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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한 장 반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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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 Sep 11. 2024

플라이스토세

[한 장 반]프로젝트10

By 한작



도전적인 일이지만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안전한 귀가를 보장할 수는 없지만 성공 시 영광과 명예를 얻을 수 있습니다.

- TW과학 재단


어디를 가나 이 광고 이야기뿐이다. 1914년 어니스트 새클턴의 남극 탐험에서 따온 광고 문구는 어딘가 가슴을 설레게 하는 지점이 있었다. 대다수가 NIT(negative income tax)를 받아 사는 세상이니 도전이나 모험 같은 단어가 이슈가 되는 게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걸고 사람을 모았는데도 수십만 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TW과학 재단에서 구하는 사람은 시간여행자였다. 이게 가능한가? 싶은 의문도 의문이었었지만 어디로 가게 될지, 언제로 가게 될지 모른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운이 좋아 일 년 전이나, 한 달 뒤쯤으로 간다면 잭팟이 터지는 거지만 100년 전 남극이나 태평양 한가운데 떨어진다면 그대로 목숨이 날아가는 문제였다. 게다가 이 모험은 편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이 정신 나간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어릴 땐 나도 뭔가 큰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호기심도 많았고 머리 좋다는 소리도 꽤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나 역시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됐고, 재능과 한계도 딱 평균 수준임을 알게 됐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보다 특별하고 싶은 욕망이 여전하다는 것이었다. 시간 여행은 특별하지 않은 내가 특별해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오만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10명의 지원자가 선택받았다. 선발된 10명의 여행자는 각기 다른 에너지양을 가진 기구에 배치받았다. 이론상 에너지가 적을수록 짧은 간격의 시공간에 가게 될 것이라고 설명을 들었다. 예상되는 간격은 최소 일주일부터 최대 세 달이었다. 간격은 안정적이나 위치를 특정할 수 없어 혹독한 기후에 대비한 여벌의 옷과 비상 도구를 챙기고 시간 여행 장치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관을 연상시키는 장치는 생각보다 아늑했다. 


훈련받은 대로 심호흡을 하며 준비를 마쳤다. 괜찮다는 사인을 보내자 곧 팔다리를 찢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곧 잡자 당기는 느낌과 함께 앞뒤로 눌러 압착하는 느낌이 동시에 들며 뇌에 물이 차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몽롱한 상태로 온몸이 부서지고 으깨지는 느낌과 함께 의식이 날아가는 걸 느꼈다.


온몸이 자석에 이끌려 땅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눈이 떠졌다. 뺨에 닿는 풀을 느끼는 순간 일단 성공했다는 걸 확신했다. 짜릿한 희열이 느껴졌다. 이제 시간 여행에 성공한 특별한 인간이라는 자신감이 넘쳤다. 아직 납덩이같이 무거운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봤다. 아주 넓은 초원의 한 복판이었다. 


가장 먼저 GPS로 꺼내 위치를 확인했지만 이동하는 도중 고장이 난 것인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방법이 없었다. 교육받은 대로 해를 기준으로 방위를 파악한 뒤 서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걷는 동안 성공했다는 기쁨 중간중간 의심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150억 명이 넘는 인류는 어디에나 살고 있었다. 어디든 살고 있는 인류인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광공해로 붉게 물든 밤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뭔가 대단히 잘못됐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해의 길이로 봤을 때 대략 5월이나 6월 정도라고 예상되었지만 날씨는 어울리지 않게 쌀쌀했다. 위도가 높은 곳이라는 가정을 세웠지만 북극성의 운동이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점점 커지던 불안감은 우연히 만난 사람들을 보고 현실이 되었다.


160센티미터가 조금 넘는 작은 키, 단단하고 넓은 어깨. 코뿔소 같은 등 근육. 그리고 가죽을 얼기설기 엮은 옷차림과 나무를 깎아 만든 창을 보는 순간 어지러움을 느꼈다. 처음엔 제발 이곳이 고립 인류의 보호 구역 정도이길 바랐지만 그들의 모습은 교과서에 실린 네안데르탈인과 너무나 흡사했다.


