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나를 불한당이라고 불렀다. 나는 뭐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서 사람 혼을 쏙 빼놓곤 했다. 무언가에 꽂히면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무조건 돌진한다.
이번 설에 아버지를 찾아뵙지 못했다. 설 전후로 일도 많아서 몸이 많이 힘들었다. 설날을 하루종일 잠으로 채웠다. 날이 좀 풀리면 아버지를 찾아가리라 생각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2월 마지막에 다녀왔다. 아버지가 계신 포천을 향했다. 차들이 많아서 항상 새벽에 일찍 갔는데 어제는 8시가 넘어 출발했다. 생각보다 도로에 차가 그리 많지 않았다. 일찍 출발하지 않으면 돌아올 때는 구리 IC에서 차량에 밀려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가까이 걸리곤 했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더 이상 미루지 말자고 아버지한테 다녀오기로 작정하고 나선 길이었다. 포천에 다다르면 근처에 있는 이마트 24시 편의점에서 술을 사고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오징어땅콩 과자나 먹을거리를 사곤 했었는데 어제는 동네 마트에서 전을 사갔다. 작년에는 전도 부쳐갔었는데 올해는 사기로 했다. 동태전을 사려고 일찍 마트에 갔더니 너무 일찍 가서 없었다. 전날에 팔다 남아 세일하는 고추전과 막걸리를 샀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햄버거를 사갈까? 단팥빵을 살까? 고민을 하다가 단팥빵 대신 찐빵을 사기로 했다. 가는 길에 숱하게 많던 만두와 찐빵을 파는 곳이 잘 안 보였다. 두 눈을 부릅뜨고 양쪽의 상가를 살폈다. 마침 거의 도착할 때쯤 찾았고 나는 일인분씩을 샀다. 아버지가 드실 거니까 뜨거우면 안 될 거 같아서 창문을 내리고 식히면서 갔다. 제사나 차례를 살면서 몇 번 지내본 적이 없어서 나는 잘 모른다. 아버지가 좋아하실 거라는 생각에 혼자 뿌듯해져서 절을 향해 올라갔다.
주지스님을 마주치기 싫었다. 법당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영탑에 조용히 혼자 다녀오곤 했었다. 엄마가 오랜 기간 다니는 절이라 주지스님을 피하고 싶었다. 혹시라도 마주치면 어색한 인사말을 주고받을까 걱정을 했다. 그 생각에 골몰하면서 일주문을 지나서 올라갔는데 차가 다니는 길을 제외하고 눈은 고스란히 녹지 않은 채였다. 눈 위에 주차하기가 주저스러워 좀 녹은 곳을 골라서 법당에서 잘 안 보이는 곳으로 눈에 띄지 않게 주차를 하려고 법당으로 올라가는 길 한편 산 쪽에 차를 댔다. 처음에는 조심해서 살짝 옆으로 댔다가 주지스님을 만날까 싶어서 더 바짝 대려고 나뭇잎이 잔뜩 쌓인 암벽 같은 곳에 바짝 붙였다. 내 무데뽀는 앞뒤 가리지 않는다. 너무 산에 붙인 거 같아 다시 앞으로 나오려는데 차가 헛바퀴만 돈다. 아무리 액셀을 밟아도 차가 꼼짝도 않는다. 고무 탄 내가 진동을 했다. 애꿎게 돌아가신 아버지만 숱하게 찾았다. 내 대책 없는 행동을 늘 불한당이라고 나무라던 아버지가 여지없이 못마땅하게 지켜보고 계실 것 같다. 한쪽 바퀴는 얼음 위에 다른 쪽은 잔뜩 쌓인 나뭇잎 위에 있었다. 눈 아래 꽝꽝 언 얼음을 긁어보고 나뭇잎 위에서 헛바퀴를 도는 뒷바퀴에 굵은 나뭇가지를 끼워 넣고 다시 액셀을 밟아도 꿈쩍도 않는다. 진땀이 났다. 결국 보험사에 사고접수를 했다.
포천은 18킬로나 떨어진 곳에서 긴급출동을 했다. 삼십 분이 걸린다고 했다. 기다리는 시간에 아버지가 계신 영탑이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오랜만에 아버지의 영탑을 청소를 했다. 지난번에 사갔던 꽃은 벌써 색이 너무 바래 있었다. 다음에 다시 꽃을 사 갖고 와야겠다. 급하게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샀던 전이며 만두, 찐빵을 차려놓고 막걸리 한 잔을 따라 드렸다. 아버지께 늦게 와서 죄송하다고 중얼거리면서 후다닥 차를 향해 내려왔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기사님이 전화를 했다. 차는 겉보기에 뒤에서 밀면 곧 빠져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언덕길이라 안 된다고 했다. 결국 줄로 끌어당겨 차를 간신히 얼음과 나뭇잎에서 빼냈다. 다행히도 무상이라고 했다. 주지 스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다녀가려고 했는데 요란을 떨게 됐다. 레커차가 법당 바로 아래서 차를 돌렸으니 이게 무슨 일인가 했을 거다. 나는 법당까지 올라가지 않고 차를 돌려 후다닥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 생각해 보니 아버지께 딱 술 한 잔만 올리고 온 게 마음에 걸렸다. 주지스님 만날까 걱정하느라 아버지를 만나러 온 건 뒷전으로 밀리고 말았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도 연락도 없이 찾아갔다가 후다닥 바삐 나왔던 나였는데 어제는 더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리고 왔다. 다음에 색깔도 이쁜 목단을 한 아름 사들고 다시 술 몇 잔 제대로 올려드리고 와야겠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햄버거랑 피자도 사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