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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한 장 반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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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 Sep 13. 2024

산상수훈

[한 장 반]프로젝트12

원래 경찰서가 소란스러운 곳이지만 오늘은 유독 소란스러웠다. 어지럽게 모인 사람들 가운데 몇몇은 기도를 하고 있었고 누구는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또 어떤 이들은 당장 구세주를 풀어주라며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그 꼴들을 찬찬히 보던 김형사는 또 어떤 사이비 목사 놈이 잡혀 온 거라고 생각했다. 둘러보니 얌전하게 생긴 30대 초반의 남자가 조사를 받고 있었다. 김 형사는 후배의 어깨에 손을 얹고 턱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쟤 때문이냐?”


후배인 이 형사가 손가락을 입에 대며 귓속말을 하듯 속삭였다.


“쉿! 쉿! 조용! 지금 난리도 아녀요!”


“왜? 뭔 일 있어?”


“못 들어봤어요. 은평구 예수라고. 그게 쟤에요.”


“그래? 근데, 그런 얘가 왜 잡혀 왔는데?”


“사람을 때렸데요. 그것도 그 땅장사 하던 목사요. 근데 쟤도 지금 신자가 꽤 돼서 위에선 불구속으로 하고 싶었는데, 어디서 가져 왔는지 채찍으로 때린 바람에 쉽지 않은가 봐요. 그것도 교회 앞에서 강도 같은 새끼라고 욕하면서 아주 곤죽을 만들어서 목격자도 많고 쉽지 않겠어요.”


은평구 예수라면 김 형사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인터넷에서 유명한 괴짜였다. 신앙인이라 자부하던 김형사는 때마다 하나씩 나오는 재림 예수겠거니 하고 큰 사고만 치지 않기를 바라던 인물이었다.


“근데 선배, 다른 건 몰라도 저도 봤는데 진짜 불광천을 걸었어요. 진짜 신기했다니까요.”


김 형사는 멀쩡히 대학까지 나온 놈이 이런 뻔한 사기를 믿을 만큼 순진한 모습을 보이는 게 귀엽기까지 하면서 한편으론 어처구니가 없었다.


“야 임마! 불광천이 깊어봐야 무릎까지 밖에 안 와. 쟤가 걸었던 게 언젠데. 그거 봄에 걸었던 거지. 나도 인마, 봄엔 불광천 할애비라 해도 걷겠다.”


“그게 아니라니까요. 진짜 바지가 거의 안 젖었어요. 그리고 그거 들어보셨죠? 서부병원에 하반신 마비 환자 일으켜 세운 거. 의사도 기적이라고 하고 인터뷰하고 난리 났잖아요.”


“진짜 왜 그러냐! 그런 건 예전에도 다 있었어. 교통사고 난 할머니가 허리디스크 치료돼서 뛰어다니고 하는 거 못 봤어? 넌 어디 가서 계약할 때 혼자 하지 말고 꼭 나한테 연락해. 아주 사기당하기 딱 좋은 놈이네. 이거.”


“그거 말고도 쟤가 쫌 신기한 게 많아요. 천사원에 빵 봉사한 거 못 들으셨죠. 거기 애들 수십 명한테 빵이랑 과자를 다 나눠 줬는데, 빵집에서 산 내역 보니까 딱 하나 샀다잖아요. 완전 예수라니까요. 아직 자기 이름으로 된 교회도 없고, 돈을 내라 뭐 이런 이야기도 전혀 안 했데요. 그냥 저녁에 불광천 따라서 걷다가 사람들 모아서 이야기하고 그러는데 저렇게 사람들이 몰려든 거예요.”


“조사해 봤어? 쟤 어디 사는데? 자기 이름으로 안 하고 부모나 친척 이름으로 돌려놨겠지. 누가 순진하게 자기 이름으로 하냐! 그래서 쟤 부모는 뭐 하는 사람인데?”


“여기 토박이에요, 쟤. 아버지도 완전 토박이고요. 아! 맞다. 그러고보니 아버지 직업도 목수라던데, 진짜 완전 예수 아니에요. 하하!”


“쓸데없는 소리!”


후배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 넘겼지만 김 형사는 조사를 받는 괴짜가 이상하게 신경쓰였다. 청년이 조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담당인 박 형사에게 물었다.