하늘이 무너지고 세상이 깜깜해지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알게 됐다. 편도 시간여행을 와서 눈앞에 네안데르탈인이 서 있다면 누구라도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둥글고 큰 코와 붉은 머리칼은 얼핏 인류와 같았지만 작은 키와 탄탄한 몸, 큰 턱은 확연히 구분되게 달랐다. 인류의 과학 기술은 확실히 놀라웠다. 뼈 화석만 보고 이렇게 정확하게 네안데르탈인의 외모를 예측했을 줄 꿈에도 몰랐다. 복원한 사람 자신도 실제 네안데르탈인을 보면 깜짝 놀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네안데르탈인 무리는 호의적이었다. 자신들과 외모가 다른 나에게 호기심을 가졌고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다. 알려진 것과 달리 무리는 꽤나 정교한 언어를 가진 것으로 보였다. 계속 말을 걸며 무언가를 알려주려 했고 위험과 위기를 구분해 알렸다. 돌과 뼈를 이용해 도구를 만들었고 과일과 야채, 고기를 먹었다. 그들의 행동과 날씨로 봐서 난 지금이 홀로세 초기 혹은 플라이스토세 말기쯤이라고 판단했다. 예상이 맞다면 위치는 유럽 중부 어디쯤으로 생각됐다.




이들과 함께 생활한 지 10년이 흘렀다. 그 사이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았다. 마치 개와 10년을 살아도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간단한 요구와 기분 정도를 파악하는 정도였다. 현대 문명의 지식이라는 것 역시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기껏해야 불을 피우거나 돌을 갈아 무기로 만드는 것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기술이었다. 이미 다 할 줄 아는 것들이었고 오히려 그들이 사슴 심줄로 활을 만들거나 투석기를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놀라고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기술은 기껏해야 불로 익혀 만드는 요리와 어설픈 도기 제작 정도였다. 그것조차 제대로 배운 것이 아니기에 그저 고기에 양념을 묻히거나 흙을 굽는 수준이었다.


그러는 사이 이들과 함께 지낸 지 20년이 흘렀다. 그들은 호모 사피엔스에 비해 단명하였기에 나는 무리에서 가장 연장자가 되었다. 누구보다 오래 사는 나를 보고 이들은 경외감을 가졌고 난 무리에서 익힌 기술과 현대의 지식을 합쳐 몸짓 발짓으로 전달하는 비전의 전수자가 되었다.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자 생각도 못한 곤란한 상황이 생겼다. 언제부터인지 내 주변에서 계속 수발을 드는 젊은 여인. 말이 통하지 않아도 무리의 뜻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내 후손을 원했고 내 후대의 비전 전수자를 원했다. 그들은 내 기술의 원천이 혈통으로 이어진다고 믿는 듯했다. 


나 역시 곧 쉰 살이 될 나이였다. 충분히 현실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마음에 남았던 걸쇠 하나를 풀 시기였다. 난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자연스럽게 아이를 얻게 되었다.


태어난 아이는 다행스럽게도 내 외모를 물려받았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 동굴 벽에 낙서하기를 즐기는 아이. 그리고 나 외에 유일하게 호모 사피엔스의 특성을 가진 아이는 자라면서 나와 그들의 언어를 통역해 주기 시작했다. 위암으로 추측되는 병으로 천천히 죽어가는 나의 유일한 말동무였다.


기력이 떨어지는 전에 아이에게 알려줄 것들이 많았다. 언젠가 인류의 시작이라고 불리게 될 아이. 그 아이에게 알고 있는 모든 걸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아이를 불러 미처 알려주지 못한 것들을 알려주기 위해 불렀다. 


“아담, 이쪽으로 좀 와 보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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