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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한 장 반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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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 Sep 1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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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 반]프로젝트13

By 이작


발명이란 필요한 사람이 하기 마련이었다. 튜너를 발명한 해영 역시 그랬다. 튜너의 첫 임상 실험도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자신의 몸에 직접하고 말았다.


해영은 목소리에 콤플렉스가 컸다. 돌 전후엔 배우될 얼굴이라는 말도 들었으나, 말문이 트이면서부터는 대접이 달라졌다. 긁는 듯한 목소리가 유아의 귀여움을 다 깎아 먹었다. 어렸을 때부터 쉰 목소리라 실제 나이보다 훨씬 더 윗 나이의 대접을 받았고, 당연히 어리광도 받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아이는 빨리 커버렸다.


크면 목소리가 바뀌지 않을까 하고 내심 변성기를 좀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해영의 기대와는 달리 이젠 쇳소리가 날 지경이었다. 학년이 바뀔 때 마다 말을 안 하니 내성적이어 보이고, 누가 뭘 물어도 고개로 대신하니 친구도 얼마 없었다. 일어나서 국어책을 읽는 것보다 칠판에 나가서 수학을 푸는 것이 더 나았고, 그렇게 이과를 졸업했다.


회사를 다니게 되었을 때는 오히려 상황이 나았다. 많은 업무를 메일과 메신저로 하다 보니 되려 호감을 나타내는 사람도 생길 지경이었다. 물론 여전히 회의는 껄끄러웠고, 회식에서 가끔 이어지는 노래방은 견디기 어려웠다.


해영은 오랜 연구 끝에 사람 목소리를 바꿔주는 ‘튜너'를 개발했다. 튜너를 사용하면 목소리의 톤을 조정해 여러 소리를 낼 수 있었다. 처음 개발기획안을 냈을 때, 연구소의 모든 사람들이 제품의 성능은 의심하지 않았다.

‘해영이 튜너를 만든다면, 성능은 무조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제품의 성공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팔릴 것인가? 자기 목에 기계를 달고 싶을 만큼 자기 목소리에 불만이 있거나 목소리를 바꾸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그렇게 해영의 회사에서 시제품 ‘튜-너 1.0 (Tuuner 1)’이 출시되었다.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제품은 많은 관심을 끌었다. 처음은 성대모사였다. 튜너를 삽입한 일반 사람이 개그맨보다 더 성대모사를 잘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선만 끌고 사라지는 반짝 발명품이 될 줄 알았지만, 사람들은 튜너의 활용법을 금세 익혔다.


사람마다 목소리는 다 달랐고, 튜너가 목소리 자체를 변조 한다기보다 톤을 바꿔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튜너 1번은 누군가에게는 중후한 목소리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소 느끼한 목소리로 바꾸어 주었다.

튜너의 목소리는 1에서 10까지 번호뿐이었지만 사람들은 각 목소리에 다른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에 맞는 용도를 찾았다. 코맹맹이 소리가 나는 10번을 누가 쓸까 했지만, 애교가 가득한 목소리는 의외로 많이 사용되곤 했다. 


갑자기 결혼식 등의 사회를 보게 되었을 때, 파트너사에게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투자를 이끌어내야 할 때, 상가집에서 친구를 위로해야 할 때, 연인과 와인을 한 잔 마시면서 다음 장소를 은근히 제안해야 할 때. 상황마다 필요한 목소리는 달랐고, 튜너는 그런 사람들에게, 그 모든 상황에 아주 어울리는 목소리를 제공해 주었다. 


튜너의 원리는 간단했는데, 성대 가까이 자리한 튜너는 전기 자극으로 성대를 자극해 목소리를 바꿔주는 것이었다. 자극을 받은 목 근육의 수축과 이완 정도에 따라 목소리 톤이 바뀌는 것이었다.


값도 저렴했고, 장착도 간단했다. 수술은 커녕, 시술도 아니고 알약 삼키는 정도였다. 금속으로 된 튜너를 삼키는 듯 목에 넘기면, 목 바깥에 커다란 자석이 튜너의 위치를 잡아주고, 정확히 자리하면 튜너의 발톱(이라고 부르는 고정쇠)이 성대 가까이에 자리하는 것이다. 


그렇게 1세대 튜너는 불티나게 팔렸고, 해영은 2세대 튜너를 개발할 충분한 돈을 벌었다. 삼켜서 목 안에 붙이는 것이 아니라 귀 밑에 붙이는 형태였다. 1세대의 단점을 보안한 것이었다. 2세대 튜너의 가격이 1세대 보다 3배쯤 비싸게 출시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은 여전히 1세대 튜너를 사랑했다.


1세대 튜너에는 사소한 단점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잘 때마다 턱 밑에 무선충전기를 대고 자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자파 위험 등이 지적되었지만, 잠들 때까지 핸드폰을 하던 사람들한테는 큰 단점이 아니었다.


또 다른 단점은, 목에 심은 튜너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고개를 옆으로 꺾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10가지 모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꺾어야 했다. 그래서 사무실이건 대중교통에서건 ‘아~’소리를 내면서 원하는 목소리가 나올 때까지,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목을 꺾어댔다. 


튜너를 심지 않은 사람들한테는 못볼 꼴이었고, 이해도 못했지만 많은 사람은 후천적 틱장애를 마다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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