 생각해서 그나마 가까운 곳으로 정한 건데.     

이쯤 되면 삼척에 가는 게 나을 뻔했다.     

     

엄마는 대놓고 싫단 소리는 못하고 에둘러 말했다.          

"밤에 이 길을 가면 정말 무섭겠다."         

동생은 동생대로 안 오냐고 재촉했다.         

"나 가고 있거든!"     

     

소리치고 나자 갑자기 조수미의 '나 가거든'이 떠올랐다.     

내가 참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다. 한동안 쉬지 않고 들었다.     

남편도 한 때 조수미에 빠져  클래식 cd를 주야장천 틀었다.     

     

하루는 한밤중에 파계사 구불구불한 뒷길을 달리고 있었다.     

음산하고 무섭고 까딱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 밤이었다.     

차에서는 조수미의 소프라노가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운 굽잇길에서 쉴 새 없이 흐르는 소프라노를 아시는가.     

상상 그 이상이다. 정말이지 무섭다.     

     

조수미의 '마술피리'가 미친 듯 흘러나왔다.     

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 아아, 아아!!!!     

 '밤의 여왕 아리아'  많이들 들었을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서움을 이기지 못해 말했다.     

     

"아, 고마 꺼. 귀신 곡하는 소리 같아."     

     

운전하던 남편이 흘낏 돌아봤다.      

그리고 혀를 차면서 조수미를 껐다.     

그리고 또, 작게 구시렁거렸다.          

"이런 명곡을 곡하는 소리라니, 진짜 딱하다."   




"영상 좀 찍지? 배롱나무 길이 이래 좋은데."     

의식의 흐름을 끊고 허둥지둥 폰을 켰다.     

정말 좋은 곳은 다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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