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속에서 만난 자줏빛 보물

by 이화

"하아~" 하고 숨을 내뱉으면 보이지 않던 하얀 입김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계절입니다. 아이는 두 손을 모아 입에 대고 몇 번이고 입김을 불어봅니다. 그러고는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시는 엄마를 바라봅니다. 머리에 수건을 두른 엄마는 곳간에서 낫과 쇠스랑, 커다란 자루를 챙깁니다. 엄마는 수레를 끌고 '장작골'로 향합니다.

언니는 호미 하나를 들고 엄마 뒤를 따릅니다. 아이도 언니 뒤를 졸졸 쫓아갑니다. 무엇을 하러 가는 걸까요?


장작골 산에는 아빠랑 가끔 와서 재주넘으며 놀았던 할아버지 묘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산 밑에는 밭이 있지요. 엄마 손바닥보다 큰 잎사귀들이 고랑마다 줄지어 심어져 있습니다. 아니, 죽죽 늘어져 있네요. 엄마는 준비해온 낫으로 잎 가득 달린 줄기를 걷어 내기 시작합니다. 긴 고랑마다 걷어진 줄기가 가득 찹니다.

이어 흙이 소복이 쌓인 맨땅이 보이네요. 이번엔 쇠스랑으로 흙을 팝니다. 한 번, 두 번 흙을 긁으니, 어? 쇠스랑 끝에서 뭔가 따라 올라옵니다.

아이의 눈이 커졌습니다. 고구마였네요.


호호 불며 맛있게 먹었던 그 달콤한 고구마가 땅속에 꽁꽁 숨어 있었다니, 아이는 마냥 신이 납니다. 언니는 엄마가 쇠스랑질을 해놓은 땅을 호미로 열심히 팝니다. 또 고구마가 나옵니다. 이번에는 고구마 가족이 한꺼번에 굴러 나옵니다. 수염 달린 커다란 아빠 고구마, 매끈한 몸매의 엄마 고구마, 그리고 앙증맞은 아기 고구마들이 줄줄이 손을 잡고 나옵니다.


"어! 이건 꼭 언니랑 나 같아!"

사이좋게 꼭 껴안고 있는 쌍둥이 고구마를 보며 아이가 소리칩니다. 아이는 신이 나서 폴짝폴짝 뛰며 부지런히 고구마 식구들을 자루에 담습니다. 자루가 어느새 묵직해졌습니다. 고랑 사이사이를 누비느라 손발에 흙이 묻는 줄도 모른 채, 아이는 품 안 가득 고구마를 안고 여기저기 분주히 오갑니다. 엄마는 땅속 보물에 마음을 빼앗긴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포근한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수레 가득 고구마를 채우고 엄마는 좁은 산길을 내려갑니다. 수레 위로 봉긋하게 올라온 고구마들을 보니 벌써 아이의 입안에는 군침이 돕니다. 한 솥 가득 고구마를 쪄내실 엄마의 모습이 그려져 아이는 벌써 배가 고파집니다. 아이의 동네에는 가게가 없습니다. 건넛마을까지 한참을 걸어가야 구멍가게 하나가 나올 뿐입니다. 이 자주빛 고구마는 겨우내 먹을 수 있는 아이의 유일하고도 소중한 간식이지요.


콧노래를 부르며 따라오는 아이가 있어 거친 산길에서도 엄마의 수레는 무게를 잊은 듯 가볍게 굴러갑니다. 오늘 저녁 땅속 보물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도란도란 나누게 될 이야기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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