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짝이 필요한 아이

(홀수의 저주)

by 젼샘


"선생님! 우리 반 여학생이 홀수던데,
학급운영 어떻게 하실 거예요?"

첫인사의 어색한 미소가 채 가시기도 전에

학부모는 가장 걱정스러운 이야기로 말문을 연다.

실명을 거론하며 J와는 짝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한다.

케케묵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의 갈등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아직 댁의 자녀에 대한 정보가 없습니다'가

나의 대답이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온몸의 세포를 다 동원해 학부모를 안심시켜 본다.


나도 걱정이 된다.

그래서 긴 호흡으로 지켜보며 도울 수밖에 없다.

때로는 돕지 못하는 상황이 더 많다.


홀수는 저주일까?

꽃을 선물할 때 홀수로 하라는 말이 있다.

내기를 할 때도 삼세번이란다.

뿌리 깊은 유교문화 속에도 홀수에 대한 맹신이 가득하다.

그런데, 문득 집단내에서 홀수가 가져오는

갈등과 역동이 가히 저주스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학창 시절 학급 내의 또래집단 구성은

학업보다 더 중요한 초미의 관심사이다.

학년초 홀수의 저주에 걸린 반은

더욱 일사불란하게 편 가르기를 해야 한다.

어물쩡거리다간 홀수의 저주에 빠지고,

결국 쉬는 시간,

특별실 이동수업시간,

체육시간,

체험학습일마다 애매한 기류에 휩싸인다.


K는 L과 P가 자신을 떨굴까 노심초사하며

아부의 감정선에서 내려오지 못한다.

결국 감정의 분수는 바닥을 드러내고

홀로 남겨지게 된다.

그러면 학교에 가기 싫어지고

점점 마음이 몸을 지배해

배가 아파서, 머리가 아파서, 열이 나서

교실에서 자리를 비우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단짝을 차지한 아이는

행복하기만 할까?

L은 P가 학교에 못 오게 되면

거짓으로라도 가장하여 함께 결석을 한다.

둘만의 도미노 현상이다.

단짝이 없는 쉬는 시간을 견딜 자신이 없어서이다.

숨을 곳을 찾아본다.

내 교실은 5층이지만

그 짧은 쉬는 시간에

1층에 있는 보건실을 기웃거려 본다.

다음 쉬는 시간엔 도서실로 가

내 키보다 높은 서가 구석으로 몸을 숨긴다.

다행히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이유는

자기 자리에서만 식사를 하자는 학급규칙이 있어서이다.

친한 아이들끼리 모여 먹었다면

차라리 결석을 해버렸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마지막 장애물이 남았다.

하교시간이다.

또래무리를 만들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일 수도 있다.

등하교를 혼자 한다는 건

모두에게 내가 떨궈진 것이라 알리는 것이기에

땅만 보고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복도에서 날 기다려주는 친구가 없다.

집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게 느껴져

차라리 종례 전에 조퇴를 할걸... 이란 후회가 밀려온다.

홀수의 저주에 빠진 하루가 십 년 같다.

어서 빠져나와야 한다.


그래서 단단히 뭉쳐져 있는 다른 무리를 힐끔거려 본다.

밤잠을 설치며 내가 비집고 들어갈만한 무리를 찾고, 어느 무리가 가장 쉬울지 계산기를 두드려본다.

밤을 꼬박 새우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다.

ask(익명채팅 기능)로 타깃에게 톡을 남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인스타 친구들과만 공유하는

비공개 스토리에 저격글을 올린다.

타깃의 험담을 살짝 흘리며

내가 더 좋은 친구가 되어주겠다는

희망의 씨앗을 뿌린다.

평소 품었던 불만의 크기만큼의 속도로

친구가 내게 다가올 거라 기대하며

인스타, 카톡, 손 편지 등을 동원해

전방위 맹공에 들어가면,

어느새 난 홀수의 저주에서 풀려나고

우리 반의 다른 누군가에게 그 저주는 옮아가 있다.

그래도 안심할 수 없다.

돌고 돌아 그 저주가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 지금의 내 무리를 단단히 해야 한다.

그래서 방과 후에

그 아이가 다니는 학원에 등록하고

그 아이가 좋아하는 아이돌을 함께 좋아해야 하고

시험이 끝나는 날엔

그 아이가 좋아하는 마라탕을 먹어야 한다.

늘 맞춰주다 억울한 마음이 들어

내 주장을 펼쳐보기도 하지만

이내 미안하다며 사과를 한다.

힘의 균형이 깨진, 한쪽으로 기울어진 시소를 탄 나는 계속 허공에 매달려 힘겹게 서있다.

내 단짝이 미워지기 시작한다....

홀수의 저주는 끝나지 않는다.



이런 아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언제든지 네 단짝이 널 떠날 수 있고

너에게 또 다른 친구가 찾아올 수 있으니,

헤어질 때는 왜 떠나가는지 이유를 묻고

화가 나지만 그 아이 입장에서 공감해 주고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해도 시간이 흐른 후 우리가 다시 친해지길 바란다는 말로 마무리지으라 조언한다.

그렇게 가능성을 열어두고 헤어지면 최소한 뒷담이 들려오지 않고, 그 아이가 결국 홀수의 저주에 걸렸을 때 전엔 미안했다며 날 다시 찾아오기도 하니 말이다.

홀수의 저주는 사라지지 않는다.

돌고 돌며 우리 마음에 생채기를 내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배운다.

공감하는 방법, 대화의 기술, 관계 맺기의 전략 등...

휴... 아프지 않으면 오죽 좋으랴마는...

아프더라도 회복하는 법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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