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빛 감 하나

by 이화

아침에 일어나 밖으로 나서면 코끝이 쨍해지는 날씨가 되었습니다. 아이는 마루에 걸터앉아 마당 한편에 심어진 감나무를 바라봅니다. 나무는 한해 동안 열심히 키워낸 주홍빛 열매들이 이제는 무거워졌는지, 가지를 축 늘어뜨리고 있습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탐스러운 감들은 벌써부터 아이의 침샘을 자극합니다. 가지마다 빈틈없이 예쁘게 매달린 열매들을 만져보고 싶고, 또 맛보고 싶어집니다.


아이는 이내 토방으로 발을 내려 감나무를 향해 걷기 시작합니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아이의 입꼬리는 나무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올라갑니다. '어느 것이 더 맛이 좋을까?', '어느 것이 더 보드라울까?', '혹시 아직 떫지는 않을까?' 아이는 마루에서부터 큼직하고 탐스러운 감 하나를 이미 점찍어 두었나 봅니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가도, 이내 홀린 듯 그 감 하나에 눈을 고정한 채 곧장 걸어갑니다. 아이가 찜해둔 감은 토마토처럼 매끈하기도 하고, 씨알 굵은 배처럼 커다랗기도 합니다. 잎사귀 사이에서 이슬과 함께 반짝이는 감은 보석 같기도, 부드럽게 빛나는 황금 덩어리 같기도 합니다. 아이는 꿀꺽 침을 삼켜봅니다.


커다란 감나무는 아이가 반가운지 빨갛게 물들어가는 잎을 흔들며 인사를 건넵니다. 드디어 나무 앞에 도착한 아이가 눈이 부신 듯 한쪽 눈을 찡긋하며 위를 올려다봅니다. 마루에서부터 찜해두었던 감을 향해 팔을 쭉 뻗어봅니다. 하지만 마루에서는 충분히 닿을 것 같았던 그 감이 손에 닿질 않습니다. 까치발을 들어보고 폴짝 점프도 해보지만, 아이 키보다 훨씬 높이 매달린 감은 아이의 속도 모르고 바람에 흔들거릴 뿐입니다.

가까이서 보니 감은 더욱 먹음직스러워 보입니다. 이번에는 뒤로 몇 발짝 물러나 뛰어보지만 역시나 어림없습니다. 야속한 감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아이의 표정에 고민이 서립니다.


하지만 역시 손에 닿지 않는다고 포기할 아이가 아니군요. 이번엔 막대기를 가져옵니다. 이제는 정말 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폴짝 뛰어 막대기로 감을 건드려 봅니다. 조금만 더 치면 떨어질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힘껏 점프하며 가지를 쳐보지만, 야속한 감은 이리저리 왔다 갔다 인사만 할 뿐 도통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아이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하자, 지나가던 바람이 응원하듯 땀을 식혀줍니다. 다시 한번 도전하려는 찰나, '뚝!' 소리가 들립니다.


그토록 애타게 기다렸던 감 하나가 마법처럼 아이의 눈앞에 내려앉았습니다. 커다란 손이 펼쳐지자, 영롱한 빛을 머금은 감이 드디어 아이의 작은 손으로 옮겨졌습니다. 아빠였네요. 아빠는 별일 아니라는 듯 감 하나를 툭 따서 건네주고는, 다시 무심히 갈 길을 걸어갑니다.


아이는 두 손 가득 쥐어진 감을 가만히 내려다봅니다. 당장이라도 한 입 베어 물 법도 한데, 아이는 그저 감을 꼭 쥐고 있을 뿐입니다. 가을 햇살에 발갛게 달아오른 덕분일까요? 아니면 아빠의 커다란 손이 감싸 쥐어 주었기 때문일까요? 아이의 두 손에 들린 감은 유난히도 따스합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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