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법연수생 시절에 검찰청에 실무수습을 나가서 맡았던 사건 중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사건의 내용은 간단했습니다.
일가족 전체가 식당을 운영하였는데, 수입산 소고기를 국내산 소고기라고 하면서 갈비탕을 팔다가 적발된 사건이었지요.
그런데 제가 사건의 내용을 검토해보니, 일가족이 한 팀이 되어 혼연일체로 해당 범죄를 실행하였던 것으로 제가 아는 형법 이론을 고려하면 일가족이 ‘공동정범’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즉, 일가족 전체를 처벌해야 하는 상황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처음에는 ‘어머니’만 해당 혐의로 조사를 받다가, 중간에 ‘아들’이 자기가 주도한 것이라고 말을 바꿔 결국 ‘아들’에 대해서만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당시 수사 경력이 30년 가까이 되신 베테랑 계장님께 여쭤봤습니다.
계장님! 이거 일가족 전체가 공동정범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그 소리를 들으신 계장님께서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아이고 시보님~! 가족 중에 한 사람만 처벌받도록 하면 됐지 뭐하러 일가족을 전부 처벌해요.
실제로 법이 집행되는 과정 또는 소송이 종결되는 상황 등을 옆에서 지켜보면, 법의 적용이라는 것은 논리적인 측면만 따져 엄격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진행됩니다.
위 사건에 관해서 말씀드리면, 법 논리적으로는 일가족 전체가 공동정범으로 처벌받아야 할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 일가족 전체를 전과자로 만들어 얻게 되는 공적인 이익이 무엇인지도 불분명합니다.
제가 위에서 말씀드린 것은 형사처벌에 관련된 것이지만, 민사소송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민사소송에서 판사님들이 판결을 하실 때도 어느 한쪽 당사자에게 완승 또는 완패를 주시는 경우는 누가 보더라도 한쪽의 주장과 증거가 명확할 때입니다.
양 당사자의 주장이 첨예하고, 증거를 보아도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울 때는 결국 원고가 일부 승소하는 식으로 판결이 나오게 됩니다.
이때 각 당사자들은 서로 억울하다고 하면서 쌍방 항소를 제기하곤 하지만 상급심에 가서도 결론은 크게 바뀌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법’이라는 것이 사회의 갈등을 해결하는 수단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법’의 적용을 통해 사회 갈등을 부추기기보다는 갈등을 해소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결국 법의 적용이 불편부당함이 없이 누구에게나 엄격히 적용하여야 하는 것은 물론 중요합니다만, 오로지 그 기준 하나만으로 모든 사안을 평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결국 법의 해석이나 집행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1+1=2'와 같은 수학처럼 딱 정답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까지 제가 작성한 글을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법이라는 것은 상식을 넘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법'은 일반 시민들이 생각하기에 받아들일 수 없는 전혀 엉뚱한 결론을 내리는 도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여러분들께서 법에 대해 어려움을 느끼셨다면, 그것은 외국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이 느끼는 어려움과 유사한 것입니다.
'법'이라는 말을 듣고 겁내실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이미 옳고 그름에 대한 각자의 기준과 판단을 가지고 계실 것이나, 단지 법률용어를 모르실 뿐인 것입니다.
그저 여러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생각을 법률용어로 풀어내는 과정이며, 이 과정을 돕는 사람이 법조인인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들께서 본 책을 읽고 법에 대한 두려움과 생소함을 떨쳐내셨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