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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한 장 반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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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 Sep 11. 2024

칼갈이

[한 장 반]프로젝트11

By 이작


구두. 구두 수선. 도장. 열쇠. 

유종은 담벼락에 기대서 몇 걸음 앞 구두방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의미없이 글자를 따라가고 있다. 구두. 구두 수선. 도장. 열쇠. 구두굽. 디지털 보조키. 

중학교 입학식 때 구두방에서 아버지와 짜장면을 시켜먹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저 먼지 속에서 먹는 짜장면이 뭐 그렇게 맛있었는지. 


처음에는 샤시로 된 구두방이었다. 언젠가 거리 미화 사업으로 구두방이 둥근 철제 박스로 바뀌면서 써붙인 글씨들도 지금처럼 깔끔한 서체로 시트지를 붙였다. 그러다가 아직도 손글씨로 남아있는 표지판에 눈이 멈춘다. 

칼. 칼 갈아요.


어느 공사장에서 주워왔는지 A자 모양의 노란 표지판에 박스를 뜯어 붙인 입간판이다. 가운데 칼이라고 크게 쓰여있다. 고르지 않은 선으로 글씨 테두리를 그리고 그 안을 매직으로 꼼꼼히 칠했다. ‘칼' 글자에 빨간 매직으로 동그라미를 둘렀다.. 동그라미를 따라 둥글게 칼 갈아요, 칼 갈아요. 아버지 딴에는 나름 애쓴 디자인이다. 비를 막으려했는지 투명 박스테이프를 틈없이 붙였다. 헛웃음이 나왔다. 간판집에 하나 맞추지 그 돈 다 어따 쓴다고. 노인네가 하여간. 쯧. 속으로 혀를 차는데 누가 가까이 온다.


“저, 여기 사장님 어디 가셨어요?"

장바구니를 들고있는 아줌마가 구두방 안을 기웃거린다. 유종이 멀뚱 서서 답이 없자, 지나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 머쓱했는지 들리게 혼잣말을 한다. 

“어디 멀리 가셨을라나. 칼 갈아야 하는데.”


구두방임에도 불구하고 유종이 맡아 문을 연 한 달간 구두 손님은 세 명 뿐이었다. 칼 가는 손님은 꽤 있었다. '꽤'라고해도 사실 열 명 남짓이었고, 다들 오랜만에 왔다는 손님들이었다. 아버지 소식을 모르는 것을 보니 한 번 갈면 몇 개월은 안 들려도 될만큼 날을 잘 세웠던 것이다. 

아버지는 구두닦는 것보다 칼가는 것을 더 자신있어 했다. 하교길에 들른 유종에게 구두닦는 것은 안 가르쳐도 칼가는 것은 종종 가르쳤었다. 어린 아들이 도구를 다루는 것이 위험했을텐데도 '이건 배워두면 쓸만하다'며 가르쳤고 유종도 날 세우는 것이 재미있기도 했었다. 


유종은 서둘러 담배를 밟아 껐다. 

“칼 갈러 오셨어요? 들어오세요.”

유종은 연마기를 무릎 앞에 끌어당기면서 머뭇거리는 아줌마에게 말을 건냈다.

“아들이에요. 아버지가 좀 편찮으셔서 제가 잠깐.”

“아. 아드님이시구나! 그나저나 어째요. 어디 많이 안 좋으신가? 정정해보이셨는데. 사장님이 칼을 잘 가셨거든. 달인이야 달인. 동네에서 유명하시다니까.”

“칼 좀 보여주세요. 저도 아버지한테 배워서 잘 갈아요.”


유종은 칼을 받아들고는 날을 엄지로 쓸어본다. 이 아줌마 역시 아버지 소식을 모른다. 단골이라면서 어째서 아무도 모르는 것인가. 아버지는 한달 전 구두방 바로 앞에서 오토바이에 치여 그자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줌마가 간이 의자에 앉아있는 바로 저 보도블럭 자리다.


한달 전 늦은 밤. 아버지는 구두방 문을 나오자 마자 오토바이에 치여 그자리에서 숨을 거뒀다고 했다. 배달이 많았던 오토바이가 급한 마음에 인도로 올라섰고, 급한 마음에 속도를 올렸고, 하필이면 아버지가 그때 구두방 밖을 나왔던 것이다. 경찰은 그렇게 말했다. 해가 지면 일찍 집에 들어갈 것이지 손님도 없었을텐데 이 노인네는 그 시간까지 뭐 하고 있었단 말인가. 심야라서 목격자도 없었다는데, 그 심야에 오토바이는 뭐가 급해 인도까지 올라온 것일까. 


