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 반]프로젝트14
By 한작
“씨발, 개좆같은 새끼….”
동석은 습관처럼 욕이 튀어나왔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욕이 튀어나올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냥 자신의 차 앞에 트럭이 끼어 들자 습관적으로 욕이 튀어 나온 거였다. 동석의 욕설에 옆자리에 앉은 아내는 남편 눈치를 살피며 혹시 이 짜증이 자신에게 번지지 않을까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동석은 그런 아내가 또 못마땅했다. 자신이 아내에게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괜히 주눅 들어 있는 모습이 보기 싫었다. 화창한 주말 오전의 차 안은 동석의 욕 한마디에 찢어질 듯 팽팽하게 긴장됐다.
“거, 일 좆같이 하네. 진짜! 야이 새끼야, 옆에 잘 붙어 있으라고. 씨발! 좀!”
일터에서도 동석은 욕을 달고 살았다. 동석의 욕설은 지난 주부터 일을 배우기 시작한 신입에게도 용서가 없었다. 동석 역시 현장 조공으로 시작해 일을 배운 처지였다. 남들 같으면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는 신입에게 동정심 때문에라도 잘해주겠 건만 동석은 용서가 없었다.
정작 자신은 마음 좋은 선배들 덕에 험한 욕을 들은 기억이 없지만 그 기억을 자신이 일을 잘해서 욕을 안 먹은 거라고 생각하는 동석이었다. 그렇게 나이를 먹다 보니 동석 주변엔 사람이 없었다. 유일하게 마음이 맞는 사람은 자신과 팀으로 일하는 타일 기술자 윤 씨뿐이었다.
타일공 윤 씨가 기술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동석이 함께 일하는 이유는 인맥 탓이었다. 동석은 오야지의 능력은 일감을 물어오는 것이라고 믿었다. ‘오야지는 좆을 까던 똥꼬를 빨던 데리고 다니는 식구들 손에 한 달에 스무 대가리는 맞춰줘야 오야지다’라는 게 동석의 신념이었다.
그런 면에서 윤 씨는 꼬박꼬박 작업을 따 왔고 적어도 식구끼리는 똥띠기라고 부르는 인건비 착복도 하지 않았다. 윤 씨도 눈치 빠른 동석을 마음에 들어 해서 함께 일한 지 벌써 십 년이 넘은 사이였다. 그런 윤 씨가 동석에게 함께 저녁을 먹자고 말했다. 무슨 할 말이 있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날씨 참 씨발, 뒤지게 덥네!”
삼겹살 집에 앉은 동석이 혼잣말로 욕을 중얼거리며 자리에 앉자, 윤 씨가 물을 따르며 시시콜콜한 말을 늘어 놓았다.
“애는 잘 크지? 제수씨는 요즘도 살림만 해?”
“일 할 깜냥이나 있어야지요. 여전히 집에서 놀아요. 나가서 일 할 생각은 없는 거 같고 그냥 사고나 안 치고 살림이나 해야지 뭐.”
“그건 그렇고 말이야, 동석아. 우리 다다음 달부터 현장 큰 거 하나 들어가게 됐다. 너도 알지? 강남에 지금 올리고 있는 거기 사옥. 그거 한, 세 달 하자.”
“형님 신축이나 빌딩 싫어하잖아. 칸띠기 하고, 잔소리 많다고.”
“싫다고 굶냐? 요즘 일이 없어. 이것도 겨우 잡은 거야.”
“오야지가 하자면 하는 거지. 합시다 그거.”
차로 한시간이 넘게 걸리는 현장으로 출근하면서 동석은 짜증이 늘었다. 별거 아닌 일로 아내에게 소리치는 일이 많아졌고, 이제 겨우 여섯 살 된 아들이 동석을 슬슬 피하는 느낌이 드는 것도 불쾌했다. 그런 중에 간단히 먹고 나갈 미숫가루가 덩어리 진 것을 발견하자 짜증이 폭발해 소리쳤다.
“씨발, 넌 이것도 못하냐? 그리고 집에서 하루 종일 뭐 해? 애 가정교육을 어떻게 시켰기에 아버지를 보고 애가 피해?”
