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실려 온 쌉싸름한 냄새에 이끌려 아이는 걸음을 재촉합니다. 어디로 가는 걸까요? 논둑길을 따라 길게 심어진 코스모스 친구들에게 달려가고 있군요. 오늘은 바람 따라 이리저리 살랑살랑 고개를 흔드는 코스모스가 아이를 반갑게 맞아줍니다.
이른 여름이었습니다. 동네 언니 오빠 대여섯 명이 손 한 뼘만 한 코스모스 모종을 길가에 심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내준 ‘동네 미화’ 숙제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기 코스모스 모종을 한 뼘 간격으로 길을 따라 심어 나갑니다. 키 큰 동네 대장 오빠가 심을 자리를 지휘하며 모종삽으로 열심히 땅을 파면, 언니들이 뒤따라 아기 코스모스를 하나둘 정성껏 심습니다. 그 뒤로 개구쟁이 오빠들이 땅이 마를 새라 물조리를 낑낑대며 들고 다니며 물을 줍니다.
이번 주 토요일은 아이의 집에서 건넛마을 감나무 집까지 이어지는 논둑 양 갈래 길에 코스모스를 심는 날인가 봅니다. 이른 아침부터 국민학교 언니 오빠들은 바쁘게 움직입니다. 처음에는 다들 낄낄거리며 신이 났습니다. “간격을 맞춰라”, “흙을 더 덮어라”, “물 좀 그만 줘라” 하며 여기저기 참견하는 목소리가 커집니다. 그러다 허리가 아파올 때쯤 몸을 쭉 펴고 뒤를 돌아보니, 아직 반도 채 오지 못했습니다. 이때 오빠들이 내기를 겁니다. 어느 줄이 먼저 감나무 집까지 가는지 ‘업어주기 내기’를 제안한 것이지요.
그때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합니다. 가득 담아온 물이 여기저기 튀고 옷에 흙탕물이 묻어도,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들은 온 힘을 다합니다. 아이도 덩달아 신이 나서 열심히 응원하며 뒤를 따릅니다. 줄이 삐뚤빼뚤해지고 좀 쓰러져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저 먼저 심는 것이 최고니까요!
결국, 간발의 차이로 아이가 응원하던 팀이 이겼습니다. 아이는 그저 신이 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편하게 업혀서 갈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아이들의 놀이처럼 심어진 코스모스가 어느덧 훌쩍 자라 길쭉길쭉한 기럭지를 한껏 뽐내고 있습니다. 아이는 코스모스 앞에 가만히 서 봅니다. 어느새 자신보다 키가 커진 코스모스가 대견하기만 합니다. 분홍색, 하얀색, 자주색 꽃잎들이 제각각 미모를 자랑하지만, 아이는 그중에서도 분홍색이 제일 좋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진달래 같기도 하고, 만화 속 공주님의 분홍 드레스 같기도 하고요.
엄지와 검지를 모아 꽃잎을 살며시 만져봅니다. 매끈매끈한 감촉이 참 좋습니다. 보드라운 비단 보자기 같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에 살포시 볼을 대어 봅니다. 코스모스가 간질간질 부드럽게 아이의 뺨을 쓰다듬어 줍니다.
아이는 가만히 눈을 감아 봅니다. 눈과 코, 그리고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번집니다. 아마도 그 여름, 신나게 함성을 지르며 응원했던 그날의 풍경을 떠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