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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한 장 반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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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 Sep 11. 2024

엘릭서

[한 장 반]프로젝트8

By 한작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은 치료를 안 받으면 1년, 치료를 받아도 3년이라는 말씀이신 거죠?”


영훈의 말에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영훈은 감정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건지? 이제 아이가 태어나서 한창 행복할 시기인데 왜 지금 이런 일이 생긴 건지?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억울했다. 대상 없는 분노가 치밀며 억울하고 답답한 감정이 동시다발로 터져 나왔다. 이런 영훈을 가만히 보고 있던 의사가 입을 열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무슨 방법이 있나요?”


의사가 말문을 열자마자 영훈은 헐레벌떡 대꾸했다. 방법이 있다면 뭐라도 할 마음이었다.


“아직 확실한 게 아니고, 아직 확인할 게 많이 남은 단계입니다. 그래도 혹시 선생님께서 괜찮으시다면 임상실험을 자원하시면 어떨까 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네, 할게요. 하겠습니다!”


영훈은 의사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대답부터 했다. 이미 희망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상황이었다.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 영훈의 말을 듣고 의사는 마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처럼 단말기를 하나 가져와 영훈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병에 걸리는 건 인체에서 벌어지는 전쟁 같은 겁니다. 백혈구가 세균과 전투를 벌여서 지면 병에 걸리는 거고, 이기면 안 걸리는 거죠. 백신은 그 전투에 앞서 적과 비슷한 놈으로 훈련을 하는 거고요.”


잠시 말을 멈춘 의사가 영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희가 연구 중인 건 백혈구와 킬러T세포를 돕는 나노 로봇을 직접 투입하는 겁니다. 전쟁에 비유하면 전문 용병이 투입되는 거죠. 게다가 나노 로봇은 저희 의료진이 원하는 방향에 집중시킬 수 있어서 표적 치료까지 가능한 기술입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인가요?”


“문제라고 하기는 쫌 그렇고요, 뭐 따지자면 법이 문제지만요. 저희는 이제 출시해도 된다고 보는데 이런 저런 절차가 좀 남아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사소하게는 나노 로봇의 수명이 아직 저희가 생각한거랑 차이가 좀 있는 경우가 있긴 한데 큰 문제는 아니고요, 어차피 수명이 다 되면 핏속에서 다 녹아 사라지니까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각오를 다진 영훈은 의사의 설명에 따라 수십장 넘는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계약서는 버퍼링 걸린 웹 영상 플레이어처럼 계속 같은 말을 하는 느낌이었다. 중요 내용은 실험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것과 부작용이 있을 경우 병원에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준다는 것이었다. 나머지는 봐도 무슨 말인지 알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실험은 수술이나 마취 없이 주사 한 방으로 끝이었다. 의사는 100mL 주사 용액 안에 수천억 개의 나노 로봇이 활동하고 있고 이걸 체내에 투입하는 것으로 끝이라고 말했다. 너무나 의심스러웠지만 다음 날부터 하루가 다르게 몸이 좋아지는 걸 느꼈다. 자신만 느낀 게 아니었다. 의사 역시 검사를 할 때마다 놀랄 정도로 암이 사라지고 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의사가 최종적으로 암이 모두 사라졌다고 말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2주였다.


