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하나의 기관 또는 한 사람의 의도에 따라 누군가 형사처벌에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니며 누군가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여러 주체와 국가기관이 자신이 맡은 역할을 하여 다음 단계로 사건을 넘기는 과정을 거쳐 결국 한 사람을 처벌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범죄로 인해 직접 또는 간접적인 피해를 보신 분들이나 사회정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시는 분 중에서는 범죄자를 최대한 신속히 찾아내 강력하고 빠른 처벌해야 할 것인데 왜 저렇게 나쁜 놈들한테 좋은 제도를 만들어 놓고는 변명할 기회만 주는지 불만이신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는 범죄자를 신속하게 찾아내 처벌을 하겠다는 정의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무고한 사람을 처벌하게 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필수적인 것입니다.
즉, 국가 공권력에 의해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될 수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 낮추기 위한 것이죠.
2020년 형사공판사건 처리결과를 보면, 제1심에서 판결이 내려진 사건은 총 227,920건인데 그중 무죄판결이 선고된 것이 총 6,267건이며(무죄율 약 2.75%), 심지어 피고인이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은 20,859건 중에서도 무죄판결이 선고된 것이 121건이나 됩니다.
위 무죄판결의 선고율을 따져보면, 그래도 대부분이 유죄판결이 나오는 것이니 문제가 없지 않나 싶으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무죄인데도 억울하게 감옥에까지 갇혀있었던 사람의 입장에서는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은 것이니 이를 결코 적은 숫자라고 볼 것이 아닙니다.
2022년 5월 현재를 기준으로 위 과정을 담당한 기관을 살펴보면, 보통의 경우 수사는 경찰이, 기소는 검찰(검사)이, 재판은 법원이 각각 담당합니다.
그런데 범죄자 처벌의 효율성을 위해 각 역할이 융합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만약에 법원이 기소와 재판을 모두 담당한다고 가정을 하면, 판사가 기소한 사건을 판사가 무죄로 판결하는 상황을 쉽게 상상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자기부정을 하게 되는 셈이니까요.
결국 무죄가 나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지게 될 것이고, 기소되면 곧바로 유죄라고 생각하게 되겠지요.