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한 장 반 06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한 Sep 11. 2024

테세우스의 배

[한 장 반]프로젝트6

By 한작


처음엔 취객들의 단순 폭행 사건이었다. 기사거리도 아니었고 주목받을 내용도 아니었다. 


술자리에서 기분 나쁘게 자기를 쳐다봤다느니, 시끄러워서 한마디 했더니 시비가 붙었다느니 하는 그런 시시껄렁한 이유로 시작된 싸움이었고, 주변에서 말리는 시늉을 하자 보통 그렇듯 투견처럼 서로 달려들어 주먹질을 한 그저 그런 사건이었다.


서로 적당히 때리고, 때린 만큼 맞은 사건이라 쌍방 과실로 서로 합의를 보고 벌금만 내면 끝날 일이었다. 비슷한 사건이 하루에만 수십 건도 넘게 일어날 그런 시시일 일이었지만, 사건이 엉뚱하게 커지기 시작했다. 난투를 벌였던 당사자 A씨가 하반신 마비를 주장하며 상대 B씨를 특수폭행으로 고발하자 기자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A씨의 주장은 그랬다. B씨의 오른손은 손허리뼈와 큰마름뼈 일부, 알머리뼈 전체가 인공물이기에 둔기에 해당하고 이는 흉기와 다름없으니 특수폭행이라는 주장이었다. 이제 사건은 포탈 뉴스의 사회면 구석에 실릴 정도의 무게를 가지게 되었다. 그래 봤자 불구속 상태로 조사를 받고 있던 B씨에게 악플 서너 개 정도 달리는 수준이었고 크게 논란이 되는 정도는 아니었다. 


여기서 끝날 것 같았던 취객들의 싸움은 다시 한번 크게 논란이 되었다. 포털 메인 뉴스의 한자리를 차지한 건 물론이고 수 천 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B씨가 자신의 행위를 폭행이 아닌 재물손괴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B씨의 주장은 그랬다. A씨가 돼지 신장을 이식받은 걸로 시작해, 왼쪽 발과 왼쪽 어깨, 척추 일부와 골반과 오른쪽 무릎과 발가락 등 총 신체의 60% 가량이 인공물이라는 이유였다. 하반신 마비 역시 고장이지 부상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시시한 술자리 폭행 사건이 이 정도 관심을 받았다면 이미 과분한 관심을 받은 거였다. 이제 그 생명을 다하고 천천히 사라지면 될 사건에 기름을 부은 건 장애인 연대였다. 장애인 연대의 성명은 사건을 원점부터 다시 바라보게 만들기 충분했다.


/신체의 일부가 유기물이 아니라는 이유로 인간성을 박탈한다면, 유기규소화합물이 포함된 리얼돌은 인간으로 취급할 것인가? 인간의 존엄은 단백질에 기초하지 않는다!


언론은 수 십 종류의 비슷한 기사를 쏟아냈고, 방송에선 변호사와 시사평론가들이 모여 싸우기 시작했다. 장애인 연대의 성명은 케케묵은 자위 인형 논란까지 되살리며 사건을 키워 나갔다. 장애인 연대에선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인간의 신체 부상을 재물손괴라고 주장한 피의자의 더러운 인간성이야 말로 인간이 아니라는 증거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반대로 생태주의자를 중심으로 한 집단은 재물손괴 주장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의수와 의족은 인간의 신체 활동에 도움을 주는 도구일 뿐이라는 주장이었다.


/도구의 효율이 좋아졌다고 해서 도구를 신체로 인정할 수는 없다. 호미가 땅을 잘 파니 '땅파는손'으로 인정할 것인가? 신체는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에 한정한다.


양쪽의 첨예한 대립 가운데 각자 자신의 주장을 외쳤지만 모두 대동소이한 것뿐이었다. 의수와 인공 장기의 비율로 정하자는 주장, 인간의 영혼은 뇌에 존재하기에 뇌만이 진정한 인간의 신체라는 주장, 근골격은 교체 가능하지만 내장기관의 교체는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 모두가 자기 주장이 있었기에 누구도 설득되지 않았다.


시름에 빠진 법원이 판결을 늦추는 사이 출처를 알 수 없는 뉴스가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었다. 출처가 없는 뉴스는 허무맹랑하거나 의도적이거나 모욕적인 내용이었다. 진실을 알 수 없는 가짜 뉴스가 여론을 뒤흔들자, 기자들은 본질과 전혀 상관없는 자질구레한 사항만 부여잡고 검증과 팩트라는 칼날을 들이밀었다. 이를테면 B씨를 옹호하는 측에서 B씨가 3년 전에 봉사 활동을 했다는 기록을 들고 나오며 선량함을 주장하면 A씨를 옹호하는 측에선 봉사 활동 시간이 겨우 4시간뿐이었다며 보여주기 봉사라고 검증하는 식이였다.

취객 사이의 싸움에서 인간에 대한 정의까지 묻던 사건은 이제는 흐리멍덩한 검증과 형이상학적인 진실 다툼이 되어버렸다.


온 국민을 철학자로 만든 사건의 결과는 다른 사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관심의 한계효용은 빠르게 감소했고, 그 사이 자신의 죽은 반려견의 몸에 자신의 뇌를 이식하려고 시도한 남성이 체포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 사이 법원은 너무나 평범하고 명쾌하게 쌍방 폭행으로 사건을 종결지었다. A씨는 합의금으로 튼튼한 새 척추를 얻었고 B씨는 법원의 허가 아래 개명과 성형수술로 신분을 감췄다. 그 사이 우리 모두는 인간의 존엄에 반기를 든 새로운 범죄자에게 준엄한 여론의 철퇴를 내리고 있었다.

이전 05화 85022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