칼을 가는 10여분 내내 아줌마의 수다가 끊이지 않는다. 택시 잘못 타서 수다스러운 기사를 만난 것 같았다. 아니 더 심했다. 택시는 내릴 수라도 있지만, 주인이 구두방을 나갈 수는 없었다. 


유종은 아버지의 구두방을 이어서 할 생각은 단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 유종은 바벨전자에서 최연소로 팀장을 단 유능한 인재였다. 꼼수를 쓰는 성격도 아니었지만, 원칙만을 고수하는 편도 아니었다. 대단한 뒷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든든한 라인을 잡은 것도 아니었기에 적당히 정의롭고 적당히 비겁했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그때는 왜 참지 못했는지. 딱 그 한 번이었다. 회의를 하는 중에 문서의 숫자가 이상해 확인차 한 번 확인했던 것 뿐이었다. 묻기는 담당자한테 물었는데, 대답은 그 담당자의 팀장이 하기에 그것이 이상해 한 번 더 묻기는 했다. 돌아온 대답이 장황하고 저녁에 술이나 한 잔 하면서 설명하겠다는 그 팀장의 말에, 유종은 자기가 정리할 건이 아니라고 노트북을 덮었을 뿐이었다. 그 뒤로는 순식간이었다. 목소리가 높아졌다. 갑자기 전무가 자신을 불러 소리를 지르고, 유종도 소리를 질렀다. 자신의 사원증이 더 이상 출입문을 열지 못하게 되는 때 까지가 한 달이 걸렸는지, 일주일이 걸렸는지도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회사 로비에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판넬을 들고 서 있기를 며칠째인가,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15년 만에 영안실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대학에 합격한 겨울, 군 입대 전날 김치찌개에 소주 한 병을 올려놓은 술상 앞에서 미안하다만 반복하던 아버지였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딱히 부고를 알릴 친척도 친구도 없었다. 그렇게 근조화환 하나 없이 아버지를 보냈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도, 회사에 대한 분노도 그렇게 끝이었다.


유종이 별 대꾸 없이 칼만 갈자, 아줌마가 심심했는지 가까이 있는 신문으로 손을 내밀었다. 유종은 얼른 먼저 손을 뻗어 신문을 낚아챘다. 아줌마가 놀래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자 유종은 칼로 신문지를 그으며 말했다.

“이거 보세요. 스윽 잘리죠? 한동안은 칼 갈 일 없을 거예요.”

“어머나! 나는 홈쇼핑에서나 봤지 부엌칼로 종이 자르는 건 첨 봤네. 어째 아드님 실력이 더 나은 것 같애. 호호호.”


아줌마가 나가자, 유종은 칼날에 잘린 신문지를 정리했다. 아줌마가 보아서는 안될 신문이었다. 아니 보았다고 하더라도 알아차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칼에 잘린 1면에는 바벨전자 회장의 불법행위가 드러났다는 헤드라인과 함께 상세한 기사가 적혀있다. 그 기사들은 TV뉴스에도, 다른 언론의 신문에도 없는 뉴스였다. 아니, 똑같은 XX일보에도 이런 뉴스는 없다. 오직 유종만 받아보는 신문이었다.

공포가 밀려왔다. 자신에게만 배달되는 이 신문에 연속으로 바벨전자 이야기가 다뤄지는 것을 보고는 이런 질 나쁜 장난만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이 신문이 자신에게 오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신문은 이 구두방에 배달되는 것이었다.


이 신문은 아버지가 구독했던 신문이었다. 누가 아버지에게 이런 비싼 장난을 쳤는가. 아니 장난이 아닐 것이다. 장난이 아니라면 이 모든 것이 대체 무슨 일인가. 배달되는 신문 모든 면을 꼼꼼히 뜯어 읽으면서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애썼다. 찾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때 독특한 패턴이 눈에 들어왔다. 1면 기사부터 차근차근 읽으면, 연관 기사들이 3면, 4면에 이어지고, 기사를 따라 가다보면, 결국 끝에는 같은 광고에서 멈추게 된다. 몇 번의 검증 끝에 확신을 가진 유종은 광고의 안내번호에 전화를 걸어보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오늘이었다.

망설임 끝에 전화를 걸자 신호음이 한 번 가기도 전에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아, 천유종 님. 이제야 전화를 주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조용한 한정식 집. 유종은 잔뜩 긴장한 채 앞에 앉은 검은 정장의 사내를 살폈다. 의문스러운 전화 통화를 마찬 유종은 만나서 설명하겠다는 말에 약속을 잡고 한정식집까지 왔다. 그래도 나름 현명하게 장소는 자신이 정했다는 것으로 막연한 두려움을 참아내고 있었다. 온갖 상상을 다하다가 나온 약속자리.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놀라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유종은 물컵을 놓치고 말았다. 