계약서에 따라 완치가 된 이후에도 영훈은 계속 병원에 남아 부작용에 대비했다. 몸은 더할 나위 없이 개운했고 평생 경험하지 못할 정도로 활기가 넘쳤다. 영훈은 자신의 행운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8주의 시간이 흘렀을 때 영훈은 자신의 몸에 변화가 생긴 걸 눈치챘다. 원래 있던 상처. 어릴 때 미끄럼틀에서 떨어져 부러진 어깨의 수술 자국이 완벽하게 사라져버렸다. 영훈의 말을 들은 의사는 놀라워하면서 나노 로봇의 부작용이라고 판단했다. 프로그래밍된 완벽한 신체 기준에 미달되는 피부를 복원한 것이라고 예측했다. 의사의 말대로 영훈의 피부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생기가 넘치고 있었다. 모든 게 의사가 설명한대로 흘러갔지만 단 하나 나노 로봇의 활동 기간 만큼은 예측하지 못했다. 이미 동작을 멈췄어야 할 나노 로봇은 여전히 영훈의 몸속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퇴원한 영훈은 새로운 삶을 받은 기분이었다. 기분뿐만 아니라 실제로 온몸에 활력이 넘쳤다. 모든 게 정상이라고 생각했지만 퇴원하고 2주 정도가 지나자 자신의 몸이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 알게 된 건 요리를 하다 칼에 베였을 때였다. 손등을 스친 칼날에 살이 찢어지며 피가 고이던 것이 무서운 속도로 아물기 시작했다. 너무나 이질적인 장면에 충격을 받은 영훈은 곧장 의사를 찾았다. 의사는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아직 활동 죽인 나노 로봇이 치료를 한 거라며 영훈을 안심시켰다. 


오히려 사고를 당해 즉사하지 않는 이상 불사의 몸이 된거라며 의사는 흥분해 있었다. 진시황이 꿈으로만 여겼던 불로불사에 성공한 거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도 영훈은 꺼림칙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영훈의 이런 꺼림직한 느낌은 얼마 뒤 현실이 되었다. 처음엔 가벼운 복통이었고 다음은 극심한 호흡곤란이었다. 영훈을 검사한 의사는 여전히 별거 아닌 문제라고 설명했다. 체내 나노 로봇이 손상된 부분이나 분해할 세균이 없다보니 내부 장기를 공격한 것 같다는 말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도 매우 위험한 상태로 들리건만, 별거 아니라는 의사의 말을 들으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의사는 기본적으로 나노 로봇을 정지시킬 방법은 없지만 강력한 전기충격을 써 보면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가능하다면 뭐든 또 해야 할 처지였다. 영훈은 당연히 수락했고 또 수십장의 계약서에 사인을 해야 했다.


전기 충격은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충격이었다. 큰 쇠망치로 온몸을 두들겨 펴는 느낌과 함게 온 몸의 근육이 제각각 꿈틀거리는 느낌이었다. 끔찍한 고통을 견뎌냈지만 검사 뒤 의사의 말은 영훈을 절망에 빠트렸다. 나노 로봇은 건재했고 오히려 전기 충격을 받은 몸을 고치기 위해 더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었다.

영훈은 이 나노 로봇이 왜 아직도 활동하는지 물었다.


“그게, 지금 이유가 정확하지 않은데, 제 생각엔 나노 로봇들이 인체의 미세 전류에서 에너지를 받는 게 아닐까 생각되네요. 지금 상황에선 마땅히 정지시킬 수단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영훈의 말에 의사는 곤란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나노 로봇이 정상 장기를 공격하지 못하게 하려면 싸울 상대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좀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 좀 해 주세요. 네!”


“지금 몸은 좀 어떠세요, 아까 전보다 훨씬 편하지 않으세요? 그런 겁니다. 선생님 몸에 병균이나 상처가 있다면 나노 로봇이 치료를 하겠지요. 그런 상황입니다. 계속 싸울 상대가 있다면 큰 문제가 없습니다.”


영훈은 당장 의사의 멱살을 잡고 흔들고 싶었다. 당최 어떤 일이 생겨야 큰 일이라고 말하는지 묻고 싶을 지경이었다. 영훈의 혼란스러운 상황과 달리 별일 아니라는 의사는 급한대로 살모넬라 균을 몸에 넣자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의사의 권유를 받고 시술을 받은 영훈은 곧 급격한 복통과 설사가 터졌다. 이런 영훈을 보며 의사는 덤덤하게 말했다.


“지금은 조금 괴롭지만 명현현상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제 나노 로봇이 치료를 시작하면 금방 편해지실 겁니다.”


의사의 표정을 보며 확실히 알게 됐다. 영훈은 앞으로 계속 병에 걸려야 살 수 있게 됐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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