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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by 송나영

유튜브 영상 하나가 나를 운동하게 만들었다. 의사의 협박에도 꿋꿋이 버티고 운동을 안 했다. 환자 중에 병원에 오고 싶어도 못 오는 환자가 있으니 운동을 하라고 했다. 지난번에 고혈압, 고지혈 약을 받으러 병원을 갔다. 운동하냐는 말에 뜸을 들이니 또 안 하네라며 나보고 벌써 허리가 굽었다고 진짜 운동하라고 잔소리를 했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제일 튼튼하다 보니 운동을 안 한다는 어쭙잖은 변명을 늘어놓았다. 늦은 밤 들여다본 영상 하나로 벌떡 일어나 아침부터 한 5킬로를 걷고 왔다.

치매 걸린 부모를 돌보는 아들의 영상은 힘이 셌다. 아들은 70의 나이에 미국에 온 아버지가 일을 놓기 전 마지막 모습을 보여줬다. 장사에 소질이 없어서 적자만 보는 아버지의 소일거리를 유지하고자 아들은 적자를 메웠다고 했다. 치매가 온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발로 걷어차고 마구 팼다. 간병인이 집에 오면 도둑 취급을 했다. 먹을 것을 훔쳐간다고 주님께 간병인이 집에 오지 못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그리고 먹을 것에 집착했다. 아들은 하루 종일 밥을 차렸다. 호박죽을 먹은 지 얼마 안 돼 점심으로 만둣국을 먹었다. 아들은 이가 부실한 부모를 위해 가위로 모두 잘게 썰어서 죽처럼 씹기 쉽게 만들었다. 호박죽 먹은 지 얼마 안 돼 아버지는 몇 숟가락 들다 말았다. 어머니는 그 만둣국을 다 먹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밥을 안 먹었다고 생각해서 아들에게 아버지에게 밥을 주라고 오분 마다 얘기를 했다. 밥 먹었다고 얘기를 해도 믿지 않았다. 방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서 아버지에게 밥을 주라고 무한 반복했다. 어머니는 삼십 분이 채 안 될 짧은 사이에 들락날락하다가 남편을 데리고 나왔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호박죽도 드시고 만둣국도 몇 숟갈 드셨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밥을 안 먹은 남편이 안쓰러워 어쩔 줄을 몰랐다. 남편이 그 만둣국을 다 먹은 후에야 마음을 놓았다. 아들은 술을 마셨다.

아들은 어쩔 수 없어서 모신다고 했다. 자기는 효자가 아니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서 치매에 걸린 두 분을 모신다고 했다. 부모가 노인들이 다니는 유치원 같은 곳을 가면 그는 직장으로 출근했다. 점심을 먹자마자 부모님이 돌아오시기 전에 집으로 온다. 아버지의 전화는 위치추적 장치가 돼 있어서 부모님이 어디쯤 도착하셨는지 알 수 있다. 아버지는 아침에 가기 싫다고 조금만 더 자게 해달라고 투정을 부리지만 가야 한다. 그곳에서 아침을 드시고 시간을 보내야 아들이 일을 할 수 있다. 아들은 영상을 올린 지가 한 달인데 평생의 위로를 다 받았다고 했다. 비슷한 처지였던 사람들의 댓글이 무수히 달려있다. 부모님이 쓰러지셔서 간병을 자처하고 나설 때 아들이 초등학생이었는데 벌써 스무 살이 넘었다는 얘기, 십여 년이 넘도록 간병을 한 얘기들이 줄을 이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계속 말을 한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최고의 아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들은 자신이 사랑을 받았는지 모르겠단다. 아들은 어려서부터 남의 손에서 자랐다. 아주 어려서부터 친척집을 전전하며 자랐고 고등학교1학년 때 미국에 계신 어머니의 친구분 댁으로 보내졌다고 했다. 자신은 부모의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단다. 지금 그는 부모를 모신다.

나의 아버지도 치매셨다. 일찍 회사를 나오고 사업을 실패한 이후에 다시 일을 시작하겠다는 마음을 다 내려놓고 정신도 내려놨었다. 나이 육십이 넘어서 일찍 찾아온 치매끼에 엄마랑 나는 당황했었다. 이사 갈 집으로 향하는데 아버지는 갑자기 아파트 화단으로 들어가셨고 거기서 볼 일을 보셨다. 깔끔을 떠는 일로 하루를 보내는 아버지가 아무 데서나 볼 일을 본 거다. 밖에 나가서 볼 일을 볼까 봐 신문지를 들고 다니며 공중변소에 신문지를 대놓고 일을 보던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이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한 건 물 때문이었다. 아파트 관리소에서 찾아왔었다. 하루 동안에 우리 집이 사용한 물량이 아파트 한 동이 한 달을 쓰는 물이라고 누수가 심한 건 아닌지 알아보러 왔다고 했다. 아버지가 싱크대에서 하루 종일 손을 씻고 싱크대 배수구와 거름망을 밤새도록 닦는 것에 대해 그만하시라고 말하는 것에 지쳐서 포기했을 때였다. 처음에는 한 시간 정도였는데 점점 그 시간이 말도 못 하게 길어졌다. 밤새 물소리가 집안을 울렸다.

아버지는 말도 잃었다. 말하기 좋아하는 아버지가 어머니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얘기를 하곤 했었다. 말수 없는 남자랑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아버지의 말이 너무 길어서였다. 단어를 잃었다. 됐다, 있다는 말만 했다. 그리고 입을 닫았다. 아버지는 얌전한 치매였다. 하루 종일 누워 지내며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거나 거실 밖의 하늘을 보는 일이 다였다. 아버지가 싫어하는 요양원에 보낸다고 나는 협박을 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고집을 꺾었다. 마음이라도 다독여 드릴 걸 돌아보면 나는 아버지에게 너무 모질었다. 무능하다고 생활력도 없다고 어떻게 일생을 이렇게 사시냐고 악을 쓰고 퍼부었다. 아버지는 돈이 많이 들까 봐 병원에 가지 않았다. 항생제를 사서 드시는 걸로 스스로 진단하고 처방을 했다. 나는 나쁜 딸이었다. 아버지 마음을 들여다본 적이 없다. 당신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당신이 왜 그러셨는지 이제야 조금 알게 된 거다.

무섭다. 내가 아들한테 짐이 될까 봐 무섭다. 나는 일을 한다고 아버지의 병간호도 제대로 못했다. 가끔 아버지를 찾아뵐 뿐이었다. 반가워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보면서도 빠르게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한테 내 몸뚱이를 돌보는 일을 맡기지 않으려면 운동해야 한다. 내 발로 내 힘으로 돌아다닐 수 있게 움직여야 한다. 멀쩡한 정신을 꼭 붙잡게 정신 차리고 나를 돌봐야 한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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