“천만근 프로님. 그러니까 천유종 님의 아버지께서는 저희 회사의 수석 킬러였습니다.”

검은 정장은 유종이 놀라건 말건 말을 이었다. 유종의 아버지가 킬러였다고 했다. 검은 정장이 소속된 곳은 일종의 비밀결사대 같은 곳인데, 역사가 오래되었다고 했다. 대한민국에 뿌리깊은 악당들이 있고, 법은 그들을 막지 못한다고 했다. 자신들은 그 악당들을 막아왔고, 여러 일을 해오고 있다고.

아버지는 조직에서도 실력이 가장 좋았단다. 그래서 그 악당들이 아버지를 '작업'했다고 했다. 검은 정장의 조직은 아버지 '천만근 프로'가 미리 준비해둔 유언대로, 유종이 그 구두방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처리했다고 했다. 그리고 악당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준비했고, 유종이 이것들을 깨닫고 먼저 연락하기를 기다렸다고 했다.


유종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왜 노인네가 그 오랜 세월동안 구두방을 고집했는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어떻게 그렇게 회를 잘 떴는지. 엄마가 죽었을 때도 왜 구두방을 나갔는지. 만나지 못했던 15년 동안 아버지는 어떻게 자신의 핸드폰으로 때가 되면 안부를 물어왔는지. 왜 아무도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이 없었는지. 아버지를 죽인 그 오토바이 배달 라이더가 왜 경찰서에 자수해놓고 의심스럽게 투신을 했는지. 모든 궁금증이 한꺼번에 해결되었다. 


검은 정장이 조용히 티슈를 건네줄 때까지 유종은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도 깨닫지 못했다. 

“모든 것이 갑작스러우실 겁니다. 하지만, 다음 타깃이 다음 달에 미국 출장을 핑계로 나라를 떠납니다. 그렇게 되면 영영 놓치게 되지요. 아, 다음 타깃은 바로 …”

유종이 잠긴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 바벨전자 박 회장.”

“맞습니다. 바벨 박 회장. 사실 천유종님이 밝혀내신 건이 바벨의 뇌관이 될겁니다. 비록 회사에서는 해직되고 말았지만, 해결방법은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

"내일까지는 답을 주셔야 합니다. 결심이 서시면 같은 번호로 연락부탁드립니다. 제안에 응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내일이 지나면 번호는 사라지고 잘 아시겠지만 모든 것은 비밀에 부쳐질겁니다. 저희는 말씀드린 모든 것을 부인할 겁니다. 오늘 만남까지도."

"....."

"천만근 프로님의 희생에 대한 작은 보답으로 규정을 어겨가며 말씀드린 겁니다. 그럼.”

검은 정장은 유종을 혼자 남겨두고 자리를 떠났다. 


“어때? 되겠어?”

검은 정장, 현태가 차에 오르자 마자 뒷자리에 있는 민석이 물었다. 현태가 가볍게 엄지를 들었다.

“아 되지요, 됩니다. 한작가가 스토리 짜면서 자신있어 하더니 그대로 먹혔네요. 크 천유종이 표정을 직접 보셨어야 하는데. 지가 무슨 독립운동 하는 줄 알았다니까요. 흐흐.”

“내일 전화오면 연습 좀 시키고. 이번엔 대림동 박사장한테 보내.”

“네!”

“서초동에는 가이드 미리 잡으라고 해. '갑작스런 해고에 앙심을 품은 직원의 계획적 살인시도'.”


운전석의 현태가 시동을 켜며 말했다.

“작업하면서도 매번 신기해요. 15년 인연 끊은 아빠가 알고보니 킬러. 이런 걸 어떻게 믿죠?".

“그걸 믿게 끔 짠 것이 이야기지. 들으면 빠져나갈 수 없고 매몰되는 것. 아, 장호연이는 어떻게 됐지?”

“얘가 특수부대 출신이라 피지컬이 좀 되거든요. 파양시 철거촌 쪽에 보내려고 하고요. 그건 이 작가가 첩보물로 스토리 짜 본다고 했어요.”

“자 오케. 우리 챕터는 끝냈으니까 시원하게 한 잔 하자고. 한 작가 연락했지? 주인공 빠뜨리면 안 되지."

"예, 쉪!"

시원하게 대답한 현태가 엑셀도 시원하게 밟았다. 검은 정장이 탄 검은 차량이 멀어질 때까지도 한정식집에 홀로 남은 유종은 결연한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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