“왜 때렸데냐?”


“아, 몰라! 성전 정화란다. 이건 뭐, 씨발. 말이 통해야 말을 하지.”


“그래서 팼데?”


“어! 그랬다니까. 사람만 팬 것도 아니고 아주 그냥 교회를 쑥대밭을 만들었어. 지금 목사가 맞아서 병원에 있는데 자기는 절대 합의 안 한다고 난리 지, 쟤는 가만있는데 신자라는 사람들은 구속시키면 경찰서에 불질러버린다고 난리 지, 아주 죽겠다, 진짜.”


“쟤는 협조적이고? 반성은 해?”


“뭐, 그냥 잘 적긴 적더라. 착한 거 같긴 한데, 얘가 지금 저러고 다니니까 정보과에서 본 게 좀 있나 봐. 빽이 좋은 지 기술이 좋은 지 모르겠는데 일단 아주 깨끗해. 뭐가 없어. 재산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금융 거래 기록 자체가 없어. 외아들이라서 부모도 같이 좀 봤는데, 거기도 뭐가 없어.”


“거, 재밌는 새끼네, 이거.”




김 형사는 뭔가 냄새가 난다고 느꼈다. 이런 인간일수록 뒤가 구리다는 건 형사 생활 15년 동안 충분히 느끼고 깨달은 진리였다. 김 형사는 조용히 은평구 예수의 행적을 미행했다. 불광천과 홍제천을 넘나드는 남자의 뒤를 몰래 밟으면 분명 구린 구석이 들어날 거라 믿었다. 


한동안 자기 시간까지 쪼개 가며 미행을 했지만 좀처럼 구린 구석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아무리 눈치가 빠르고 철두철미한 성격이라 해도 본성은 속일 수 없는 법이었다. 이 정도 따라다녔다면 어디 한 곳에선 실수를 하기 마련인데 정말 말 그대로 반듯반듯한 놈이었다. 


김 형사가 기다리던 기회가 생긴 건 등산 모임이었다. 좀처럼 홍보를 안 하던 녀석이 자신과 함께 등산을 하자며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다. ‘흥, 돈 좀 걷어보겠다는 생각이겠지.’ 김 형사는 코웃음을 치며 동행을 신청했다. 


주말 북한산은 남자를 추종하는 인파로 북적였다. 산을 보는 건지 앞사람 엉덩이를 보는 건지 분간이 어려운 가운데 김 형사는 남자 주변에서 함께 산을 올랐다. 누구도 남자에게 말을 걸지 못했고 남자 역시 별다른 말이 없었다. 느릿느릿 걸어 족두리봉에 올랐을 때 남자가 김 형사에게 눈짓과 함께 다가오라는 듯 손짓했다. 주변 신도들의 눈이 일제히 김 형사에게 쏠렸다. 


순간 바짝 긴장이 들었다. 어쩌면 자신을 해치려는 수작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족사로 꾸미고 이 많은 인원이 증언한다면? 용의주도한 녀석이라고만 생각했지 흉악한 놈이라는 생각을 못한 자신의 실수라고 생각했다. 머뭇거리며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자 남자가 김 형사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남자는 그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띠며 김 형사에게 물었다.


“아직도 뭔가 불편하세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김 형사는 잠시 말을 잃었다. 뭐라고 대답도 하기 전에 청년은 말을 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 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 형사님이 신앙 생활을 하시는 분이라는 것도 잘 알고요.”


“당신이 예수님이 아니라는 정도는 압니다. 


빙긋 웃기만 하는 남자는 김 형사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제가 질문을 드릴 수밖에 없네요.”


“….”


청년은 담담하게 김 형사에게 물었다.


“김 형사님은 제가 누구라고 생각하시나요?”


“그거야 당연히….”


분명 신성모독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에 화를 내려 했지만, 김 형사는 대답을 멈추고 가만히 생각에 빠졌다. 남자가 했던 모든 행동들. 했던 말들. 그 가운데 이치에서 벗어난 것들이 있었나? 김 형사는 베드로가 했던 대답을 곱씹으며 청년을 보았다.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을 보며, 그가 했다는 행동을 생각하던 김 형사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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