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녘의 벼 이삭이 제법 고개를 숙였습니다.
진한 초록빛이던 볏잎도 한풀 꺾인 듯, 노을빛을 닮은 색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매미 소리는 힘차게 퍼져 나가지만, 그동안 보이지 않던 잠자리가 하나둘 보이기 시작합니다.
투명한 네 장의 날개를 아래위로 저으며, 잠자리들은 마치 경주를 하는 것 같습니다.
누가 더 높이 날까? 누가 더 빠를까? 누가 더 재미있게 날까?
이리저리 곡예비행을 하는 잠자리를 보다 보면 아이는 절로 함께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던 하늘에서 눈에 확 띄는 녀석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꼬리를 빨갛게 물들인, 다른 녀석들보다 작지만 날쌘 잠자리입니다. 어찌나 빠른지 눈이 따라가기조차 힘듭니다.
아이는 저 빨간 꼬리를 가진 잠자리를 잡아보고 싶어집니다. 잠자리들이 쉬고 있는 나뭇가지 사이로 서서히 다가갑니다. 빨간 꼬리 잠자리는 여전히 열심히 춤을 추고 있네요. ‘어서 쉬어야 저 놈을 한 번 만져볼 텐데…’
아이는 바쁘게 잠자리의 비행 길을 따라가며 빨간 꼬리 잠자리가 앉기만을 기다립니다.
드디어 아이의 눈에 든 잠자리가 나뭇막대 위에 앉았습니다. 아이는 엄지와 검지손가락을 집게처럼 만들고 살금살금 걸어갑니다. 발소리도, 숨소리도 나지 않게 아주아주 조심스럽게 다가갑니다.
빨간 꼬리 잠자리는 아이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날까 말까 날갯짓을 합니다.
‘아, 드디어 때가 온 것 같아.’
심장 소리가 커집니다. 잠자리가 두근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안 되는데…
작은 팔을 잠자리가 눈치채지 못하게 쭉 뻗어,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을 조심스레 날개에 “딱” 하고 겹쳐봅니다. 두 눈도 함께 꼭 감아졌습니다.
‘잡았나?’
하지만 이내 빈손가락만 꽉 힘을 주고 있네요.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지요. 다시 한 번 때를 노립니다.
빨간 꼬리 잠자리는 놀란 듯 날아갔다가, 아이에게 다시 기회를 주듯 곧 그 자리에 다시 앉습니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듯 아이의 입술에 힘이 들어갑니다.
하지만 또 실패입니다. 또 날아갑니다.
아이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빨간 꼬리 잠자리도 아이와 노는 게 재미있나 봅니다. 또 앉습니다.
그렇게 아이와 빨간 꼬리 잠자리의 놀이는 지겹지도 않은지 계속 이어집니다.
낮의 뜨거운 해도 빨간 꼬리 잠자리처럼 서서히 붉게 변해갑니다.
아이는 빨갛게 달아오른 두 볼을 양손으로 감싸며 다짐합니다.
“내일은 꼭 잡아볼테야.” 아이의 발걸음마다 작은 아쉬움이 묻어납니다.
집으로 향하는 아이를 응원하는 걸까요, 아니면 아직 조금 더 놀고 싶은 걸까요.
빨간 꼬리 잠자리는 아이의 마음도 모른 척, 살짝 날아올라 작은 어깨 위에 내려앉습니다.
그렇게 노을빛 속에서, 아이와 빨간 꼬리 잠자리는 나란히 걸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