동석의 고함에 아내는 깜짝 놀라 움츠러들었다. 그 모습을 보자 몸을 둥글게 말고 구석으로 숨는 벌레는 보는 것과 같은 혐오감이 일었다. ‘씨발’ 동석은 낮게 중얼거리며 일터로 향했다.
욕실 타일 작업은 꼭대기 층부터 시작했다. 대한민국 최고 높이라는 말 그대로 구름에 쌓여 밖이 보이지도 않았다. 동석은 평소대로 연장을 챙기고 작업을 시작했다. 10년을 넘게 손발을 맞춘 사이 답게 윤 씨와 동석은 서로 대화 한마디 없이도 작업을 진행했다. 한참을 작업하다 슬슬 배가 고파와 시간을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었다. 동석은 윤 씨를 보고 말했다.
“형님, 식사 가시죠.”
동석의 말에 윤 씨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동석의 얼굴을 바라봤다. 황당하다는 얼굴을 한 윤 씨가 입을 열자 도무지 한국말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이상한 말이 튀어나왔다.
“너쓏지금듦?뺤뭐붏곴라고린ㅄ곝했?”
동석은 조금 전 윤 씨와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처음엔 자기를 놀리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진지한 표정을 보면 그런 건 아닌 듯했다. 동석은 뭔 소리를 하는 거냐며 윤 씨를 타박했지만, 동훈의 말을 들은 윤 씨는 알 수 없는 말만 지껄이더니 느닷없이 버럭 화를 냈다.
그런 윤 씨를 보며 동석은 혼란을 느꼈다. 자신의 귀가 문제인지 윤 씨의 혓바닥이 문제인지 구분할 수 없었고, 이럴 때도 이비인후과를 가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윤씨가 버럭버럭 화를 내며 다가오는 순간 동석은 ‘어! 어!’하며 손짓으로 윤씨를 가로막았다. 윤씨의 발에 걸린 전선은 사다리를 건드리며 쓰러지는 모습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형님, 발! 발!’
동석이 소리쳤지만 윤씨는 여전히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윤씨의 머리와 사다리가 부딪히며 얇은 철판이 울리는 소리가 울렸다. 이마부터 광대 아래까지 찢어진 윤씨의 얼굴에서 피가 콸콸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마의 얇은 살갗에서 어떻게 저렇게 많은 피가 날 수 있지? 윤씨의 비명이 들리자 동석은 정신이 들었다.
“형님! 형님! 괜찮아요!”
동석이 물었지만 윤씨는 대답 대신 얼굴을 부여잡고 드러누워 버렸다. 마음이 급한 동석은 다시 욕부터 튀어 나왔다.
“씨발. 이거 좆 됐네. 일일구! 일일구! 빨리 씨발.”
동석은 휴대전화를 꺼내 비상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상대가 전화를 받자 동석은 습관처럼 욕을 터져나왔다.
“좆됐어요. 씨발. 지금 씨발. 사람이 존나 얼굴을 깠는데, 아 씨바 피가 존나….”
이 급박한 상황에 전화 건너 상대방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다. ‘뺤신고쓏듦꺎뺤자앀분>꺙?붏쓏?<??천천듊햡ㄱ세요’ 동석은 ‘씨발’ 크게 소리치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점심을 먹기 위해 손을 멈춘 사람들 사이로 뛰어가며 소리쳤다.
“씨발! 구급차! 구급차 부르라고 개새끼들아!”
동석의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었다. 우성거리는 그들의 소리가 하나 둘 가까워오자 동석은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자신을 뺀 모두가 괴상한 말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뺤붏쓏왜듦꺎뺤앀>꺙?붏쓏?<??듊햡ㄱ’
동석은 아주 오래된 옛날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하늘까지 닿는 탑을 쌓던 사람들의 오만함을 벌하기 위해 신이 했다는 행동. 동석은 멈추지 않고 욕을 토해냈다. 욕을 하면 할수록 사람들의 말은 점점 더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자신을 정신나간 사람처럼 보는 눈빛과 혐오스럽게 흘겨보는 눈빛에 흥분한 동석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